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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군산복합체 배불리는 국방비증액?
군의 실질적 전투력을 강화하는 군 개혁이 먼저다
 
권태윤   기사입력  2003/07/04 [18:22]

한때 ‘병역이행’을 장담하며 ‘팔팔 날던’ 스티브 유(유승준)가 어느 순간 미국시민권을 취득해 병역을 기피했다는 이유로, 그는 국내에서의 연예활동은 물론 입국조차 어려울 정도의 신세로 전락했다. 수많은 이 땅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단지 현역병 입대를 모면하기 위해’ 멀쩡한 살갗에 바늘로 그림을 새겨 넣는 바보짓까지 저질러가면서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혈안이다. 그들은 아픈 만큼 보람이 있을 거라고 믿었겠지만, 도리어 아픔만 배로 늘어나고 말았다.

숱한 부유층과 특권층의 자식들 또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스스로 정신병자를 자처하기도 하고, 인간미이라 되기나 스모선수 체형 닮기에 혈안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낸 운동선수들은 ‘병역면제’라는 ‘엄청난’ 선물을 받아들고서 국가에 대해 황송해 몸 둘 바를 모른다. 병역면제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병역이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요 형벌이라는 말과 같다.

▲군대의 전투식량, 이걸 먹고 어떻게 나라를 지키라는 것인지..     ©대자보
이 땅에 태어난 신체 건강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 시스템 아래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몇 년간을 특수한 조직사회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하는 군대생활은 그 자체만으로 고통이다. 그나마 권력과 금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식들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병역을 면제받아 ‘신의 아들’로 대우받는 불평등한 상황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좌절감은 더욱 깊다.

그러나 우리의 군대가 아무리 ‘살림살이 나아지는 일’이나, ‘행복해지는 일’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능력이나 기회만 된다면 빠지고 싶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기피의 대상이 된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정말 서글픈 일이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된 데에는 우리 군대의 비민주적이고 타율적인 내무 분위기, 폭력적이고 폐쇄적인 조직운용, 인생의 황금기를 허송세월 한다는 안타까움, 배울게 없고 몸만 버린다는 아픈 경험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는 쓰디쓴 절망감 따위가 계속해서 쌓여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처럼 문제투성이인 군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21세기에 맞는 빠르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혁신시켜‘배울 것이 많은 군대’, ‘적지만 효율성이 높은 군대’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병사의 수적(數的)인 우세에 집착하는 후진적 ‘쪽수유지정책’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니 막대한 국방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적지 않는 예비사단 병사들은 2차대전이나 6.25때 미군들이 사용하다 버린 수통(물통)에 물을 담아 먹고, 고철덩어리와 같이 삐걱거리는 녹슨 탱크를 따라다니는 반세기전 방식의 낡은훈련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가고 싶은 군대’로 변모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현대전에서는 ‘갔다가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는 불안하고 비효율적 군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런 군대는, 한때 지구를 점령했으나 지금은 멸종해버린 공룡들처럼, 덩치만 컸지 변화하는 환경에는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어리벙벙한 공룡신세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흔히 북한의 군인 수가 많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라크 전에서 보듯 군사의 숫자는 이제 전투에서 별 의미가 없어졌다. 비록 육군이 지상전을 끝내야만 전쟁이 끝난다고 할 정도로 지상군의 중요성은 여전하다고 하나, 첨단무기가 즐비한 현대전에서 병사들의 숫자는 영양가 없는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 본토를 침공해 강력한 로마군대를 패퇴시키며 16년간이나 로마를 괴롭힐 수 있었던 것도 군사의 수가 아니라 전략과 전술의 힘이었고, 집정관을 지낸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평정하고 루비콘 강을 넘어 이태리를 장악하고, 그리스로 달아난 폼페이우스의 대군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전략과 전술,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하물며 정보와 속도, 무기의 질로 승부하는 현대전에서 병사의 수를 이용해 전술을 펼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국방비는 후진적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쓰여야 한다
해답은 분명하다. 병사들의 봉급과 먹고 자는 비용으로 국방비의 절반 이상이 지출되는 후진적 시스템을 방치하고서는, 국방비 증액이 국방력 증대에 아무런 도움을 못준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군대, 제대를 했는데도 다시 징집당하는 악몽을 꾸지 않는 군대, 투자하는 예산의 성과를 보여주는 효율적인 군대로 개혁하지 않는 상태에서 국민의 추가부담을 요구한다는 것은, 단지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압력에 굴복해 무기구매비용을 내놓자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흔해빠진 주장이지만, 먼저 병사의 수를 현재의 절반 정도로 줄여야 한다. GNP대비 국방비 비율은 현재의 3~4% 수준으로도 충분하다. 인원의 절반만 줄여도 당장 국방예산의  2/3가 넘는 운영 유지비를 줄여 현재 1/3에도 못 미치는 방위력 증강비용을 늘리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인원감축으로 늘어난 방위력 증강비용은, 전자전 수행능력 증강, 해군 및 공군력 증강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21세기 전쟁이 공군력에 의해 판가름 난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특히 우리의 한심한 해군력으로는 21세기 해양대국의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 끝날 뿐이고, 갈수록 군사무장을 노골적으로 시도하는 일본을 생각하더라도 시급히 보강해야 할 부분이다.

이와 함께 병영의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만 하고, 양(量)위주의 군 생활을 질(質)적 향상을 가져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만 한다. 질적으로 우수한 군대란, 군인 개개인의 자질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군의 전체적인 자질을 높일 뿐더러, 군대가 생산적인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병역기피를 줄이고 자발적 군 입대를 통한 사기진작에도 도움을 준다. 게다가 군이라는 집단에서 질적으로 보다 성장한 군인은 당연히 전역 후에도 사회발전을 위한 인적자원의 질적 가치상승이라는 동반효과를 가져다준다.

북한 핵문제, 미국의 호전적 공세전략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의 긴장 상황이 극대화된 지금이야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이나, 안정을 바라는 우리의 입장 모두에게 있어서 병력감축 합의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를 통해 우리 군의 개혁과 내실향상을 기대할 수 있음도 물론이다.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지 못하고 미국이 만들어 놓은 대결 극대화 상황에만 몰입해, 본질은 개혁하지도 못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가며 미국 군산복합체의 배나 불려주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 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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