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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건강위기 속 '생환 36주년'…그때 무슨 일이
'중정' 피랍-박정희 묵시적 승인…"13일 기적같은 회복 기대"
 
김정훈   기사입력  2009/08/12 [19:47]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건강이 안정을 되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13일 생환 36주년 기념일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1973년 당시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가 가까스로 생환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또다시 위기를 맞은 것으로, 김 전 대통령의 쾌차를 바라는 이들은 36년 전 그날처럼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 반유신 활동중 '중정'에 의해 피랍
 
1972년 10월 일본 체류중 '10·17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과 미국에서 반유신 활동을 이어간다.
 
이듬해 8월 8일,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기 위해 일본 도쿄 그랜드팔레스 호텔을 찾은 김 전 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다.
 
훗날 중앙정보부 공작원들로 밝혀진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을 마취제로 기절시킨 뒤 오사카 내 중앙정보부 안가로 옮겼고, 이후 공작선 '용금호'에 강제로 실었다.
 
9일 오사카항을 출발한 용금호는 이튿날 부산에 도착했으며 김 전 대통령은 곧바로 서울 중앙정보부 안가로 끌려가 감금됐다.
 
이후 납치 129시간 만인 13일 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동교동 자택 앞에서 풀려나게 된다.
 
◈박정희, 최소한 묵시적 승인
 
지난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발전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 가능성이 있으며, 최소한 묵시적 승인이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거사위는 중앙정보부와 일본 내 중정 파견관 사이 주고받은 전문을 통해 김 전 대통령 납치 방안이 포함된 이른바 'KT공작계획서'가 작성됐음을 확인했으며, 관련자들의 증언과 정황을 통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공작의 목표는 살해가 아닌 단순 납치였다고 국정원 과거사위는 설명했다.
 
납치 과정에서 직접적인 살해 기도가 없었고, 다수의 중정 요원이 가담해 살해를 위한 공작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이유다.
 
결국 '정부의 공식 개입은 없었다'는 그간의 공식 입장은 뒤집어졌고, 일본 정부에게도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살해 목적의 납치가 분명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본다"면서 조사 결과에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36년 전 그 때처럼 기적같이 회복될 것"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서는 당시 납치 사건 이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까닭에 매년 성당에서 생환 미사를 하고 주변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건강이 매우 악화된 올해는, 중환자실에서의 기도 모임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생환 기념식을 준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납치됐다 무사히 생환한 것처럼 이날을 기해 건강이 회복되기를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11일, 납치 사건 당시 도움을 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36년 전 8월 8일 납치돼 사경을 해매시다 13일 생환해 여사님 곁으로 돌아오셨다"며 "지금이 그 납치를 당해 고통을 당하는 시기이고, 여사님에게 걸어오신 것처럼 아마 13일에는 기적같이 회복되실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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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12 [19: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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