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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대한 열정', 제발 애국심은 빼주시라
[정문순 칼럼] 야구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열광, 팬의 추태보다 못하다
 
정문순   기사입력  2009/03/24 [10:50]
애향심의 발로인지, 부산에서 자란 내게 스포츠로서 야구는 친숙한 이름이다. 작심하고 축구 중계를 보아도 공 몰고 뛰는 것 외에는 경기 흐름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나로서는 경기 규칙을 웬만큼 아는 유일한 스포츠가 야구이다. 고등학교 때 집도 학교도 야구장 근처에 있던 덕분에 평일 야간에 경기가 열리면 온 동네를 대낮같이 밝힌 하이라이트 불빛 속에 귀가하던 길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크고 화려한 야구장이 다른 곳에 생긴 뒤로 그런 기억은 재연해볼 여지가 없어졌다. 

부산의 프로야구 팬들은 홈팀 선수들을 극성스럽게 챙기기로 유명하다. 야구장 근처의 어느 호프집 주인은 큰 대회가 열리면 아예 문을 닫아건다. 직접 경기를 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든 식당에서 밥값을 낼 일이 없던 선수도 있었다. 손익과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도 마다하게 만드는 존재, 그건 가족 사이에나 가능하다. 말 그대로 ‘홈’팀이기 때문이다.  

선수에게 팬은 가족처럼 가깝고 살가운 존재들이다. 이기면 열광하고 지면 안쓰럽다. 이긴다고 해서 떡이 생길 리도 없고, 진다고 해서 자기에게 무슨 손해가 생기는 것도 아니건만, 팬들은 경기하는 순간만큼은 승패에 목숨을 걸 듯 집착한다. 여기에 무슨 거창하거나 심각한 이념이 끼어들 리 없으며, 오직 경기를 즐기는 것만 있을 뿐이다. 간혹 열정을 자제하지 못해 선수들과 시비를 벌이거나 경기장에서 난폭한 행동을 하는 팬들도 있지만 아무런 이득도 손해도 재보지 않고 몰입하는 무색무취의 정열만큼은 시비를 논하기 힘들다.  

그러나 사랑하는 팀의 선수가 국제 경기에 차출되어 태극마크 유니폼을 입고 등장할 때는 사정이 좀 달라진다. 더 이상 사람들은 국가대표 선수를 ‘순수’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별 이유도 없이 홈팀이 이기면 웃고 지면 우는 부산 야구 팬의 마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애국심이라는 분명한 이유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     © WBC 공식홈페이지

양 팔 들어 승리를 환호하는 선수들의 사진이 모든 뉴스를 제치고 신문 1면을 차지하고, 일본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이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을 때, 스포츠는 이미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경기하는 선수들의 몸은 적국과 전쟁 치르는 전투원들의 몸이다. 그들은 배트를 휘두르고 공을 던지는 선수들이 아니고 총검을 휘두르고 적진을 향해 포탄을 던지는 군인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고된 단련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겨루는 선수의 몸이 아니라 살벌하고 호전적인 전사의 육체이다.
 
야구 대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자 병역 미필 선수들에 대한 병역면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운동선수가 국제 경기에 참가하는 것을 군인의 병역 수행쯤으로 보는 착시 때문에 가능하다.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전사가 되었으니 선수들의 부담이 얼마나 크겠는가. 이기면 국가적 영웅이고 지면 역적으로 전락한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막대한 중압감을 줘야 하니 병역 면제라는 당근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애국심에는 본디 합리적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야구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을 이긴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와의 국력 경쟁이나 전쟁에서 이긴 것으로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면, 애초에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통해 수입된 야구를 즐기는 것을 먼저 부끄러워해야 맞을 것이다. 부산이 야구에 열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과의 지리적 가까움 덕분이다. 비슷한 경우로 영국 프로축구 1부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에 대해 국위 선양을 한 것인 양 좋아해야 한다면, 국내 리그가 수준이 떨어져 뛰어난 선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나라의 처지를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국내 경기에서 홈팀이나 좋아하는 팀의 선수에게 대가 없이 열광하는 것이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스포츠 경기를 애국심과 연결 짓는 건 반논리적인 사고방식이다. 스포츠에서 나라사랑의 감동을 느끼는 건 고상하고 숭고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술에 취해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부산의 중년 ‘아저씨’ 팬이 스포츠를 대하는 열정보다 결코 격이 높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포츠의 의미를 가볍게 보는 사람은 아니다. 사는 곳이 강남 지역이냐 강남이 아니냐에 따라 한 사람의 미래가 코흘리개 적부터 이미 판가름 난 것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실력이 결과와 정비례하지 않는 스포츠의 세계는 불합리한 현실이 구현하지 못하는 융통성 있는 세상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실력 있는 팀이 늘 1등을 차지한다면 그 경기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다.  

약자에게 만회할 기회가 주어져 있고, 앞서간다고 하여 자만과 낙담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는 스포츠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게임을 불가피한 현실로 알고 순응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면, 스포츠는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현실 정치와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세계에다 기어코 가장 정치적인 현실의 하나인 국가주의를 갖다 붙이기에는 스포츠가 아깝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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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24 [10: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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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준하곤... 2009/03/26 [01:47] 수정 | 삭제
  • 이런 수준 이하의 글을 쓸 것입니까?
  • 시민 2009/03/25 [02:08] 수정 | 삭제
  • 애국심, 민족 단어만 나오면 알레르기. 스포츠 관전은 그냥 조용히 해라? 기사 곳곳의 말도 안되는 억지논리에다가... 여튼 한국의 근본주의자들 못말려. 뭐 하나 외국에서 수입해서 머리에 입력하면 끝장볼 때까지 고고씽하는 근본주의자들.. 탈민족 근본주의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