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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들은 왜 개똥철학도 없나"
홍세화 대학 새내기 강연회 “자유인이 되려면 시대와 불온하라” 역설
 
황진태   기사입력  2007/03/25 [22:54]
지난 3월 21일 수요일,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 때문인지 예정되었던 저녁 여섯시를 넘어서도 동국대 학림관 소강당을 채우는 학생들은 적었다. 민주노동당 동국대 학생위원회에서 마련한 ‘홍세화가 말하는 대학생이 된 그대를 위한 두 가지 당부’라는 강연회 제목처럼 새내기를 대상으로 한 강연회여서일까. 요즘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기 때문에 안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시간에 도착한 홍세화씨는 객석에 앉아 <한겨레>를 읽으며 기다렸고, 다행히도 어느 정도 좌석이 채워지자 이십분이 흐른 뒤 강연회가 시작되었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왜 반복하는가?
 
강연의 시작은 간단한(?) 주제로 시작됐다. 홍세화는 새내기들에게 오늘날 젊은이들은 인생에 있어서 두 가지 긴장만을 겪는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대학입학에서 두 번째는 취직과 임용이다. 이 두 가지의 긴장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오로지 속물적인 주류가치관에만 관심 있는 긴장감이다. 그는 이러한 사회에 대한 긴장과 관심의 결여는 현재의 혐오스런 정치를 강고하게 유지시켜주는 가장 커다란 힘이라고 지적한다. 
 
▲민주노동당 동국대 학생위원회에서 주최한‘홍세화가 말하는 대학생이 된 그대를 위한 두 가지 당부’라는 강연회     © 대자보 황진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는 대기업의 광고카피에 자리 잡은 저급성과 폭력성을 인식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홍세화는 삶을 산에 비유하여 풀어낸다.
 
“나 같은 사람은 산에 비유하자면 이제 정점에 올라서 하산하는 입장이라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하루의 삶이 소중하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즉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대학입학과 취직, 임용에만 매달린 나머지 자신의 삶을 소중히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겨야 타자의 삶도 소중히 볼 줄 알게 된다.”
 
자신이 너무도 뻔한 얘기인줄을 알면서도 이러한 얘기를 꺼내는 것에 대해서 이 사회가 몰상식해서, 상식의 불온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개똥철학도 없는 삶
 
본격적인 오늘 강연의 화두는 바로 ‘삶’이다. 홍세화는 삶을 삶의 ‘상태’인 몸과 삶의 ‘방향’을 규정짓는 의식으로 나누면서 한국사회는 몸, 즉 건강에만 관심이 많아서 보신문화가 발달된 반면에 이러한 몸과 균형을 이루어 삶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할 의식은 제대로 균형이 잡혀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아니 이러한 반문조차 제대로 던져졌는가에 대해서 회의를 표한다.
 
리영희 선생의 근작인 <대화>에서 일제 당시 중학생이었던 리영희가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읽었다는 부분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은 데칸쇼 수준은 아니지만 당시에 ‘데미안적 고뇌’를 하면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에 대한 개똥철학 정도는 있었는데 요즘 세대는 개똥철학도 없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신이 개똥철학이 있는지 없는지의 사실조차도 모르는 이유를, 몸은 건강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자각증세가 있지만 의식은 균형 잡혀 있지 않더라도 아프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나의 의식이 균형 잡혀있는가에 대한 끊임없이 따져보는 자기성찰만이 의식의 건강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80 사회에서 ‘20’의 논리를 옹호하는 ‘80’
 
이렇게 자각증세가 없이 인생에 있어서 ‘두 가지 긴장’만 몰두하는 것은 몸은 자신의 허락 없이 아무도 못 건드리는 반면에 의식은 사회가 건드리기 때문이다. 즉, 이 사회가 주류적인 이념, 우리자신을 착취하고 지배하며, ‘대한민국 1%의 힘’ 등의 언술을 통하여 사회화 과정을 겪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회화과정을 겪고 있는 것일까. 홍세화는 새내기들에게 20:80 사회라는 단어를 들어 본적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20:80사회에서 80에 속하는 여러분은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무상교육을 주장하는 민노당을 찍습니까? 투표는 존재에 맞춰서 합니까?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투표합니까? 의식으로 투표하지 않습니까?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등의 재차 물음을 던졌다.
 
