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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여인의 삶, 로자 룩셈부르크
[비나리의 초록공명] 막스 갈로 <로자 평전>에서 대한민국 길을 찾는다
 
우석훈   기사입력  2007/06/09 [15:45]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온 막스 갈로의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은 간만에 보는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다.
 
나중에는 남은 몇 페이지가 아쉬워서 아껴가면서 읽었다.
 
1. 막스 갈로라는 사람

프랑스에는 가끔 싹 죽도록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 막스 갈로가 그런 사람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이 튀어나올 수 있었는지 내 짧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L'Express의 논설주간이기도 했는데, 교수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읽는 내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가장 충격적으로 읽었던 것은 역시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이었고, 그 시절에 이렇게 많이 아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기만 했다. 비슷한 충격을 한 번 더 주었던 사람이 폴 리쾨르인데, 내가 다녔던 파리 10대학의 총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궁금증 한 가지가 풀렸다. 왜 들어가는 수업마다 전부 리쾨르의 짧은 논문들을 나누어주고 읽고 오라고 그랬는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막스 갈로는 색다른 충격이었다. 이름이야 작크 아탈리가 더 알려져 있겠지만, 난 작크 아탈리 책은 딱 두 권 샀었다. 이름은 번드르르하지만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미테랑과 사회당 정권 팔아서 별 쓸데없는 고민들을 하면서 말 같지도 않는 얘기들을 심각하게 내세우면서 자신이 무슨 지성이니 하는 것들을 내세우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다.
 
막스 갈로는 진짜로 미테랑 대변인 출신이다.
 
이런 사람이 대변인을 하고, 엑스프레스의 논설을 썼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참 세상 넓기도 하고, 남 모르는 곳에서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다는 생각을 새삼했다. 이제는 70이 넘었다고 하는데, 이 책은 2000년에 발간된 책이다. 나폴레옹, 드골에 이어 로마의 4명의 황제와 한 명의 황제 아닌 사람에 대한 평전을 쓰는 중이라고 한다. 이 황제 아닌 사람은 스팔타쿠스다.
 
나중에 평전이라는 쟝르가 생기면 막스 갈로의 이름이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2. 불꽃같은 여인의 삶,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가장 꼼꼼하고 치밀한 평전으로 기록될 막스 갈로의 로자 평전     © 푸른숲, 2002
로자는 아마도 정통 맑스주의자 중에서 가장 해석이 덜 되어있고, 또 새로운 접근의 여지가 많은 사람이다.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된 이유 중에는 로자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 선생들을 감동시킨 연유가 조금은 포함된다. 나는 로자를 생태학적 흐름에서 해석했고, 그래서 이후에 나는 룩상부르키엔으로 분류되게 되었다. 물론 내 해석은 아주 이단적 해석이었다.
 
학위 심사 때 내가 제시했던 로자의 생각에 대해서 심사의원들이 "늑대와 양 모델"이라고 불러주었다.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이야기 후반을 끌어간 모델이 바로 '늑대와 양 모델'을 다른 식으로 변형시킨 것인데, 그 첫 생각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축적론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수없이 많은 현대인의 글 속에서 로자는 그런 식으로 등장한다. 아무도 이게 로자에게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쓰지는 않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이, 그리고 90년대 이후에 공부한 사람에게 더 많이 로자는 등장한다.
 
로자의 자본축적론은 매우 독특하다. 맑스의 재생산정식을 고쳤고, 이로 인해서 스탈린 시대에 로자는 비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생각으로 몰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니다. 로자는 생각이 다른 것이다.
 
레닌과는 제국주의론에서 갈리고, 비밀경찰과 폭압으로 사회주의를 이끌던 레닌과 갈렸다. 그래서 스탈린 시대 내내 스탈린주의와 싸우던 사람들에게 로자는 약간의 복음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로자는 그렇게 단순하게 읽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사람이다.
 
