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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형상은 어디에 있나이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누구도 함부로 정죄할 수 없어
 
정근   기사입력  2011/04/02 [17:54]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뒤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르시고 십계명을 주셨다. 그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그런데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 신을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부처는 어떻게 생겼는지는 안다. 절에 가면 그 형상이 있으니 보아서 알지만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여호와 그 신의 형상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도 있지만 성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조각상은 없다.  

그것은 그 자신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시덤불에 불로,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었을 뿐 이것이 내 진짜 모습이다라고 드러내 보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상을 통해 이것이 신이다, 여호와다라고 새겨진 것은 잘못된 것이다. 여호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인간의 손으로 새겨진 것이 여호와, 신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인간들 스스로를 위한 것일 뿐이다. 즉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상인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십계명의 제2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그 여호와의 아들 예수의 얼굴은 보았고 안다고 생각했다. 하얀 피부에 파란 눈, 금발의 예수, 나는 그것이 진짜 예수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란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채널인 히스토리와 영국의 BBC에서 예수의 얼굴을 컴퓨터로 복원을 했는데 그 정반대였다. 거무스름한 피부에 덥수룩한 수염의 얼굴, 그것이 진짜 예수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느 것이 진짜 예수의 얼굴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중동에서 태어난 예수의 얼굴이 하얀 피부일리는 없다. 그렇다면 거무스름한 얼굴이 진짜 예수의 얼굴? 이것이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진짜 예수의 얼굴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을 증명할만한 그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얀 피부의 얼굴이든, 거무스름한 피부의 얼굴이든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에 그려지고 만들어진 것일 뿐 어떤 것도 진짜라고 할 수 없다. 그 어느 것을 가지고 이것이 진짜 예수다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 스스로를 위한
 
그렇다면 나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신을 믿으라는 것인가? 그럼 나는 어떻게 내가 보지도 못한 신을 다른 사람에게 믿으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창세기1장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서의 처음은 이 구절로부터 시작이 된다. 성서의 첫 장은 이 구절로부터 시작하여 6일 동안 야훼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6일간의 창조 사역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습을 자신 스스로 어디인가에 새겨 놓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그랬다. 그는 이미 그 스스로 자신의 형상을 이 땅에 새겨 놓으셨던 것이다. 사람을 만드시되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형상대로 자기의 모습을 인간들에게 새겨 놓으셨던 것이다. 자신 스스로 이 땅에 이미 자기 형상을 새겨 놓으셨는데 그렇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들이 또 다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실 때에도 자신을 위한 계명 외에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들을 함께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계명이 항상 따라온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22:37-40> 또한 누가복음10장에서도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율법사의 질문에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느냐 하시니 율법사가 답하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하니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10:25-28> 

또한 그의 제자 요한은 요한1서4장20절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네 이웃 즉 인간들을 사랑하는 계명이 함께 같이 오며,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데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내 이웃인 인간들 속에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 스스로 인간들 속에 자신의 형상을 새겨 놓으셨기 때문인 것이다. 

예수께서 인간으로 오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말구유에 태어났든, 궁궐에 태어났든, 혹은 거무스름한 피부이든 , 하얀 피부이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오신 이유, 그것은 인간의 형상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으로써 삶의 길이 어디에 있음을 스스로 알려 주려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이웃인 인간을 스스로 판단하고 정죄할 수가 없다. 어찌 신의 형상을 가진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기에 예수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신의 형상을 가진, 신께서 스스로 자신의 형상을 새겨 놓으신 인간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한다. 이번에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수천만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들이 죽음을 당했다. 이 슬픔 앞에 어떤 이들은 그러한 죽음과 재난이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이야기를 한다. 우상 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아간 잘못 때문이라니 

저 이야기를 들으니 섬뜩했다. 바로 그렇게 말하는 곳에 하나님의 경고가 임해야 하는데 잘못 임해서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 것 같아서 말이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두어 사람이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할 때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눅13:2> 물으신다. 또한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눅13:4>라고 물으신다. 

그렇다. 누구도 어떠한 일로 그 일에 대해 함부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에 대해 함께 슬퍼하며 위로함이 먼저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형상을 새겨 놓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성서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겨 놓아야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한1 4:20>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황처사가 그러더군. 양반은 권력뒤에 숨고, 광대는 탈 뒤에 숨고, 칼잽이는 칼뒤에 숨는다고 난 그게 싫더라고-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사람사는 세상,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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