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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나 과고 방식, 노벨상 절대 못탄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선민의식과 엘리트주의 버리고 공부 자체 고민해야
 
우석훈   기사입력  2007/06/19 [11:14]
가끔 공부가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별 편견은 없다.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보다는 윗길에 있는 분들이다. 문제 푸는 것 일부와 논리를 맞추어 나가는 일부 혹은 꽤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명제 하나를 입증하는 순간이 재밌을 수는 있다. 이건 낚시와 비슷하다.
 
예전에 심리학 공부하던 시절에 들은 얘기 약간... 낚시에 고기가 물리는 순간에 뇌가 느끼는 반응치가 남자가 사정할 때 뇌에 나타나는 반응치보다 높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단위 반응치만 놓고 보면, 이 결과를 놓고 절정의 순간에 생기는 사정보다 낚시에 손맛이 더 크다는 말이 실험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얘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낚시 잡지에서 이런 식의 표현들을 읽은 적이 있다.
 
공부하다가 생기는 부수적인 몇 개의 일이 재밌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공부가 재밌다는 것은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대체적인 내 생각이다.
 
난 공부가 재밌어서 한 사람은 아니고, 한 번도 전체적으로 본 공부가 재밌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솔직히 말한다면 괴로운데 참고 한 것이고, 몸의 어딘가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억지로 참고 버틴 셈이다.
 
독서는 재밌고, 수학식 푸는 것도 가끔 재밌다. 그러나 그런 것은 공부의 아주 작은 부분들이다. 공부의 90% 이상은 자기가 생각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은 재밌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공부를 하는가? 누구나 가끔 이 질문에 부딪힌다. 물론 공부가 재밌는 사람은 이 질문에 부딪힐 필요가 없다. 논리 나무에서 첫 번째 갈림길에서 다른 데로 가는 사람이고, 공부가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이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대체적으로 공부를 잘 하면 먹고 살 수 있게 된다는 두 번째 명제를 만나게 된다.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하다. 나도 공부를 아주 잘 하지는 못했지만, 먹고 살만큼은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아마도... 당분간은 먹고 살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결과에 의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공부를 한 나의 동료들이나 나의 선배들은 가끔씩 만나는 학문의 입구 앞에서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느꼈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을 자기는 안다. 그래서 때때로 괴로워진다. 안 그런 사람을 한 사람 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개가 되었다. 그를 볼 때마다 인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화려한 옷을 입고, 스스로 치장하고 유혹하는 개를 연상하게 된다. 그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돈도 잘 벌고, 잘 산다. 그러나 그가 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공부하는 이유가 최소한 열 번은 바뀌었다. 늘 새로운 이유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 중에 그의 진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가 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양심을 버리면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된다.
 
그러나 정말 학문은 그렇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게 전문가와 학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되는 길을 선택하면 공부는 수단이고, 그 수단을 잘 다루어서 돈을 버는 길이 열리기는 한다.
 
스티글리치라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경제학자'라고 소개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노벨상을 탔고, 유명한 교수이고, 세계은행의 방향타를 잡았던 사람이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을 전문가라고 소개한 적은 없다.
 
그런 차이다.
 
이런 개가 되는 길은 내가 아는 그래도 괜찮게 공부한 사람들은 빠르면 학부 시절, 늦으면 대학원 시절에 버린다. 적어도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공부가 수단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전문가의 길과 개의 길, 두 가지가 열려 있다는 것이 아마 99%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나머지 1%는? 늦게 길을 깨닫는 대기만성의 길이다. 이 길은 아주 좁다.
 
가끔 공부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한다"고 말했던 사람 중 정말로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 인생에서 선택하는 두 번째의 변형이다.
 
대체적으로 이런 변형은 자기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망치게 된다. 다른 할 것이 없어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 학문은 아닌 것 같다. 사회과학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독일의 막스 베버가 이 문제를 골똘히 고민하면서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나도 길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 것 같다. 공부를 재밌게 생각하기는 어려워도, 공부를 사랑할 길은 굉장히 넓게 열려져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사랑할 것과 그것들을 사랑할 이유는 많다.
 
덧글) 공부가 재밌기는 어렵지만, 공부를 사랑할 수는 있다
 
내가 이 고민에 대해서 아주 골똘히 고민한 것은 외고와 과고에 다니는, 내가 학문의 후배라고 생각하는 몇 명을 위해서 고민을 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몇 개의 우리나라에서 좋다고 하는 입시와 관련된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외고와 과고의 평균 성적이 일반 고등학교보다 높지만, 아주 공부를 잘 하는 상위 10등은 일반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 질문이 그들을 고민스럽게 한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고등학교에서 공부와 독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그 사람들을 지금의 외고와 과고에 있는 엘리트들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이길 가능성이 없다. 이 간단한 사실은, 유럽에서는 68년 대학 국유화 및 평준화 이후에 대체적으로 역사적으로 입증된 일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 논문으로 정형화시킨 적은 없지만, 대체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외고나 과고에서 배운 방식으로 공부해서는 절대로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게 유럽식 공민교육의 정신이다. 이걸 증명할 때 주로 쓰는 방식이... 존 스튜아트 밀이 어떻게 학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과 관련된 간단한 한 문장으로 증명한다.
 
선민의식과 엘리트주의를 버리고, 공부가 자신에게 무엇인지 정말로 고민해보시길 바란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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