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조선’ 기자가 통합과 상생을 말하다니..
[기자수첩] '국민의힘' 매도 여전, '조선동일체' 확인 씁쓸
 
심재석   기사입력  2003/09/10 [17:46]

‘기자’라는 단어가 명함에 또렷이 박힌 이후에 생긴 괴로움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거의 매일 ‘조선일보’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가끔 신문가판대에서 제목이나 훑어보고 “(속으로) 이런 XX들”이라고 욕이나 하고 말았었는데 이제는 날마다 봐야 하니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으니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10일) 조선닷컴에 접속해서 이것저것을 훑어보고 있었다. ‘기자클럽’이라는 코너에 ‘국민의 힘 관계자들이 찾아오던 날(이위재)’이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기자클럽은 정식 기사는 아니지만 기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에세이처럼 쓰는 코너이다. 평소에 조선일보 기자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고, ‘국민의 힘’ 회원들과 조선일보 기자들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클릭했다.

▲조선일보 기자클럽, 이위재의 글읽기와 삶읽기 / 국민의 힘 관계자들이 찾아오던 날     ©조선닷컴

주요내용은 지난달 30일 항의방문 왔던 ‘국민의 힘’ 회원들과 조선일보 기자들과의 면담상황 등에 대한 기자의 느낌과 소견을 쓴 글이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글을 쓴 이위재 기자는 ‘국민의 힘’ 관계자가 하필이면 휴일인 토요일(일간지 기자는 토요일이 휴일이다) 찾아온 것에 대해 투덜거렸다. 충분히 공감한다. 필자도 일주일에 한번 있는 휴일에는 아무 사건도 행사도 없길 바라며 살고 있다. 하루평균 12시간 가까이 일하는데 휴일마저 빼앗긴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기자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글의 초반부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글을 읽을수록 ‘역시 조선일보군..’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위재 기자에 따르면 ‘국민의 힘’ 주장의 요지는 “쿠데타를 선동하는 글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과 노무현 대통령을 조폭에 비유, 그를 따르는 국민을 모독한 신경무 화백이 당장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솔직히 필자도 ‘국민의 힘’이 신경무 화백의 만평을 가지고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것은 속된 말로 ‘국민의 힘이 오버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만평은 ‘대통령을 조폭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아니라 ‘대통령이 힘으로 검찰을 협박했다’는 팩트(fact)를 과장한 것이 문제점으로 보인다. 팩트에만 기초한다면 만평에서 대통령을 조폭으로 묘사하던 개구리로 묘사하던 유쾌, 통쾌, 상쾌함을 주는 좋은 풍자가 될 수 있다.

국민의 힘을 비판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니 이만 넘어가자

이위재 기자는 “오전11시쯤 회사에 당도하니 얼굴을 잔뜩 찌푸린 3명의 국민의 힘 관계자들이 휴게실에 앉아있었다. 정치기획위원장(명칭이 정확치 않다)이라고 나중에 들은 사람과, 경기대표일꾼(명함을 교환해서 알았다), 그리고 또 한 명이 있었다.”고 말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3명의 국민의 힘 관계자? 좋다. 개인적 느낌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이기자는 정치기획위원장을 소개하면서 명칭이 정확치 않다고 했다. 이위재 기자가 우려했던(?) 대로 국민의 힘에는 ‘정치기획위원장’이 없다. 대신 ‘정치개혁위원장’이 있다. 그리고 ‘국민의 힘’의 정치개혁위원장은 이상호(ID 미키루크)씨로 KBS 100인토론에서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하고 1대1 토론을 벌였던 유명인이다. 물론 TV를 안 봤다면 모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균연봉이 9000만원이 넘는다는 조선일보 기자가 이렇게 게을러도 돼나? 정치기획위원장인지 정치개혁위원장인지 국민의 힘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5분 안에 알 수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는 ‘잘못 들을 수도 있지 뭘 그런 것을 가지고 따지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도 확실치 않은 직책명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정식기사가 아니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부정확한 직책명임에도 확인해보지 않고 고의적으로 그냥 썼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부정확하게 씀으로써 “’국민의 힘’ 따위의 직책에 관심없다”는 오만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위재 기자는 “서로 얘기를 하는 동안 ‘찍지 말아달라’는데도 무시한 채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하던 한 국민의 힘 회원처럼 보이는 젊은이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충고까지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국민의 힘’을 비롯한 안티조선 단체는 기자회견할 때 “조선일보 기자는 나가달라”고 항상 얘기한다. 조선일보에 기사가 나오는 것이 기쁘지도 않을 뿐더러 지면에 나와도 악의적으로만 나오니 차라리 조선일보의 취재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에는 반드시 안티조선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기자회견장에서 나가달라는 부탁에도 정체(?)를 숨긴 채 끝내 취재를 하던가, 아니면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기사를 베끼는 것으로 판단된다. 1등 신문이라 자부하는 조선일보가 남의 기사를 베낄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나가달라는 요구를 무시하나 보다.

