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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승리하는가, 승리하는 것이 정의인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내가 바로 정의’라는 너무나 ‘미국틱’해진 노무현
 
우석훈   기사입력  2007/04/20 [12:19]
정의는 승리하는 것이고, 승리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정식은 20세기 내내 단 한 번 깨진 적이 있다. 그것이 월남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다. 승리한 것은 결국 밀림의 개미 아니면 땅굴 속의 하등동물 취급을 당했던 월맹군이었지만, 미국은 여전히 정의였다.
 
그래서 승리니 그런 복잡한 말들은 다 치워버리고 미국은 곧 정의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레이건 대통령 되시겠다.
 
우리들의 대통령 노무현도 생각만큼은 상당히 미국틱하게 하신다. 그는 민주주의는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승리가 곧 민주주의라고 생각을 하시게 되었다. 아마 탄핵에서 그를 핍박했던 세력들에게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고... 어쩌면 그에게 그 승리는 극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예정된 수순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촛불시위에 나온 군중들을 보고, 저들이 언젠가 미군기지 이전할 때 새로운 곳을 막아설 사람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는 말을 해석할 길이 없다.
 
그리고 한미FTA를 통해서 민주주의니 절차니 다 걷어치워 버리고 노무현이 곧 민주주의라는 시대를 열었다. 우리들의 대통령 되시겠다.
 
여기에 작은 논리적 파라독스가 하나 존재하게 된다. 미국은 국가로서 영원할 존재이지만, 우리의 대통령은 자연인으로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는...
 
그래서 노무현 방식의 "내가 곧 민주주의이고, 내가 곧 정의이다"라는 것은 입증할 수도, 부정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임기가 끝나고 그가 사라졌을 때 그가 했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여러 개의 차원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여행에 대한 가설과 같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복수를 하더라도 그건 다른 세상에서의 복수일 뿐이고 시간 여행을 떠나기 이전 공간의 자신은 영원히 시달리는 존재라는 점에서 노무현이 정의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수 없다는 파라독스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파라독스를 우리의 대통령도 알고 있다는 점이, 비극이다. 레임덕 없는 대통령 현상에 그가 그토록 집착하는 것도 유사한 이유일 듯하다.

정의는 승리하는가?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데, 과연 누가 "내가 바로 정의다"라고 역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겠는가.
 
승리하는 편이 우리 편이라고 믿는 것, 그게 속편하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방법은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하여간 사람들이 마음 속에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들에 붙이는 이름 
 
목숨은 다 소중한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 심지어는 생명체라고 할 수 없는 것까지도... 
 
▲18일 오후 서울시청앞에서 故 허세욱씨 범국민추모식이 열렸다.     ©박철홍
 
목숨에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것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미물에도 영혼을 느꼈던 옛 사람들의 지혜 혹은 모두가 똑같이 한울님을 모시고 산다고 생각한 가르침까지, 존재에는 우월이 없다.
 
미국분들 돌아가시고, 조선놈들 죽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억울하게 이승으로 떠나는 모든 것들, 모두 존귀한 존재들이다.
 
자상도 하신 우리 정부, 상냥도 하신 우리 언론, 친절도 하신 우리 지식인들... 가짜 관에 실려나간 한 가여운 영혼에게 애도라는 두 글자를 하기가 그렇게 어렵냐. 정말 슬프다는 말 한 마디 하면 어디가 덧나냐.
 
암만 생각해도 너무 안되었다. 뭔가 적절한 이름을 찾아보고 싶다. 이 죽음들에 대해서...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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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20 [12: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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