수없이 많은 로자의 초고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죽기 전에 마지막 챙겨들었던 조그만 손가방에 <파우스트>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가 죽기 전에 생각했던 생각들의 단초를 잡아주는데 중요하다고 가끔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로자는 문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무척 풍성한 사람이고, 무엇보다 여자였다. 그래서 그 시절의 혁명주의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혀 다른 시각들이 나타난다.
 
3. 로자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물으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유럽이 움직였던 공간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몇 군데 쓴 적이 있다. 이런 비유는 그냥 단순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이렇게 생각한다. 바그너와 베르디가 서로 자신의 민족을 목놓아 외치던 시절이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인물들 중의 한 명이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편하게 표현하면 '국제주의자'라고 표현하는데, 요즘의 한심한 부류들이 입만 열면 떠드는 그런 국제주의자는 아니다. 요즘의 우리나라의 국제주의자를 세 부류로 나누어보자.
 
1) 노무현과 뉴라이트 버전 : 이들도 요상한 국제주의자라는 점에서 동업자들이다. 세계화라는 말로 같은 것들을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가, 한미FTA를 통해서 제대로 만났다. 이런 관점에서 이 두 흐름이 똑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사실 같다.
 
2) 최열, 박원순 버전 : 이 사람들에게 국제주의는 국제협력을 의미하는데, 사실은 회사 돈 지원 받아서 외국에 놀러가는데 이런 국제주의와 국제협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익숙지 않은 해외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들의 국내에서의 권력을 강화시킨다.
 
3) 조희연 버전 : Racidal democracy라는 이름으로 '미얀마에 대한 시위를!'이라는 구호로 집약시킬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조희연 선생은 내가 성공회대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사람이고, 다시 학교 근처에서 왔다갔다 할 수 있게 해주신 분이다. 그러나 친노에 대한 의심을 잘 지우고 있지 않은데, 이 테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이제 어느 정도 되었고, 이제는 국제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갖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되었고라는 관점에서 나와 갈려진다. 그 당시 나는 개판 5분전이라는 진단을 내렸는데, 2년 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생각하던 사람은 나 혼자 밖에 없었고, 나는 극단주의로 고립되었다. 이게 내가 결정적으로 칩거를 시작해서 아무도 믿지 않고, 혼자 책 읽고 공부하는 시기로 접어든 이유 중의 하나이다.
 
로자의 국제주의자는 이런 것과는 좀 다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에 가장 가깝고, 제2 인터내셔날까지의 정신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로자이다. 트로츠키의 국제주의와도 또 다르다.
 

이미 국민국가(Etat Nation)은 완성되었고, 누구도 로자가 생각한 것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를 넘어서서 세상을 인식하거나 인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국가가 세계화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강력한 국가주의가 등장하는 중인데, 이 상황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상황과 놀라울 정도의 흡사성을 보인다.
 
그래서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가 이데올로기적이다.
 
4. 고전의 조건, 평전의 전범

그렇다고 로자를 신비화할 필요는 없다. 그녀도 많은 판단의 실수가 있었고, 너무 섬세하고 생각이 깊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인지, 혹은 한 세기 이후의 또 다른 변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 마지막 몇 달 간의 선택은 평가하기가 어렵다.
 
나는... 너무 깊은 세계라서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도망간다.
 
막스 갈로는 내가 잘 모르겠다고 얘기한 이 상황을 아주 섬세하게 그려낸다. 너무 섬세해서 도대체 세상에 이렇게 똑똑하고 많은 자료들을 섬세하게 다루는 사람이 또 있는지가 기가 질려서 역사에 대한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마음을 먹었다.
 
