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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를 민족인사로 둔갑시킨 개신교
[이드의 종교시평] ‘일제군가’ ‘찬송가’로 둔갑, 김활란 주요한 퇴출해야
 
이드   기사입력  2007/10/09 [13:33]
"영국의 어느 왕이 민정 시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이 어느 물레방앗간 앞을 지나가다가 정겨운 노래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소리에 취해 왕은 그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할머니 한분이 일을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가사가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왕은 다시 한번 노래를 불러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또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할머니가 노래를 마치자 왕은 2절도 불러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노래는 2절이 없어. 이 노래는 내가 지은 것이거든." 감동을 받은 왕은 그 노래에다 2절을 만들어 불렀습니다. "세상사람 날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 임금님이 날  부러워하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의 복음 성가에는 이 노래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기독인 칼럼니스트 최 모 씨의 ‘아침을 여는 참 좋은 느낌’에 소개된 ‘부럽지 않네’란 복음성가의 유래에 관한 글이다. 올해 예장(통합)의 부총회장으로 선출된 명성교회 당회장 김삼환 목사의 설교 중에도 비슷한 예화가 등장한다. 영국 어느 왕이 루이스 황제로,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원래 복음성가 ‘부럽지 않네’의 악보에는 작사, 작곡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복음성가에는 유독 출처불명의 곡이 많은데, ‘부럽지 않네’의 경우, 김목사의 설교나 최모씨의 글 등에 의해 영국 민요쯤으로 둔갑된 셈이다. 그러면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복음성가 중 일부는 일본군가에 따온 것들이라는 충격적인 연구가 나왔다

<씨알의 소리> 7·8월호에 실린 <8·15에 못 다한 말, 글쓴이 조형균(계성종이 역사박물관 관장)>에 의하면, 일제군가나 창가의 곡을 그대로 따온 찬송가와 복음성가들을 전국의 교회에서 애창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는 그 내역이다.
 
1)부럽지 않네: 복음성가(발행 및 편집인: 김성혜,  발행처: 영산출판사) 제5장
  허사가: 새로운 복음성가(발행 및 편집인: 안양선, 발행처: 새로운 출판사) 제50장
  원곡: 용감한 수병(1895년 지음, 작사자: 사사끼 노부쯔나, 작곡자: 오꾸 요시노리)
2)신구약 성경 목록가: 복음성가 제35장
  창세기 출애굽기: 새로운 복음성가 제278장
  요일가: 새로운 복음성가 제88장
  원곡: 지리교육 철도창가 (1900년 5월에 제정, 작사자: 大和田建樹 작곡자: 多梅稚) 
 
▲ 일본군가 용감한 수병과 철도창가 악보     © 씨알의소리 
 
우리는 얼마나 오해 속에 살고 있는가? ‘부럽지 않네’라는 복음성가의 원 작곡자는 일본인 ‘오꾸 요시노리’라고 한다. 한국 개신교인들의 애창곡 중 하나이며 각종 부흥회에서 필수곡으로 꼽히고 있는 ‘부럽지 않네’가, 실제로는 청일전쟁 시 어느 무명 수병의 애국심을 영웅화하기 위한 곡이었다고 하니,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나네’ 라고 후렴을 부르고 있는 신도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한편, 어린이들이 주일학교에서 신구약 66권의 목록을 외우면서 부르는 노래도 원래는 일제가 도쿄 신바시에서 요코하마까지의 철도개통을 축하하기 위한 곡이라고 조형균 관장은 밝히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씨알의 소리> 7·8월호나 한겨레신문(성스런 찬송가가 ‘일제군가’였다니…10월8일자)을 참조바람.
 
몇 년 전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를 흥미롭게 본 기억이 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라고 말하며 한 여자(일로나)의 정신과 육체를 공동으로 소유함에 합의하는 두 사람(자보와 안드라스)과 그 반쪽 사랑을 완전한 사랑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일로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추하지 않게 잘 묘사된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배경 음악인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의 전설적인 실화 즉 수백 명 이상을 자살에 이르게 한 역사적 사실이 더욱 흥미를 유발시킨 영화이기도 했다. 글루미 선데이의 경우를 보듯, 음악은 군중들을 세뇌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기독교인들 역시, 알게 모르게 찬송가에 마인드 컨트롤되고 있다. 그러나 찬송가에는 기독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신론자가 작곡한 것도 있고 독일의 신화가 배경이 된 작품도 있다. 게다가 일본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일제군가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로 둔갑한 경우도 있으며, 친일인사를 민족인사로 변신시킨 경우도 있다.
 
평범한 민초가 아닌, 역사적 책임을 짊어져야만 할 사회 지도층 인사라면, 지난 시절의 사소한 잘못이라도 책임을 져야할 부분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며, 반성이나 참회는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조차도 생략된다면, 그 민족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이완용 등 1기 친일반민족행위자 106명의 명단을 확정한데 이어 지난 달 17일, 대표적인 친일파 송병준 등 202명을 2기(1919~1937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했다.
 
