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오늘은 초복, 더위를 꺽은 조상의 슬기로움
[김영조의 민족문화 사랑] ‘더위를 꺽는 날’ 삼복의 유래와 세시풍속들
 
김영조   기사입력  2006/07/20 [14:50]
오늘은 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이다. 강원도를 비롯하여 온 나라에 큰비가 내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많아 복날의 의미는 약해졌지만 삼복의 유래와 세시풍속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일이다.

▲여름에 즐겼던 발담그기, 조선 중기의 화가 이경윤의 탁족도(濯足圖)     ©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하지 후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庚日)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三庚日) 또는 삼복이라 한다. 우리 조상은 해(년), 달(월), 날(일)을 모두 지지(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와 천간(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을 조합하여 이름을 지었는데(예 : 갑자, 을축, 병인 등) '경일'이란 지지의 '경(庚)'자가 들어간 날을 가리킨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적인 책 '지봉유설(芝峰類說)'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다.

'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火)'의 기운, 가을철은 '금(金)'의 기운이다. 그런데 가을의 '금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이다.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한다.

또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서기제복은 복(伏)은 꺾는다는 뜻으로, 복날은 더위를 꺾는 날 즉, 더위를 피하는 피서가 아니라 정복한다고 이야기한다.

조선 순조(純祖)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삼복제사를 지냈는데, 4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蟲災 : 해충으로 농작물이 입는 피해)를 방지했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전한다. 이를 보면 삼복은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으로 짐작된다.

▲ 조선의 세시풍속이 기록된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 편 표지     © 수원남문서점 제공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은 큰 개 자리의 시리우스(Sirius)로, 동양에서는 천랑성(天狼星)이라고 부른다. 이 별은 삼복(三伏) 기간이 되면 해와 함께 떠서 함께 진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삼복 때 태양의 열기에 별 중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의 열기가 보태졌기 때문에 가장 더운 때라고 생각해서 이때를 '개의 날(dog's day)'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겨레의 슬기로운 삼복더위 이기기

요즘 사람들은 복더위가 오면 계곡이나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가고, 에어컨과 함께 산다. 하지만. 피서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에어컨 바람은 건강에 무리가 가며, 에너지 사용량과 환경파괴가 문제이다. 그럼 옛사람들은 어떻게 더위를 피했을까?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가게 하였다. 복중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여름 과일을 즐기거나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 : 발을 담금)을 하면서 하루를 즐겼다. 또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한다.

복날의 믿음으로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초복에 목욕을 했다면 중복과 말복 날에도 목욕을 해야 하는데, 이는 복날마다 목욕을 해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찾아오면 우리 겨레는 시원한 것보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더 많이 활용했다. 복날이면 뜨거운 삼계탕 등으로 몸보신을 했고, 양반들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김매기를 돕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에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땀에 범벅이 되어가며, 뜨거운 음식을 먹고, 일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름철이면 사람 몸은 외부의 높은 기온 때문에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 근처에는 다른 계절보다 20∼30% 많은 양의 피가 모이게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체내의 위장을 비롯하여 여러 장기는 피가 부족하게 되고 몸 안의 온도가 떨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식욕이 떨어지면서 만성피로 등 여름 타는 증세가 나타나기 쉽다.

이때 덥다고 차가운 음식만 먹게 되면 배나 장기가 더욱 차가워져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그래서 따뜻한 음식을 먹어 장기를 보호해 주는 슬기로움이다. 여름철이 되면 찬물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하며, 냉면을 먹을 때에도 따뜻한 성질을 가진 겨자 등을 넣어 먹는다.
 
▲ 삼계탕     © 임수근의 요리정보 제공

또 이와는 반대로 찬 성질의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여름나기도 한다. 여름밤은 3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야로 잠을 설치고, 이부자리가 땀으로 축축해지기 일쑤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이 대나무로 만든 대자리, 죽부인 따위다. 예부터 '대'는 "서늘한 기운을 전해준다."라고 해 여름에 가장 많이 쓰이는 친숙한 존재였다.

대자리는 보통 2∼4년생 대나무를 쓰는데 노란색이 강하며 표면에 윤기가 도는 것이 가장 좋다. 지난 70년대 여인네들이 대자리 위에 누워 죽부인을 끌어안고 잠을 청하는 것이 유행이어서 죽부인 대신 '죽남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옷에서의 여름나기는 어떠했을까? 여름철 옷의 소재로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대마(삼베), 아마(린넨), 저마(모시) 따위이다.

마는 바람이 잘 통하고, 물을 잘 빨아들이며, 항균 성분을 가지고 있다. 또 마는 구김이 잘 가고 약간 거칠기는 하지만 시원하고 실용적이며, 침대 매트, 이불, 테이블보 등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모시는 입었을 때 단정하고 우아한 멋이 묻어나 한복감으로 많이 사용된다. 적삼 안에는 등나무로 엮은 조끼인 등거리를 입어 땀이 차지 않도록 했다.