사실 여기까지는 보기에 따라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읽고 가장 분노한 부분은 아랫 부분이다.

“진실 여부를 떠나 그들은 예외없이 이번에도 조선일보 친일 문제, 군사 독재 시절 굴종 여부 등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몇 년전인가부터 나타난 안티조선 운동에 있어 결정적인 족쇄는 진부함이다.”

안티조선운동을 격려하는 것인가? 이위재 기자는 진부하지만 않으면 안티조선운동에 동조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친일 문제, 군사 독재 시절 굴종’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으니 엉뚱하게 진부함을 들고나오는 것이다.

조선일보 친일 문제, 군사독재시절 굴종여부가 진부하다? 백번양보해 진부하다고 치자. 이 진부한 얘기에 조선일보가 한마디 반성, 사과를 한적이 있나? 힘없는 조선의 젊은이를 일제의 침략전쟁에 참여시키고, 수천 명의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을 ‘민주주의 완성자’로 칭송하고, 광주시민을 빨갱이, 폭도로 몰아간 ‘조선일보’의 기자가 감히 안티조선의 진부함을 얘기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기자는 국민의 힘 회원이 왜 ‘부끄러운 줄 알라’고 했는지 집에가서 곰곰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글의 이후 부분에서 이위재 기자는 엉뚱하게도 명계남씨의 행동을 추적했다. 빗속에 쭈그리고 앉아있었다느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조선일보가 붙은 상자를 찢었다느니, 벤치에 앉아 빵을 먹었다느니.. 이기자가 왜 이렇게 명씨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는지 굳이 반박하지는 않겠다. 의도가 너무 치졸하기 때문이다. 최근 조선일보는 ‘명계남 때려잡기’에 혈안이다. 몇 달 전까지 ‘문성근 때려잡기’를 즐기더니 이제 문성근씨한테는 싫증이 났나보다.

이위재 기자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극단적인 니힐리스트가 아니고서야 이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길 원하는 국민은 없다”며 “생각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통합과 상생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어서 아쉽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통합과 상생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람이나 집단과 할 수 있다. 친일파와 통합, 상생하려면 친일파가 먼저 반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살인자를 용서하려면 살인자가 먼저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위재 기자는 ‘통합, 상생’ 좋은 말이라고 다 갖다 쓰지 말고 통합과 상생을 위해 조선일보 스스로 반성과 참회할 수 있도록 조선일보의 구성원으로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위재 기자의 프로필을 보니 정운영 교수(경기대)와 고종석 논설위원(한국일보)의 글을 좋아한다고 한다. 위 인사들의 글은 필자도 무척 좋아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생각이 다른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역시 결론은 조선일보라는 조직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은 수 없다.

이위재 기자의 글을 보고 느낀 점은 “어떻게 기자 개인의 에세이가 조선일보 전체 논조와 한치도 다르지 않나?’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폐지하기로 했다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처럼 조선일보는 사주부터 말단기자까지 하나가 되는 ‘조선동일체의 원칙’이라도 갖고 있는 것일까? 일반 기사는 데스크를 거치니 논조가 통일될 수 있다고 쳐도 기자클럽의 글까지 통일된 논조를 보인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09/10 [17:4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