친일인사 명단 발표는 너무나 늦어 만시지탄의 회오를 감출 수 없지만 일단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물론 과정상 조금의 오류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과오는 점진적으로 수정해 나가면 될 듯하다. 명단 발표 후, 온갖 단체 언론 네티즌 등이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라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드높였지만, 유독 침묵으로 일관한 집단이 있다. 한기총을 비롯한 기독교 관련 단체가 그러하다. 항의도 하지 않았으며 참회 혹은 환영의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왜 그들은 침묵만 지키고 있었을까?
 
한편, 분명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반성과 참회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난 역사를 왜곡하는 음모의  집단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까? 덮어두면, 다음 차례로 왜곡과 음모의 시절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친일 종교인 166명 중 기독교계 인사는 48명으로 발표되었으나, 사실 타 분야에서 기독인으로서 활동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기독교가 일제 당시 우리 민족에게 끼친 영향력은 숫자상 드러난 의미 이상이었을 거라고 짐작된다. 이들 중 문화계 인사로 분류된 주요한과 교육학술 분야의 김활란에 대한 기독교의 왜곡 사례를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개신교계는 <합동 찬송가>, <새 찬송가>, <개편 찬송가> 시대를 거쳐 1984년에 <통일 찬송가>를 발행하였는데, 현재는 <21세기찬송가>가 보급되고 있는 중이다. 질문을 하나 하기로 하겠다. 지금 그대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중 한국인 작품은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 모르리라 생각한다. 그냥 정답을 알려 드리겠다.
 
588장으로 구성된 찬송가 중 한국인 작품은 겨우 17편인데(작사가 기준, 작곡기준으론 18편임) 지난 개편찬송가의 27편에 비하면 무려 10편 정도가 제외되었다. 중복된 작품을 제외하면 14명의 작가만이 선택을 받은 셈이다.
 
김정준(53),최봉춘(453),김재준(261)전영택(317,305),김활란(461),정용철(378,369),이호운(355,493),석진영(256),주요한(304),임옥인(311),반병섭(303),마경일(92),홍현설(272),남궁억(371)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문제는 찬송가와 함께 애독되고 있는 찬송가 해설이라는 책의 내용이 순전히 왜곡 날조된 음모의 소산으로 지금도 기독인들을 세뇌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 그러면 그 왜곡과 날조의 현장으로 안내 하겠다.
 
김활란의 친일 행위와 기독교계의 왜곡 
 
▲  통일찬송가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 통일찬송가

가사 자체에 대해 시비를 걸지는 않겠다. 그러나 이 찬송에 대한 해설을 보면 기독인들이 어떻게 역사와 인물을 왜곡시키며 조작하고 있는 지 그 실상이 드러난다. 함께 감상하기로 하자.
 
"김활란(1899~1970)은 인천 태생의 여성 지도자. 교육가. 이화여전 재학 시 그녀는 이화전도단을 구성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과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 경찰들은 전도 활동을 금지시키고 말았다. 여기에 울분을 느낀 그녀는 조국의 운명을 만경창파의 배 한척으로 비유하는 동시에 나라의 운명을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에 부탁하는 본 시를 작시하기에 이르렀다." (해설찬송가에서 발췌)
 
어떠한가? 그녀는 진실로 민족정신을 고취시킨 지도자였는가? 김활란은 정말 일본에 대해 울분을 느꼈을까? '여성박사 1호, 이화여대 총장, YWCA 창립자' 등 그녀의 화려한 경력에 대해서는 생략하겠다. 단지, 그녀가 일본제국주의에 어떻게 헌신해왔는지 몇 가지 예화를 검토해 보면 상기 기독교계의 김활란 평이 얼마나 허구와 왜곡의 증거물이 되는 지 판단이 되리라 믿는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귀한 아들을 즐겁게 전장으로 내보내는 내지의 어머니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그러나 반도여성 자신들이 그 어머니, 그 아내가 된 것이다.…이제 우리도 국민으로서의 최대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 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김활란이 신시대에 기고한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1942. 12)’에서 발췌
 
“학도병 출진의 북은 울렸다. 그대들은 여기에 발맞추어 용약(勇躍) 떠나련다! 가라, 마음놓고! 뒷일은 총후(銃後)는 우리 부녀가 지킬 것이다. 남아로 태어나서 오늘같이 생의 참뜻을 느꼈음도 없었으리라. 학병 제군 앞에는 양양한 전도가 열리었다. 몸으로 국가에 순(殉)하는 거룩한 사명이 부여되었다.” (‘뒷일은 우리가’, 조광, 1943. 12에서 발췌)
 
김활란의 최측근 인사의 한사람이었던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은 <김활란 박사 소묘>라는 글에서 1944년 경 김활란이 악성안질에 걸려 실명할 우려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빗대어, "남의 귀한 아들들을 사지(死地)로 나가라고 했으니, 장님이 되어도 억울할 것 없지… 당연한 형벌"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상기 글에 대한 응답으로 보면 될 듯싶다. 이외 정신대 참여를 은근히 부추기는 글도 있다. 같이 감상해 보기로 하자.
 