▲ 여름을 시원하게 한 등거리와 죽부인     © 김영조
복날에 즐겨 먹는 음식들


여름철의 먹거리 중 냉면은 땅이 척박해 쌀 농사보다 메밀이나 감자농사가 잘되던 북쪽지방에서 발달했다. 이중 평양냉면은 메밀에 약간의 녹말을 섞어 면을 뽑은 뒤 꿩고기, 쇠고기로 만든 육수와 동치미국물을 붓고 편육, 오이채, 삶은 달걀 따위의 고명을 얹은 물냉면이다. 이 평양냉면은 색깔이 어둡고 면발이 찰지 않으며 거칠다.

함흥냉면은 함경도 지방이 감자가 많이 생산되는 곳인 탓으로 전분을 많이 넣은 쫄깃하고 가는 면에 가자미식혜 따위를 얹어 고추장에 버무린 비빔냉면이다.

냉면은 변비를 없애주며, 고혈압과 동맥경화에 좋고,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냉면을 먹을 때 치는 식초는 녹말이나 육류를 먹으면 생기는 유산을 분해해 피로회복을 도와주며, 여름철에 생기기 쉬운 세균의 번식을 막아준다. 이 식초의 사용은 찬 음식인 냉면에 따뜻하게 해주는 겨자를 넣는 것과 함께 우리 겨레의 슬기로움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입맛도 떨어진 여름은 몸이 허해지기 십상이다. 이때 보양식으로 든든하게 복 달임을 하면 더위도 이기고 잃었던 입맛도 되찾을 수 있다.

우리 겨레가 복날에 즐겨 먹었던 보양음식의 대표는 아무래도 개장이다. 개장은 구장(狗醬), 구탕(狗湯)이라고도 했으며, '복(伏)'자가 '사람 인'(人)‘에 ’개 견(犬)‘자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복날 개를 삶아 먹는 것은 더위를 잊는 것뿐만 아니라 보신(補身)과 액(厄)을 물리치는 일로 생각하여 보신탕(補身湯)으로도 불렸다. 동의보감에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피를 조절하고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며, 기력을 좋게 한다고 했다.
 
개장과 함께 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삼계탕(蔘鷄湯)도 있으며, 그밖에 임자수탕, 용봉탕과 쇠고기를 이용한 육개장도 있다. 임자수탕의 '임자(荏子)'는 참깨를 가리키는 말로 이 음식은 깨를 불려 소화가 잘 안 되는 껍질은 벗겨내고 볶아서 곱게 갈아 체에 밭친 뽀얀 깻국물에 영계를 푹 삶아 고운 국물을 섞어 차게 먹는 냉탕이다.

깨는 좋은 단백질이 들어 있으며, 50%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은 등푸른 생선에 많이 들어있는 디에치에이(DHA)와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고열량 식품이며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함량이 높아 맛과 영양면에서 매우 훌륭한 음식이다.
 
▲ 임자수탕(왼쪽)과 용봉탕     © 임수근의 요리정보 제공

용봉탕의 '용봉(龍鳳)'은 상상의 동물인 용과 봉황을 말하는데, 실제는 용 대신 잉어나 자라를, 봉황 대신 닭을 쓴다. 잉어는 민물고기의 임금으로 폭포를 거슬러 기어오를 만큼 왕성한 생명력이 있어 스테미나식으로도 유명하다. 주재료인 잉어와 닭은 각각 영양면에서 뛰어나지만, 궁합이 매우 잘 맞는 음식이라고 한다.

또 복날엔 국수를 어저귀(아욱과의 한해살이)국에 말아먹거나 호박전을 부쳐먹고, 호박과 돼지고기에다 흰떡을 썰어 넣어 볶아 먹으며, 민어, 장어, 미꾸라지 등의 어류를 이용한 음식과 시원한 콩국, 미숫가루 모두 여름철의 시절음식(時節飮食)이다. 요즘 많이 나오는 비름나물도 예부터 더위를 먹지 않게 하는 식품으로도 잘 알려졌다.

하지만, 여름철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찾는 보양식에 목을 매서는 안 된다. 한두 가지의 보양식이 우리의 건강을 완벽히 담보할 수는 없다. 오히려 각종 영양소가 들어있는 식품들을 골고루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땀을 흘려 부족한 수분보충을 위해 물도 충분히 마실 필요가 있다. 어떤 이는 '더위만 빼고 골고루 다 먹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초복인 오늘부터는 더위와 싸워야 하며, 몸 건강에 더욱 신경써야 한다. 특히 우리 겨레가 이열치열을 즐겼듯이 차가움만으로 해결하지 말고, 더위를 파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슬기로움을 지니고 살았으면 좋겠다. 몸에도 안 좋고, 환경을 파괴하는 에어컨 바람을 피하고, 주변에 부채를 선물하는 마음씨를 가지면 어떨까?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7/20 [14:5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