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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중날, 머슴들을 위한 잔칫날
[김영조의 민족문화 사랑] 음력 7월 보름, 속절의 하나 백중의 세시풍속
 
김영조   기사입력  2007/08/27 [11:30]
오늘(8월 27일)은 음력 7월 보름인 백중으로 철에 따라 사당이나 조상의 묘에 차례를 지내는 속절(俗節)이며 백종, 중원, 망혼일이라고도 한다.

백중의 어원과 유래 
 
백종(百種)은 이 무렵에 여러 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뜻이며, 중원(中元)은 도가에서 말하는 삼원의 하나로 이 날에 하늘의 관리가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 데서 연유했다. 또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 까닭은 돌아가신 부모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제사를 드린 데서 비롯되었다.

▲백중날 세시풍속으로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소에 태워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호미씻이"     © 이무성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그해에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먼저 돌아가신 조상의 신위(神位)에 올리는 천신의례 및 잔치를 벌여 일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 중 하나는 불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이날 우란분회를 열어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간행 된 '동국세시기'에 스님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또 중국의 양쯔강 중류 유역 형초(荊楚) 지방의 연중세시기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의 기록에 중원일은 스님이나 일반인들이 모두 밥 짓는 그릇인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 불교적 효도를 강조한 불교 경전의 하나인 '우란분경(盂蘭盆經)'에는 오미백과를 갖추어 분(盆) 안에 넣어 덕이 높은 스님에게 공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주도에는 "목동이 곡식과 가축을 지키려고 옥황상제의 명을 어겼는데, 이로 인해 노여움을 받아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 뒤 농민들이 그가 죽은 날을 백중일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어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기록을 보면 백중은 원래 우리나라가 예부터 농사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날이었는데 삼국시대 이후 불교의 우란분회의 영향을 받아 변화된 것일 수도 있다.
 
백중의 세시풍속
 
입하로부터 시작되는 초여름은 '농사짓다'라는 뜻의 '녀름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옛말처럼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 추수를 앞둔 때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절이다.

백중날 각 가정에서는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제사를 올렸으며, 궁중에서는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제사를 올리기도 하였다.

▲백중날,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이나 조상의 묘에 제사를 올린다.     © 이무성

백중날을 전후하여 여러 가지 놀이와 흥행이 벌어지는 큰 시장이 서는데 이를 백중장(百中場)이라 한다. 이 장이 서면 주인은 머슴들에게 새 옷 한 벌과 장에 나가 먹고 즐길 돈을 주는데 이를 '백중돈 탄다'고 했다. 그래서 이 날을 '머슴날'이라고도 하며, 마을에서는 일정한 날을 정하여 머슴과 일꾼들은 지주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을 갖고 산이나 계곡을 찾아가 먹고 마시며 하루를 흥겹게 즐긴다.

이날 풍물놀이와 더불어 대동놀이가 벌어지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한다. 이 놀이는 농촌에서 힘겨운 세벌논매기를 끝내고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여온 데서 비롯된 마을 잔치이다.

특히 이날 즐기는 풍속으로 '호미씻이'가 있는데 그 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도롱이를 입히며, 머리에 삿갓을 씌워 우습게 꾸민 다음 지게 또는 사다리에 태우거나 황소 등에 태워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놀이다. 그 때 집주인들은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한다. 호미씻이는 지방에 따라서 초연(草宴), 풋굿, 머슴날, 장원례(壯元禮)로도 불린다.

또 마을 어른들은 머슴이 노총각이나 홀아비면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 주고 살림도 장만 해 주는데,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라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이 날은 산신(山神)들이 곡식을 추수하는 날이라 들에 나가 일을 하면 방해가 된다고 해서 남자들은 들에 나가지 않고, 여자들은 집안에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바닷일을 더 많이 한다. 백중날에 살찐 해물이 더 많이 잡힌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한라산에 '백중와살'이라는 산신이 있는데 백중 때 잘 익은 오곡과 과일을 사람들이 따 가면 샘을 낸다고 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또 경남지역에서 전승되는 '두레삼'이라고 하는 풍속도 있다. 이는 친한 부녀자들끼리 품앗이로 한 집씩 돌려가며 삼을 삼는 풍속을 말한다. 이때 주인집에서는 음식대접을 하기도 하고, 혹은 편을 나누어 경쟁을 하여 진 편이 이긴 편에 음식대접을 하기도 한다.

