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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世紀映畵讀本] 집으로...
예정된 눈물을 가슴속에 스며들게 하는 영화
 
박수철   기사입력  2002/05/05 [21:07]
▲영화 '집으로' 중 한장면    
영화 “집으로...”는 울 수밖에 없는 영화다. 어떤 이는 예고편을 보고 있다가도 자신의 외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영화, 하지만 문제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눈물을 요구할 것인가이다, 강요된 눈물은 그만큼의 영화적 완성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하지만 “집으로...”는 예정된 눈물을 관객들 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조용하지만 강하게 가슴속에 스며드게 만든다.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 ‘아 이렇게 한국에서도 영화를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맨 처음 들었다. 그 다음엔 이 영화가 과연 영화의 완성도는 둘째치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 그리고 이정향 감독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예정된 눈물을 어떻게 만들어 내었을까 하느 것이었고, 영화를 보는 순간 눈물과 감정의 최면에 걸린 듯 자연스럽게 영화와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영화 “집으로...”는 우리의 잃어버렸던, 아니 다시는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기억을 강하게 일깨우는 영화다. 낯설지만, 친근한 그리고 배부를 땐 정말 기억하기 싫고, 배고플 땐 몸서리치게 그리웠던 우리의 예전의 모습들에 대한, 징그럽게 달라붙어 있는 기억들에 관한 영화다.

그 기억의 中心에, 이 영화의 中心에는 외할머니가 있다. 아낌없이 주기만 하시던 분, 어느 누구에게도 손자를 위해서라면 절대 물러서지 않던 분, 주름진 얼굴 사이에 숨겨진 환한 미소와 까칠까칠한 손마디 손마디로 넉넉한 사랑을 마술 상자처럼 한아름 꺼내놓으셨던 분.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바로 외할머니에 대한, 그 분의 사랑에 대한 어쩔 수 없는 原罪때문이었을 게다. 그렇게 이 영화는 우리의 원죄를 자극하며 우리의 눈물을 은근히 짜낸다.

▲ 영화 집으로 포스터  
모성은 자연이라는 이제는 상투적인 어구를 굳이 꺼내놓지 않더라도 외할머니와 영화의 배경이 된 자연은 그만큼 닮아있었고, 그 속으로 끼어 든 손자(상우)의 모습은 어정쩡하고, 어디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점점 더 상우가 외할머니 속으로 끌려 들어갈 때 자연과 상우는 조금씩 자연에 동화되어 갔고, 할머니를 닮은 자연을 닮아 가는 상우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조금씩 적셔가고 있었다. 마치 자기 자신들이 자신들의 외할머니를 닮아 가는 것처럼. 그리고 영화 속 감정 동화는 보통의 영화에서처럼 감정의 폭이나 골을 일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감정의 옷감에 조금씩 색깔을 입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스며듦이 관객들이 감정을 어루만질 때 관객들의 감추어 두었던 감정이 폭발하고 만다, 아주 조용히.

영화의 형식으로만 볼 때 “집으로...”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Abbas Kiarostami)의 영화와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그 닮음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갈수록 덩치가 커지고 서로의 영화적 소재가 서로를 닮아 가는 한국 영화계에 이러한 기획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누군가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떻게 저런(?) 배우들과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을까 하며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집으로...”의 기획 자체가 무모할 만큼 지금의 한국 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시작되었고, 성공했고 그리고 또 다른 영화적 지평을 넓혀 놓았다. (물론 또 다시 이런 영화의 기획이 있을 거라는 장담은 아무도 하지 못하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긴 하지만......)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은 전작인 “미술관옆 동물원”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자신 스스로의 사적인 체험을 스크린에 그대로 투영해 놓았다. 하지만 자기 자신만의 체험과 감정의 폭이 스크린에 옮겨지고, 또 그 사적 체험이 관객들 개개인의 사적인 체험과 감정을 건드릴 때 이 영화는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사적인 체험들이 영화관 속을 유영하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들은 그 체험에 대한 감정들을 가지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일까? 다시금 “집으로...”를 보고 나서 집에 가는 동안 내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물론 이 의문이 머리 속의 생각만으로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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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05 [21:0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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