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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연예인 누드 열풍과 인간소외
포르노적 시선과 상업주의, 그리고 검열의 문제들
 
백광부   기사입력  2003/10/09 [15:52]

▲목욕하는 두 여인프랑스의 화가 르누아르의 작품.     ©corel
고대 그리이스인들은 조화와 균형을 갖춘 육체의 아름다움을 정신적인 아름다움과 연결시켰다.  이러한 그리이스의 전통이 한 때 억눌리기도 했지만 르네상스를 통해 부활했고 근대 이후로 누드 표현은 서양 미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한편 누드 표현의 전통이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화백의 '해질녘'이 일본 문부성 전람회에서 특선을 받자 <매일신보>에는 춘원 이광수가 쓴 '해질녘'의 감상기가 소개되었는데 그림 사진은 나체를 보일 수 없다는 이유로 실리지 못했다고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누드에 대해 생경스러움을 느끼는 우리 대중들의 태도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인규 교사가 개인홈페이지에 자기 누드 사진을 올렸다가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교육계와 지역사회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것이 지난해의 일이다.

[관련기사] 이승훈, 요구르트 누드 퍼포먼스가 성행위인가, 대자보(2003.3.12)

그러다 올해들어 갑자기 과거와  다르게 누드가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과 모바일서비스라는 기술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누드를 자연스러운 예술적 표현 대상·수단으로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향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유명가수인 김완선의 누드집중 한장면    
컨텐츠제공업체들은 통해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누드 표현물을 쏟아부으면서 돈을 끌어 모으고 이렇게 넘쳐나는 누드에 한국누드협회장인 하영은씨는 "연예인의 누드는 (진정한, 예술로서의) 누드가 아니다" 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대중은 고상한 예술적 표현으로 봐야할지 부끄러운 통속물로 봐야할지 선택의 의무감으로 당혹스러워한다.  김인규 교사 사건, 이목일 화백의 누드퍼포먼스 사건, 누드셀카축제에서 체모가 보인다는 이유로 구속기소된 베드러브 사건 등에서 보이는 누드에 대한 과민반응은 대중들이 선택의 의무감으로 당혹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을 방증한다.

누드를 제공하는 연예인 당사자들은 어떤가? 그들의 이쁜 얼굴과 너무 알려진 얼굴은 누드모델로서는 핸디캡이다. 몸 전체로 고루 가야할 시선을 얼굴로 끌어모아 감상을 방해한다. 히프나 유방을 강조하는 등 그들은 애써 고혹적인 눈빛과 자태로 무엇을 느끼라고 강요하고 있다.

대중들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선택해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면서 벌써 예술적인 것에서 멀어져 있다. 모델들은 신체의 균형과 조화미를 느낄 수 있게,  익숙함 속의 생소함과 생소함 속의 익숙함을 찾을 수 있게 누드를 보여주지 못하고 예술적이기엔 너무 파쇼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돈이 모이지 않았다면 애초에 누드 열풍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드 표현물에 원래 관능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상업주의와 결부해서 관능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발휘되면서, 또 관능만을 강조하는 것을 개성으로 봐준다하더라도, 상업주의가 정형성을 초래하면서 예술성을 해치고 있다.

수용자 환경을 생각할 때도  지금의 연예인 누드가 비밀스러운 온라인을 통해 개개인들에게만 보여짐으로써 누드는 공개되면, 함께보면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먼저 심어준다. 결국 몸에 대한 당당한 태도를 갖기도, 몸에 대한 미의식을 확인하기도 어렵게 된다.

상업주의가 잘못이라며 연예인의 누드가 예술적 표현물과는 거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연예인 누드에서 보이는 상업주의, 즉 몸의 상품화 내지 성의 상품화가 성평등 문화를 역행시킨다는 사회학적, 여성학적관점에서의 문제 제기다.

여기서 몸이나 성의 상품화 그 자체가 문제로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 성평등 문화에 역행한다는 결론을 내려면 그 사이에 '인간소외'라는 논리적인 연결점을 하나 더 두어야한다. 상업주의와 연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비판받은 누드 표현물이 많기에 논리적 비약을 조심해야한다.

이목일화백의 요구르트 누드퍼포먼스는 30분짜리로 기획되었지만 시작한지 3분만에 중단당했다. 이것은 일종의 검열이다.  그리고 누드 퍼포먼스를 비판하는 주장의 상당수는 광고용으로 퍼포먼스가 기획되었다는 논거를 든다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이 잘못 가해진 것이다. 메세나운동은 어쩌란 말인가? 

베드러브사이트의 누드셀프카메라페스티발은 연예인의 누드와는 달리 성인인 일반인들이 개개인의 평범한 몸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기획을 갖고 시작되었다.  이 누드셀프카메라 기획자가 구속수사를 받았다. 사이트에 오른 사진 중에 음모나 성기, 정액 등이 보이는 사진이 일부 있다는 것과 상업주의가 구속수사의 논거다.  구속수사는 지나친 감이 있다.  

김인규교사의 홈페이지 누드사진은 무죄로 결론이 났으나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부적절하고 경솔한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충격을 받았다기 보다는 학부모와 교육청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시끄러운 소리는 어른들만 질렀다. 

우리 사회가 누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에 이런 일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누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누드가 우리 사회에 생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연예인 누드 엺풍은 누드에 대한 이런 생소함을 익숙함으로 만든다는 데에 일말의 긍정적인 효과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저명한 법학자이자 부패(뇌물)학 전문가인 누난에 의하면 연예인 누드에 대한 노출과 관음의 포르노적 시선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결론을 얻을 수도 있다. 고래로부터 사회를 지탱하는 두개의 큰 윤리는 개인윤리와  공인(공직)윤리였다.  공인윤리가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성과 투명성이라면 개인윤리는 성도덕이다.

포르노적 시선은 이 개인윤리를 사회가 규율하고 강제하는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역할을 한다.  개인 윤리가 사생활의 불가침 영역으로 이동하고 개인이 자율적으로 규율하는 것이다.  그결과 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은 공인윤리뿐이다. 공인윤리만이라도 지켜야 사회가 지탱할 수 있기에 공인윤리에 엄격해져서 사회의 투명성이 높아진다. 

포르노적 시선은 넘쳐나면서도 부패인식지수, 투명성지수는 작년보다 10단계 더 떨어져서 세계 133개국 중 50위라고 한다. 준공인인 연예인들이 포르노적 시선을 유도했기 때문에 공인윤리에 대한 관심을 가져간 것일까?  누난이 설명하는 인과관계에 따른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 언제 실현될 수 있을지 하수상한 시절이다.

연예인 누드 열풍은 인간소외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그 극복방안을 모색해야한다는 과제를 우리 사회에 던지지만, 소외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누드 표현물,  김인규교사· 이목일화백· 베드러브사이트의 누드들이 우리 사회에서 비난받거나 표현을 제약당하고 있는 반면 그에 대한 고민 없이 표현되고 있는 연예인 누드는 유행하니 아이러니컬하다.  이것이야말로 상업주의이다.

자유... 백광부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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