밀양백중놀이

▲밀양백중놀이     © 문화재청
백중날의 세시풍속 가운데 경남 밀양에서 전해지는 '밀양백중놀이'는 198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되었다. 밀양백중놀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고된 일을 해오던 머슴들이 음력 7월 15일경 용날을 선택하여 지주들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로 상민과 천민들의 한이 전체놀이에서 익살스럽게 표현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밀양에서는 백중날을 머슴날이라고 하지만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논다고 해서 백중놀이를 '꼼배기참놀이'라고도 부른다.

밀양백중놀이는 농신제, 작두말타기, 춤판, 뒷놀이 등을 한다. 풍물굿을 치며 농신제가 시작되면 마당에는 삼대로 만든 농신대를 세우고 새끼를 꼬아서 만든 용을 매단다. 농신대를 중심으로 둥글게 서서 세 번 절을 하고 엎드려 복을 빌며 축문을 읽는다.

작두말타기는 농사를 잘 짓는 머슴을 뽑아 지게목발로 만든 작두말에 태워 놀이판을 돌면서 풍물굿으로 흥을 돋우는 놀이이다.

춤판은 장단에 맞추어 양반처럼 느릿하게 추는 양반춤을 먼저 추면, 머슴들이 양반을 몰아내고 난쟁이, 중풍장이, 배불뚝이, 꼬부랑할미, 떨떨이, 문둥이, 곱추, 히줄대기, 봉사, 절름발이 등의 익살스러운 병신춤을 춘다.

이어서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장고잽이 앞에서 재주를 보이는 범부춤을 춘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전승되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사람의 북잽이들이 북을 치며 둥그렇게 원무를 추거나 원 안과 밖으로 이동하면서 춤을 추는 힘이 있고 멋들어진 춤이다. 마지막으로 추는 뒷놀이는 대동의 뜻으로 다 같이 어울려 추는 춤인데 장단가락도 자주 바뀌면서 제각기 개성적이거나 즉흥적인 춤을 춘다.
 
백중의 시절음식
 
여름철에는 밭작물인 밀과 보리, 수수나 감자 등을 수확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밀가루로 만든 부꾸미인 밀전병과 밀개떡을 해 먹으며, 또 수수나 감자로 떡을 만들어 먹고 부침개를 해 먹기도 한다. 또 제철인 호박으로 호박부침을 만들어 먹는데 별미다.

▲백중날 호박부침을 하는 부녀자들     © 이무성

경남 지역에서는 백중날 백 가지 나물을 무쳐 먹고, 백 가지 풀을 고아 그 물을 먹으면 약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백중날에 백 가지 나물을 해 먹어야 하는데, 백 가지의 나물을 장만할 수가 없어 가지의 껍질을 벗겨서 희게 만든 백가지(白茄子)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전남 어촌지역에서는 백중날 소라나 다슬기 등이 제철이므로 이를 시절음식으로 즐겨 먹는다. 또 시루떡을 해서 성주께 올리고, 찰떡이나 서숙떡·감자떡 등을 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7월에서 9월 사이에 주로 잡히는 빅개란 바닷물고기로 빅개회를 해 먹는다. 껍질을 벗기고 잘게 썰어 양념하여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오랫동안 우리 겨레가 속절로 지내온 백중날은 이제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것은 농촌에서 대동놀이를 할 사람이 줄어들은 탓과 머슴이 없어진 탓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전통이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새삼스럽게 백중날을 되돌릴 수야 없지만 최소한 백중날의 유래와 세시풍속, 그리고 더불어 살기 위한 백중놀이의 의미를 살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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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8/27 [11: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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