“아세아 10억 민중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결전이 바야흐로 최고조에 달한 이 때 어찌 여성인들 잠자코 구경만 할 수가 있겠습니까.……이번 반도 학도들에게 열려진 군문으로 향한 광명의 길은 응당 우리 이화전문학교 생도들도 함께 걸어가야 될 일이지만 오직 여성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참여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이란 반드시 제일선에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학교가 앞으로 여자특별연성소 지도원 양성기관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생도들도 황국여성으로서 다시없는 특전이라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매일신보, 1943. 12. 25)
 
일단 이 정도로 그치겠는데,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면 반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제공하고 있는 자료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주요한의 경우 
 
통일찬송가 304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통일찬송가

"주요한(1900~1979)은 시인이며 언론인·정치인, 젊었을 때는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도 했으며 후에는 시인으로 문예 동인지 <창조>에 '불놀이'란 시를 발표하였다"며 "본 찬송시는 1967년 한국 찬송가 위원회로부터 어머니날 찬송가를 의뢰받고 특별히 쓴 것으로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다" (해설찬송가에서 발췌)
 
이 해설만 보면, 주요한 역시 독립운동가요 민족지사로 둔갑하게 된다. 그 역시 김활란에 못지않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광수, 최남선 등과 문필을 경쟁하며 친일 활동 역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주요한의 노골적 친일 작품을 보며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기회를 함께 가졌으면 한다.
 
“나는 간다/ 만세를 부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목껏 부르고/ 대륙의 풀밭에/ 피를 부르고/ 너보다 앞서서/ 나는 간다./ 피는 뿜어서/ 누런 흙 우에/ 검게 엉기인다/ 형아!아우야! 이 피는/ 너들의 피다/ 너들의 뜨거운 피가/ 2천3백만 너들의 피가/ 내 몸을 통해서/ 흐르는 것이다/ 역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뿌려지는 피다/ 반도의 무리가/ 님께 바친/ 처음의 피다. 나는 내 피에/ 고개를 숙이어/ 절한다/ 그것은/ 너들의 피기 까닭에/ 장차 내 뒤를 따라올/ 백과 천과 만의/ 너들의/ 뜨거운 피기 때문에/ 아아/ 간다/ 나는/ 너보다 앞서서/ 한자욱 앞서서/ 만세, 만세.” (주요한이 지원병 출신으로 죽은 이인석 상등병에게 바친 <첫피>(1941.3)에서)
 
주요한이란 시인이자 정치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불놀이와 함께 이러한 시도 함께 검토되어야만 한다.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징병을 독려하던 주요한의 진실한 정체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상공부 장관이니 부흥부 장관이니 등 요직에 기용된 그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저 지나간 역사가 안타깝기만 하다.
 
“금일의 문학은 다만 이기기 위한 문학, 미·영 격멸을 위한 문학이 있을 뿐입니다. 동양이 오늘의 찬연한 문화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금일 미·영 격멸의 피비린내 나는 문화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입니다.……우리들은 친애하는 만주제국 5000만 민중들 역시 하루라도 속히 직접 총을 잡고 포학한 미·영의 두상에 불의 세례를 내릴 것을 기원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결전 하 만주의 예문태세,(決戰下滿洲の藝文態勢) 신시대, 1944. 1)
 
미국을 타도하자던 친일 모리배들이 해방 후에는 어떻게 죄다 미국을 숭배하는 집단으로 둔갑해 버렸는지 그 화려한 변신술이 놀랍기만 하다. 그들은 자서전이나 기타 기고문 등에서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친일 행위에 대해 참회하거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니 변명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음습한 음모의 그늘에서 숨죽이고 있던 역사적 진실들이 이제야 하나둘 햇볕에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기독인들도 이제 역사의 준엄함에 조금은 솔직해져야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이제라도 두 명의 친일 인사가 제조한 위선의 작품들을 찬송가에서 삭제하길 권유한다.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 해설만이라도 좀 더 진실하게, 정확한 정보로 기록하길 요망한다.
 
어떻게 친일 모리배를 민족지사로 둔갑시키는 지, 일부 기독인들의 뻔뻔함에 이제는 분노를 자제하지 않는 무리도 있음을 기억하길 요망한다. 찬송가는 한국 기독교가 성장하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음에 분명하다. 그러한 공헌의 당사자로서 김활란과 주요한을 지금껏 왜곡시킨 정보로 신도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일본인 사사오의 작품이 다섯 편이나 수록되어 있음은 그저 애교로 봐두겠지만, 김활란과 주요한의 두 작품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다.
 
찬송가와 복음성가에 남아있는 식민지 시절의 흔적을 없애지 못하고 있으며, 친일 매국노를 애국 열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게 현재의 한국 개신교의 실상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진실을 모르고, 찬송하길 즐겨하는 개신교인들이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필자는 <종교법인법제정추진시민연대> 종추련(www.rnlaw.co.kr) 사무처장이며, <예수평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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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0/09 [13: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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