내가 아는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은 많은 경우 퇴행적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 예를 들면 홍성찬 선생처럼 - 이제는 아주 게을러져서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에 흠뻑 빠져서 중년 시절부터 세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막스 갈로는 잘못하면 퇴행적이 되기 쉬운 역사학 교수들의 치졸한 레토릭에 빠지지 않으면서 로자가 보냈을 마지막 10주 - 4번째 감옥에 나와서 죽을 때까지 - 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실 자신의 평전 거의 대부분을 이 10주의 공간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기 위해서 매우 세밀하게 필요한 사실들을 약 500페이지에 걸쳐서 알려준다.
 
고전적인 기법의 서술인데, 이런 방식은 아마도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쥐약일 것이다.
 
마지막 100페이지를 재밌게 읽기 위해서 그 앞의 500페이지를 읽으란 말이야? 물론 대부분의 고전이 다 이런 방식을 취한다. 자신의 시대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들은 후반부 그 어느 50페이지 정도에 감추어져 있는데, 그걸 뒷받침하기 위해서 그 앞에 천 페이지 정도의 따분하도록 지겹게 반복되는 것들을 읽게 한다. 왜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쓴 것일까?
 
홉스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당시에 그런 글들을 자기 목을 내 걸고 썼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언제 불쑥 논거의 불충분함이나 말도 되지 않은 정서적 서술의 빈 구석을 찌르고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방어를 하기 위해서 자신의 틀을 쌓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막스 갈로는 그런 경우는 아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은 마치 연애편지와 같은 형식이다. 사랑한다는 한 마디를 끝에 남기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이전의 경험과 공유들을 일깨우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래서 로자룩셈부르크 평전은 사상과 역사관과 상관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 불꽃같은 여인의 삶도 모르면서 네가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
 
5. 나치로 가는 길
 
로자의 마지막 10주에 등장한 사람들은 이후 현대사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그 때 죽음을 공모한 군인들이 나중에 나치군 사령부를 차지하게 되고, 그 때의 정치인들의 후원을 통해서 히틀러가 독일 정치의 한 가운데 서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히틀러는 우파이고, 극우파라서 한나라당의 맥을 잇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의 정권을 잡았던 사민당은 이념적으로는 지금의 민주노동당보다 더 왼쪽에 있던 정통 혁명주의 강령을 가지고 있던 정당이다. 나치는 이러한 혁명 좌파 정당의 계승자이고, 이들이 민족주의자와 전격적으로 손을 잡으면서 생겨난 정당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반한나라당 전선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등장할 파시즘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사이 어디에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왼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게 고전적 의미에서의 정통 사민당에 대한 고민의 하나이다.
 
그 혼동의 시대를 살았던 로자의 죽음은 나치의 탄생의 결정적 계기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로자의 죽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누가 로자를 죽였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로자의 생각은 여전히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로자의 죽음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녀가 그러한 죽음을 일종의 순교자적인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에 도대체 무엇을 생각했을까, 혹은 어떤 미래의 계시를 보았을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셈이다.
 
천 만명이 쓰는 카드라는 말이 있다. 웃기는 말이기는 한데, 천만명이 로자를 읽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전쟁만은 막을 수 있고, 나치즘의 등장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천 만명이 로자의 죽음의 의미를 아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꼭지점 댄스를 천 만명이 추는 나라이다. 어려운 일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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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6/09 [15: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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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로자 2007/06/25 [20:04]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잘나가다 2007/06/11 [14:12] 수정 | 삭제
  • '사람들은 흔히 히틀러는 우파이고, 극우파라서 한나라당의 맥을 잇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일의 정권을 잡았던 사민당은 이념적으로는 지금의 민주노동당보다 더 왼쪽에 있던 정통 혁명주의 강령을 가지고 있던 정당이다. 나치는 이러한 혁명 좌파 정당의 계승자이고, 이들이 민족주의자와 전격적으로 손을 잡으면서 생겨난 정당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반한나라당 전선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등장할 파시즘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 사이 어디에 있거나, 혹은 그보다 더 왼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한나라당의 전선이 왜 말도 안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파시즘정당이 좌파에서 나온다? 무슨 엉터리 예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