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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부시채널, ‘알 후라’ 천덕꾸러기로 전락
[국제동향] 워싱턴포스트 보도, ‘알자지라’·‘알아라비아’에 형편없이 밀려
 
최방식   기사입력  2008/06/24 [14:34]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며 ‘알 자지라’나 ‘알 아라비아’에 대항하기 위해 무려 3천억원 이상을 투자해 세운 아랍어 방송 ‘알 후라’가 무슬림 누구의 관심도 사로잡지 못하는 형편없는 채널이 되고 말았다고 23일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알후라는 중동에서 미국의 이념과 캠페인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된 아랍세계에 유일한 자칭 ‘자유방송’. 3억5천만달러나 들었다. 그러나 방송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시청자의 관심을 사거나 반미(회의감 또는 거부감) 정서를 극복하도록 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다.

미국은 대테러전쟁을 승리하려면 무슬림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프로파간다(선전)를 시작했다. 하지만 알후라는 떨어지는 프로그램, 의회의 방해, 그리고 아랍어에 능숙하지 않은 진행으로 말썽을 일으켰다.
 
▲미국의 아랍어 프로파간다 방송인 알후라. 대테러전쟁을 치르면서 무슬림에게 미국의 소를 들려주려고 만들었지만 거의 보는 이가 없어 3천억원만 날리게 생겼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나왔다. 갈무리 화면.     © 최방식

실제 이 언론에 따르면 보도 내용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 부활절을 맞아 무슬림 청취자들에게 “예수가 부활한 날”이라고 한 멘트가 대표적. 2006년 12월에는 이란의 한 컨퍼런스에서 헤즈볼라 지도자의 연설내용을 1시간이나 생중계했다. 결국 의회로부터 예산삭감 위협을 받았다.
 
“프로파간다 방송 설자리 없다”
 
알후라의 전임 수석 편집자인 야세르 타벳은 워싱턴포스트와 대담에서 “많은 이들이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며 “방송사고가 터지면 직원들은 ‘보는 사람도 없는 데 뭐’라며 서로 자조적 농담을 던지곤 했다”고 말했다.

비판여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알후라를 설립하면서 냉전시절 유럽에서 성공했던 ‘자유 라디오’를 예상하는 우를 범했던 것으로 보인다. 냉전 당시에 ‘자유라디오’는 철의 장막 뒤에서 행해지는 정보통제를 파고드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대조적으로 알후라는 죽음의 경쟁에 내몰렸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은 비록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지만 200여개 아랍어 위성방송이 전파를 타는 곳이다. BBC 역시 올해 아랍방송을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방송네트워크인 알아라비아 워싱턴 앵커인 히샴 멜헴씨는 인터뷰에서 “누가 알후라를 시청하는지 모르겠으며, 굳이 순위를 말하라면 1위, 2위, 3위, 4위도 아니다”고 언급했다. 이어 “알후라는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며 “현란하고 사치스러울지는 모르나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 방송”이라고 혹평했다.

미의회는 2003년 4월 알후라를 카타르에 본부를 둔 알자지라에 대응할 방송으로 설립했다. 알자지라는 중동의 대표적 갈등지역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과 서방세계의 수많은 전쟁폭력을 고발해 유명해진 채널이다.
 
‘자유라디오’ 흉내 처참한 결론
 
알후라는 2004년 2월 직원고용을 마치고 미국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한 건물에서 아랍어로 위성방송을 시작했다. 24시간 광고 없이 송출하고 있으며, 매일 최소한 30분 이상은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아랍어 프로파간다 방송인 알후라의 처참한 실패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온라인판 갈무리 화면.     © 최방식

방송의 취지는 미국의 정책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중동지역에 객관적 뉴스를 널리 제공하는 것. 이에 대해 알후라 운영을 위해 의회의 결의로 설립된 비영리 ‘중동방송네트워크’의 브라이언 T. 코니프 사장은 “선전이나 부시 채널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고 주장했다.

코니프 사장은 또 알후라는 아랍세계에 민주주의와 이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를 알리는 데 최우선적 노력을 해왔다고 덧붙였다. 도시를 바꿔가며 연 토크쇼 ‘타운홀’, 여성이슈에 포커스를 맞춘 ‘평등’ 프로그램 등이 그 것. 알후라는 미국의 2008 대선도 잘 다뤘다.

알후라는 몇 가지 괜찮은 보도도 했다. 그 중 하나는 사담 후세인 처형 뉴스. 하지만 형편없는 짓도 많이 했다. 2004년 이스라엘이 공습으로 하마스의 영적 지도자인 쉬크 아흐메드 야신을 살해했을 때, 전 아랍방송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냈지만 알후라는 요리방송을 계속했다.

한 내부 조사에 따르면, 알후라의 청취자는 지난 4년간 28%나 늘었다. 가장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13개 나라 2580만명(전체 2억명 중)의 성인이 1주에 최소 한 번 이상 알후라를 듣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런 조사내용에 신빙성이 없어서 문제다. 실제 2년전 한 보고서도 표본설정 방법과 그 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다.
 
3천억원 쏟아부어, 부시채널?
 
한 독립적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알후라는 경쟁사인 알자지라와 알아라비아에 비해 형편없는 시청자 수를 기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조그비(인터내셔널)과 메릴랜드대학이 공동으로 6개국 시청자를 대상으로 해 지난 3월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국제뉴스를 접하는 채널로 54%가 알자지라, 9%가 알아라비아, 2%가 알후라(헤즈볼라의 위성 선전채널인 ‘알 마나’와 공동 순위)가 꼽혔다.

아랍의 언론인들과 시청자들은 알후라가 중대한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루할 뿐 아니라, 탐사보도가 없고 파급효과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워싱턴 특파원을 하고 있는 요르단 언론인 살라메 네마트는 많은 경쟁사들이 다루는 아랍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나 정보기관의 고문 같은 예민한 이슈를 알후라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후라 설립에 가장 앞장 선이는 노만 J. 패티즈. 의회를 설득했고, 알후라를 운영하는 ‘가버너방송위원회’ 민주당 핵심관계자다. 라디오프로그램 공급사 중 선두격인 ‘웨스트우드원’ 회장인 그는 알후라를 설립할 팀을 조직했다. 한데, 팀 구성원 중 어느 누구도 아랍어를 구사할 줄 몰랐다. 결국 뉴스국장으로 채용된 레바논 언론인 모아팩 하브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한 전직 간부에 따르면, 하브는 뉴스룸을 실력 없는 레바논 언론인으로 채웠다. 앵커가 레바논 억양을 사용, 다른 나라 시청자의 외면을 초래했다. 방송사고도 잦았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방송 내용을 아는 이는 그야말로 소수.

카이로의 번잡한 쇼핑가에서 알후라 애청자를 만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후라를 시청하지 않거나 그냥 지나치는 채널로 알고 있으니까. 35세 주부인 하얌 사드는 워싱턴포스트와 대담에서 “두어 번 본 기억이 있지만, 대부분은 알자지라를 본다”고 말했다.
 
2% 시청률, “미국방송 싫어”
 
또 다른 이들은 프로그램 문제를 불평한다.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는 유태인 노래그룹 기획이나 청바지의 역사 같은 영어로 된 낡은 프로그램에 아랍어 자막을 입힌 콘텐츠 등을 꼬집은 것. 한 아랍 언론인은 “알후라가 어제 무슨 방송을 했냐고 묻는 이는 없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아랍인은 이렇게 귀띔했다. “미국인이건, 프랑스나 이스라엘 사람이건 내용이 좋으면 시청자를 끌게 돼있다. 그런데 난 알후라에서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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