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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노출 패션에 비난은 그만하라
[정문순 칼럼] 옷 입기는 표현의 자유와, 몸의 권리이다
 
정문순   기사입력  2008/08/13 [12:55]
무더운 여름이다. 태양의 계절이라고 한다. 태양이 자신을 숨김 없이 온통 다 드러내고 뜨겁게 유혹하는데 나도 가만 있을 수는 없다. 얼마 전에 사놓은 짧은 청치마를 입고 길을 나섰는데, 중년의 두 남자와 맞닥뜨렸다. 그 중 한 사내의 시선이 내 드러난 무릎에 꽂힌다. 지나치면서 그 옆의 남자가 그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뭐 어때. 보기 좋잖아." 옷을 입을 때 나의 안중에는 한여름의 태양빛만 있었을 뿐 이물질이 끼어들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봉변을 당한 무릎에 쥐가 났는지 한동안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성이 노출 있는 옷을 입을 자유가 있는 세상에서는 남자들의 저급한 시선의 폭력이나 관음증, 비난이 허용되지 않는다. 옷은 몸을 가리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몸을 노출시키는 것도 옷의 기능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옷에게 내 몸을 덮는 일을 시킬지 드러내는 일을 시킬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판단 몫이 아닌가 말이다. 옷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은 침해당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리임에도 이 당연한 권리의 행사를 오지랖 넓게 참견하는 나라가 있다.
 
표현의 자유가 없는 꽉 막힌 세상은 사람들의 일상 의식마저 폐쇄적으로 만드는가보다.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믿는 어떤 남성은 여성의 노출 차림이 나쁘다고 잘라 말한다. 여름에는 눈길을 거둘 데가 없다고까지 하는 것이었다. 정작 본인은 체모가 무성한 다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짧은 반바지 차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 취향을 말하자면 남자들의 그런 차림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남의 취향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할 수 없는 일이다. 옷차림을 통해 나타내고 싶었던 당사자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그가 뭘 입든 신경을 끊으면 된다. 남의 외양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면 시선 처리에 고민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노출에 관해 남자들의 오해는 크다. 노출이 저속하고 선정적으로만 보이는가? 옷은 몸을 덮는다고 하여 신체를 은폐하는 쪽으로만 기능하지는 않는다. 거꾸로 신체의 특정 부분을 두드러지게 부각하거나 과장하기도 한다. 브래지어는, 그것을 입지 않으면 눈에 크게 띄지 않을 가슴을 실제 이상으로 돋보이거나 왜곡되게 보이게 한다. 선정적인 것을 따지자면 몸에 맞지 않게 돌출한 브래지어만한 것이 없다. 여성의 노출을 불편하게 보는 이들이라면 남성의 일방적인 욕망에만 부합할 뿐 여성 자신의 건강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브래지어 차림에 오히려 민망해야 하고 여성들에게 입지 말라고 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매장에 가서 심이 받쳐져 있지 않은 브래지어를 찾았더니 숲속에서 보물찾기하는 기분이 들었다. 속옷 매장에 걸린 수많은 옷 중에서 여성의 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거의 없다. 여성 속옷은, 겉으로는 여성 몸에 관해 금욕을 표방하면서 실상은 숨어 있는 것을 들추어 보고 싶어하는 남성적 욕망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옷이 돼버렸다. 브래지어를 걸치지 않거나 노출 복장의 여성이 비난받는 이유는 야해서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그런 차림은 남성들의 자기당착적 욕망을 충족시킬 만큼 선정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코코 샤넬이 치마 길이를 과감하게 무릎에 끌어올려 내놓기 전까지 여성의 몸은 치렁치렁 끌리는 치마 속에 갇혀 있어야 했다. 20세기 벽두만 해도 세상의 여자들은 짧은 치마는 고사하고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지 못했다. 투표권도 없는 시대의 여성들 위상이 그랬다. 당시 바지를 입고 거리에 나서는 서구 여성들은, 무릎이 드러난 치마를 입은 오늘의 한국 여자가 사내한테 희롱을 당하듯 공공연히 모욕당하거나 심지어 경찰에 잡혀가는 것을 각오해야 했다. 운신을 힘들게 하는 긴 치마는 종종 치명적인 일을 재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극장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불이 날 경우 몸을 빨리 피하지 못해 화를 당하는 여성들이 많았다고 한다.
 
바지 못지않게, 짧은 치마가 여성의 몸에 정착하기까지도 굴곡이 많았다. 경찰이 지나가는 여성을 불러 세워 치마 길이를 자로 재던 시절이 있었다. 1930년대 서구의 사진에 남아 있는 풍경이다. 이 장면은 40여년을 지나 지구 건너편 군사정권 치하 나라에서 똑같이 재현되었다. 자를 들고 다니는 경찰은 이제 사라졌지만 여성 몸에 대한 억압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 짧은 치마 차림의 여성을 도둑 촬영한 사내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정도로 여성 몸의 권리에 대한 철저한 무지를 드러내는 한국 사회라면, 서구 여성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낙태나 브래지어 미착용은 한국 여성들에게 아직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더욱이 그악스런 보수정권의 등장으로 10년 이전의 세상으로 급격히 뒷걸음질 치고 있는 한국 정치에서 여성인권지수 역시 10년 이전으로 되돌려질 것만 같다. 그 때는 배꼽을 드러낸 옷이 등장하기 시작할 때였고, 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던지 토론 프로그램에서 논쟁이 되기까지 했다.
 
