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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길을 따르는 인디언의 지혜
"우리는 유일신을 믿는다"
 
정연복   기사입력  2009/11/09 [14:49]
영혼의 길을 따르는 인디언의 지혜  - "우리는 유일신을 믿는다"
 
2차 대전 중에, 우리가 싸웠던 적이 신에게 기도하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그들도 신에게 기도하고 우리도 신에게 기도한다면, 신이 과연 어느 쪽을 편들까? 우리가 똑같은 신에게 기도한다면,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같은 편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종교적이라면 신학을 연구하고 성경을 인용하겠지만, 인생에서는 삶의 다른 측면도 있으며, 이런 길을 우리 인디언들은 <빨간 길>이라고 부른다. <빨간 길>은 삶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영적인 영혼의 길이다. 우리가 어떻게 영적 존재가 되는가? 그 <위대한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것을 분석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우리 마음과 영혼 속의 느낌이다.
 
나는 그 동안 원주민 인디언들은 어떤 신에게 기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원주민 인디언들은 늘 살아 계신 신을 알고 있었다. 다만 우리가 그분을 <신>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신>이라는 단어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성경에는 <복수의 신>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그 말에는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디언의 언어에서는 <생명을 주시는 그분>이나 <그 위대한 신비>라는 말을 사용한다. 크리크 부족의 말로 우리는 <그분>을 <오풍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한 분>이라는 뜻이다.
 
우리 부족의 기독교인들은 이제 <그분>을 <헤 사 케타네세>라고 부르며, 이 말의 뜻은 <호흡의 주관자>이다. 우리가 어떤 이름을 사용하든, 그 이름에는 따뜻함과 가까움의 느낌이 있다. 고통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내가 <그분의 성스러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만이 내 문제들을 도와주시는 분이다.
 
선교사들은 우리 인디언이 나무, 독수리, 파이프, 그밖에 많은 것들을 숭배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렇지 않다. 우리는 유일신을 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것들을 존경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를 돕는 조물주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약초들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들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해서 조물주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만들 뿐이다.
 
우리가 독수리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한 가지 이유는 이런 사실 때문이다. 즉 우리 인간은 산을 볼 때 한쪽밖에 못 보지만, 독수리는 어떤 생명체보다 더 높이 날고 날카로운 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양쪽을 모두 본다. 독수리가 위에 계신 조물주에게 더 가깝게 날기 때문에, 우리는 독수리가 우리의 기도를 <그분>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한다. 물론 우리도 조물주에게 직접 기도를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매체들을 사용함으로써 <그분>에게 더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그분>에게 밤낮으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겸손한 방식으로 다른 생명체를 통해 <그분>에게 우리의 뜻을 전하려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이 먼 곳에서 병이 들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네 방향과 바람을 사용해서 우리의 좋은 에너지를 그 사람에게 전한다. 우리는 살아 계신 신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늘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직접 그곳에 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말을 하지는 못해도, 우리를 돕는 살아 계신 신의 강력한 손으로 그 사람이 도움을 받도록 만들 수 있다.
 
그 <성스러운 파이프>가 있기 전에 우리는 나무를 만져서 조물주와 연결되곤 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 나무 같은 것이 없으면, 그때는 흙을 갖고 같은 일을 하곤 했다. 그것을 만지고 그런 후에 그것으로 우리의 몸을 만졌다. 하지만 우리가 숭배한 것은 그 나무나 흙이 아니라 그것들을 만드신 조물주였다. 깃발이나 영물이나 네 방향은 그 자체로서 신이 아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강력한 주술사 방식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조물주가 그것들을 보내 우리가 사용하도록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 <더 높으신 존재>와 더 잘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결론은 한 분의 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베어 하트,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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