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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신앙의 구원론 : 야고보 2:14-17 묵상
야고보 2:14-17 묵상
 
정연복   기사입력  2009/10/26 [08:48]
한국교회의 으뜸가는 단골 메뉴인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교리는 믿음을 몹시 강조하는 바울서신의 여러 본문, 특히 로마서에 기초한다. 그러나 탁월한 복음 변증가인 바울에게 있어서는 믿음과 행함, 신앙과 윤리, 복음과 율법이 한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사실을 전통 신학과 교리에서는 간과하거나 고의적으로 무시해온 게 아닐까.

율법 수호에 목숨을 걸었던 열렬한 바리새인 바울은 극적인 예수 체험 이후에도 율법을 전혀 무가치하다고 여겨 내팽개치지 않았다. 바울은 예수 체험으로 율법주의적 삶의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그러면서도 율법이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소중한 위치를 계속해서 인정했다.

바울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외친 것은 다분히 전술적이다. 그것은 추상적·무시간적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받은 선민이기에 구원 또한 자신들만의 몫이라는 착각과 교만에 빠져 있는 유대 기독교인들에 맞서 '율법 없는' 이방인들의 인간적 권리를 주장하는 이방 선교 상황에서 나온 '전투적' 구호였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마치 바울 신학의 핵심이며 기독교의 '정통' 구원론인 양 주장하는 것은 몹시 위험하다. 바울서신도 복음서처럼 믿음은 행함의 뿌리로서만 가치가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 구원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은총만을 강조할 뿐 정작 구원의 당사자인 인간의 주체적 노력은 무시하는 '정통' 신학과 교리보다는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협동을 말하는 소위 '신인 협동설'이 바울서신과 복음서를 아우르는 성서적 구원론에 훨씬 더 가깝다.

이제 한국교회는 성서와 인간의 건전한 상식에 비추어 구원론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오직 믿음'이라는 구호 하나만으로 구원론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율법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좀 더 유연하고 폭넓은 구원론에 눈뜰 필요가 있다. 인간의 선한 잠재력을 꽃피우는 인간화(人間化)로서의 구원이라는 실천적 맥락에서, 인간 구원에서 인간의 주체적 참여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설교와 예배와 신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복음서와 바울서신이 전하는 근본 메시지는 단순 명료하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34)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 (갈라 5:6) 바로 사랑이다! 이렇듯 단순 소박한 것을 교리와 신학으로 자꾸 헷갈리게 하면 안 된다. 물론 교리와 신학도 교회 공동체의 건전한 유지와 신앙생활에서 그 나름대로 역할을 하겠지만, 잘못된 교리와 신학 때문에 믿음의 본질이 훼손될 수는 없다.

신학은 복잡하고 난해할 필요가 전혀 없음을 오늘 본문은 시사한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바울의 신학이 어딘지 모르게 지적(知的) 냄새를 풍긴다면, 야고보서의 신학은 '신학'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대중적이다. 복음서들보다 수십 년 앞서 신학의 기초를 닦은 바울의 업적도 크지만, 무식한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는 평범한 생활 언어로 풀이하는 야고보서의 신학도 바울신학 못지 않게 기독교의 소중한 전통이다.

일상생활의 구체적 예를 들어, 야고보서 기자는 말로만 이웃 사랑을 외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생활 신학이요 생활 신앙의 구원론이다. 오늘 본문은 굳이 구구절절 주석을 달 필요도 없다. 꽃을 보고 그 꽃의 향기에 흠뻑 취하면 그만이듯, 우리는 오늘 본문의 삶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우리의 삶과 믿음을 겸손히 반성하는 걸로 족하다.

오늘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고 말만 할 것인가? 나눔을 실천할 것인가?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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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0/26 [08: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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