여성의 옷차림이 토론 주제가 되는 희한한 세상 수준으로 회귀할지 모르는 사회에서는, 노출 패션으로 거리를 누비는 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와, 여성 몸의 권리를 주장하는 효과적인 징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느냐, 자를 들고 다니는 사회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이 생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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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8/13 [12: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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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08/08/19 [18:05] 수정 | 삭제
  • "...옷에게 내 몸을 덮는 일을 시킬지 드러내는 일을 시킬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판단 몫이 아닌가 말이다...." 라고 하고 있는데...

    우리사회에 만연한 단세포적이고 저급한 진보 논리로군요.

    님의 논리 속에는 '자신'만 있고 '사회'는 없는 야만적 논리입니다. 진보는 전혀 아니고요.

    님의 논리대로 하자면 님은 바라리맨의 표현(노출)의 자유를 인정해야 하나요?

    인정하지 않는다면 님의 논리가 잘못된 것입니다.

    개인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회도 중요하답니다.

    사회를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는 그런 사색을 먼저 하면 이런 왜곡된 글을 남발하지는 않습니다.
  • 남자 2008/08/15 [23:15] 수정 | 삭제
  •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남성들의 입장도 헤아려줘야 남녀평등의 사회가 되지. 제멋에 겨워 입는 옷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는 행위일텐데, 거기에 눈길주는 남성들을 비판하면 어쩌라구.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는 법. 노출이 심한 옷 입고다니면 웬만큼 발생하는 일에대해서는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기 바란다.

    그리고 강제적이거나 몰래카메라 설치해서 하는 도촬이야 범죄행위이지만, 공공장소에서 사진촬영이 형사적으로 처벌될 근거는 없어 보인다. 다만, 상대방 여자가 고소를 제기할 경우에도 '초상권'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기 바란다. 성적수치심, 불쾌감 운운은 어이없다.

    그럼 막말로 노출심한 옷 입고 다니는 사람볼때 나이드신 분들은 불쾌감이나 성적수치심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를 바탕으로 그 여자를 고소해도 될까?

    왠만큼 자중해서 조신하게 입고다니든가, 아니면 본인스스로도 책임감을 느끼고 시선에 초탈해지든가.
  • ㅍㅎ 2008/08/14 [15:57] 수정 | 삭제
  • 잔뜩 노출해 다니면서 쳐다보면 가리는 이유는 또 뭔가?

    노출해 다니면 남들이 쳐다 보는 것 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정도 생각이 없으면 노출 하지 마시라!
  • 새벽달 2008/08/14 [14:51] 수정 | 삭제
  • 남자의 시선을 '이 물질'로 바라보시는 건 어떤 사고체계에서 가능한 것인지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은 기혼자, 중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젏은 사람은 이 글 필자에게는 '사람도 아니다'라는 무시를 당하는 것 같아 참 씁쓸하군요.

    노출패션에 대하여 토론하면 무슨 일 있나요. 다른 사람들은 토론할 자유도 없나요. 자신은 노출 패션을 '즐길'자유가 있는데, 다른 사람은 노출 패션 토론을 '즐길'자유가 없다는 건 무슨 논리인가요. 그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무서우면 노출 패션을 안하든지 아니면 니네가 뭐라든 난 한다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노출 패션한다고 뭐라고 하지도 말아라. 이건 어디서 오는 오만인가요.

    이 글 필자가 거리를 모두 세를 낸 것도 아닐테고, 다른 사람의 시선의 자유를 통제할 권리도 없을텐데, 자기가 즐기는 것은 마음대로 해도 되고, 다른 사람이 즐기는 건 저속하니 하지마라. 이글 필자가 이 사회 나아가 세상의 문화를 재단하고 평가할 능력과 권한이 있긴 하나요.

    그냥 자유롭게 마음대로 입으세요. 남이 뭐라고 하면 그건 그 사람의 의견이에요. 당신의 면전에서 당신을 비난하지 않는 한 그 건 그 사람들의 자유예요. 자신의 자유를 즐기려면, 다른 사람의 자유도 침범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자유는 저속한 것이라는 오만도 하지 마시구요.

    참 글구 남들이 감놔라, 배놔라 하면, 그 말 듣지 마세요, 이글 필자가 그것을 따라야 할 이유도 없자나요. 그냥 즐기시고, 다른 사람 비난만 하지 마세요.

    P.S. 이글 필자는 도촬한 남자가 무죄받았다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남자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파악했다는 듯이 이야기 하시는데, 분명히 도촬에 대해서는 법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고, 도촬한 남자를 처벌하려면 위 법이 정한 사실이 존재해야 하는데, 사실 존재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무죄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즉, 수사 능력의 한계가 무죄의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일부분으로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 조금은 무섭습니다. 독재정권이 주로 하는 수법으로 알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