대다수 80은 사회화과정의 주요 통로인 교육과정, 대중매체를 통해서 ‘부자에게는 세금을 서민에게는 복지를’ 주창하는 민노당에 투표하기보다는 이를 “사회주의적 발상”, “좌파적 발상”으로 까지 매도하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하는 통로는 어떤 게 있는가. 홍세화는 첫 번째로 책을, 두 번째는 열린 자세, 세 번째는 여행과 경험 그리고 네 번째는 도를 닦는 것(?)을 제시한다.
 
책은 ‘세계와 만나는 창’으로서 타인의 생각을 내가 주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통로지만 오늘날 한해 가구당 2004년 기준으로 12,360원(신문 값, 아기 그림책 값 포함)의 비참한 도서구입비가 말해주듯이 책을 읽지 않고 고작해야 도서관에서 토익 책을 볼 뿐이라서 이 통로는 막혔다.
 
열린 자세는 대학동아리가 죽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모임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과의 토론을 하며 타자의 생각을 공유해 볼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인터넷 토론공간의 경우에 “설득하고 설득되는 공간이 아니라 기존의 생각을 확인하거나 배설하는 기능”에 그치기 때문에 열린 자세를 배우는 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여행은 과거에 비해서는 자주 가는 편이지만 그저 그곳에 사진을 찍으러 갈 뿐이란다. 앞의 세 가지는 결국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 도는 ‘다행스럽게도’ 못 닦아서 다행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앞의 세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만을 닦을 경우에는 자칫 신앙만 강조하게 되어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등의 종교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 선생이 강연이 끝난 후 자신의 책을 구입한 학생들에게 자필서명을 하는 모습     © 대자보 황진태
 
이렇게 의식에 대해서 새내기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성인이 되어서는 한번 굳어진 의식을 바꾸는 게 사실상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간혹 변절은 있을 뿐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이 가지고 있는 성질은 변화를 막는다. 이 성질로 인해서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 되어야 하지만 합리‘화’를 하려는 동물로 추락된다. 그는 덧붙여 스피노자의 경구를 인용한다. “사람은 누구나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의식을 고집한다.”
 
그래서 홍세하는 신입생들에게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회의하면서 합리화보다는 합리적인 동물이 될 것을 역설한다.
 
민주공화국에 민주주의만 있다
 
마지막으로 홍세화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에 명시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을 언급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무성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공화국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다. 대한민국에 공화국 담론이 불모지인 이유에 대해서 그는 대표적인 공화국인 프랑스는 군주국을 몰아내어 공화국을 만든 역사적 경험이 있었던 반면에 한국에서는 그러한 경험없이 해방이 되면서 공화국을 줏어먹은 격에다가 교육과정에서 조차도 공화국(republic)의 어원인 ‘res publica’ 즉, ‘공적인 일’이라는 의미조차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가령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교육의 공공성, 의료의 공공성은 민주공화국 구성원이면 당연하게 요구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화국의 ‘공적인 일’인 교육의 공공성, 의료의 공공성 주장을 ‘20’도 아닌 ‘80’이 “사회주의적 발상”, “좌파적 발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20’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교육과정을 통하여 주입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공화국 담론은 희귀한 반면에 공화국 앞에 무슨무슨 수식어가 붙어서 공화국은 ‘삼성공화국', '부패공화국’등의 상스러운 장식어로 전락한 것이다.
 
자아실현과 생존의 갈림길에서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필요충분조건은 될 수 없을지언정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홍세화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생존은 조건에 지나지 않으며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마지막으로 “기름진 생존을 위해서 자아실현을 양보할지언정 포기하지 마라. 그만큼 자신의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일생에 두 번만 긴장하지 말고 끊임없이 긴장하라. 자유인이 되기 위해 시대와 불온하라”고 신입생들에 주문하는 것으로 소박하나 뜨거웠던 강연회가 끝났다.
 
사실 홍세화의 저서와 칼럼들을 통해서나 몇 년 전 강연에서 지겹게 들었던 ‘존재는 의식을 규정한다’, ’한국의 대학생은 무식하다’는 그의 말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듯이 여전히 한국사회가 몰상식하기 때문에 상식의 불온화가 여전히 필요하다. 이번 강연회를 통해서 12년 동안 주입교육만 받아왔던 새내기들이 기존의 사회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면 앞으로도 이 식상하고 지겨운 얘기는 반복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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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25 [22: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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