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은 비리에 관련된 사람을 배제할 책임도 있지만 억울하게 조작된 일로 희생된 사람의 한을 풀어줄 책임도 있다"DJ가 통합민주당의 공천 결과를 보고 한 말이다. 아마 DJ가 지칭하는 사람은 박지원 전 비서실장일게다.
DJ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의 경우에는 일사부재리 원칙과 지역구민들의 심판론이 동원됐다. 지난번 보궐선거에는 괜찮다고 공천을 주더니 이번에는 불가하다고 하는 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며, 김 의원은 지난 선거의 압승을 통해 이미 지역구민들로부터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다. 요컨대 DJ는 통합민주당의 박재승 공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박재승 공천 혁명의 핵심이라 할 박지원 전 비서실장과 김홍업 의원의 공천 배제가 부당함을 주장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이 같은 DJ의 입장표명은 목포와 무안, 신안에서 각각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박 전 비서실장 및 김 의원에게는 크나큰 원군임이 분명하다. 아직도 DJ에게 우호적인 지역여론을 감안할 때 앞으로 DJ가 보다 적극적인 지원행보를 보일 경우 박 전 실장과 김 의원의 당선이 불가능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DJ는 호남고립의 빌미를 제공말길문제는 그 다음이다. DJ의 후광을 힘입어 박 전 실장과 김 의원이 당선되었다고 가정하자. DJ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도 녹녹치 않다는 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가장 충직한 가신과 아들을 정치적으로 구명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DJ로서는 잃을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전라도의 정치적, 사회적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한나라당과 조중동, 영남패권주의자들의 비웃음과 험구((險口)에 시달릴 것이 틀림없다. 이들은 전라도를 북한에 비유하면서 세습 운운할 것이 분명하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악의적 공격을 물리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DJ는 전라도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으로 가능했다. 그런데 DJ가 그런 전라도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소외시킬 빌미를 제공해서야 되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별반 호남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마당에 말이다. 소인에게 대의는 멀고 사리(私利)는 가까운 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DJ를 대인으로 여기고 있다. DJ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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