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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천 명의 리영희가 있는 한국사회라면
[기자의 눈] 책 한권 쓰기보다 더많이 읽고 블로그 활용하는 것이 현명
 
황진태   기사입력  2006/08/19 [22:32]
최후의 인문사회과학 서점 중에 하나인 '그날이 오면'이 재정난으로 문 닫기 일보직전이다. 이 서점이 생겼을 당시의 '그날'은 결코 이 서점이 문 닫는 날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서점의 어두운 앞날을 보면 한국 젊은이들의 '사유의 샘'이 마를 날이 바로 그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착잡해진다.

이미 <이론과실천> 7월호에 기고한 '인문사회과학서적을 기피하는 대학생들에게'에서 토익과 공무원 문제집에 매달리는 대학생들에 대해서 회의반, 희망반 조로 비판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회의반, 절망반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비판적 사고의 요청은 거의 밑바닥을 파고 지하로 숨어 들어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겠다.

우석훈의 20대에 책을 내라는 말은 참 매력적이다. 이 글은 우석훈의 글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우석훈이 주장한 젊은이들의 포부는 가지되 덧붙여 내가 생각하는 20대에 바라는 것을 적어 보았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생각에 먹은 것도 얼마 없으면서 써봤자 건더기가 몇 개나 있겠는가라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고언한다면 20대에 책 낼 로망에 빠지지 말고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서 뇌에 주름 하나라도 더 깊게 만들길 바란다. 그리고 A4 용지 한 장을 쓰더라도 자신을 성찰하고, 사회와의 연계망적 사고를 하게 된다면 계속해서 종이 한 장 분량에 자신의 사유의 궤적을 그리길 권장한다. 그래서 이들이 인터넷 논객으로 이름을 날렸으면 진심으로 고대한다. 굳이 책을 내고 싶다면 그러한 파편적인 글쓰기를 모아서 후에 칼럼모음집을 내더라도 늦지 않을 것이다.

리영희

요즘에 리영희 선생의 건강이 어떤지 궁금하다. 내가 어렸을 때도 위인전을 많이 읽으라고 했지만 그 당시에 위인전 읽기란 국가주의적 사고의 체화라는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로 문제가 따랐었지만 리영히 평전이나 문익환 평전과 같은 전기문들은 어린이들이 많이 읽었으면 바람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13명인 가수 슈퍼 주니어의 이름은 알더라도 리영희는 모른다. 몇 해 전 NLL논란 당시 MBC <미디어비평>에 리영희 선생이 출연하여 열변을 쏟으셨다. 당시 그가 한 말은 귀에 안 들렸다. 그의 손에서의 미묘한 떨림과 건조한 입술과 푹 패인 주름살과 새하얀 머리카락에만 동공이 반응하고, 머리보다 가슴이 섭동되었다.

비판이론이나 포스트모던 이론의 지적 유희를 알아가는 것도 -내가 아는 진보적 학자는 사적인 자리에서 욕을 해댔지만- 중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 한국현대사에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내가 왜 보통 동네 할아버지와 그 인상에 차이가 없는 리영희를 보면서 가슴이 울컥하고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가슴으로 하는 공부를 해 보라. 반주변국에서 사는 젊은이들은 그러한 뜨거운 감성 위에서 차분히 책을 읽어야 한다.

획일적인 독서

대학 도서관에 가면 새 책이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책이 비치되기도 전부터 예약하여, 비치된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손때가 묻은 책과 3, 4년이 지나도 먼지만 수북한 채 아무도 손대지 않는 새 책이 있다. 개인적으로 요시다 슈이치를 좋아하는데 일본 젊은이들의 연애, 전망, 삶을 세련된 필체로 묘사한 그 책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인문사회과학서적은 후자에 해당하겠다.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도 강의 관련 서적이 아니라면 다른 책은 건들지도 않는다. <이론과실천>에 기고한 글에서는 편집에서 삭제된 말이지만 '정말 요즘 대학생들은 무식하다.'

오차범위가 몇 퍼센트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여론조사결과보다도 신뢰하는 게 바로 지하철 풍경이다. 지하철에서 시험기간에 프린트물이나 전공서를 펴보는 것은 종종 목격했지만 평상시엔 무슨 책은커녕 신문조차 읽는 학생을 보기 힘들다. 혹시나 연극처럼 '지하철 1호선'이 갖고 있는 정치경제적인 패턴이라도 있을 까 싶어서 전 노선을 돌아다니고, 서울의 주요 대학교 근처의 지하철역을 통과하는 학생들을 유심히 살펴보더라도 독서하는 대학생은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이다. 획일적인 독서, 그것조차도 시험기간에만 유효하다.

구조를 통한 핑계

신자유주의의 이식으로 인한 비판적 사고의 결여 그리고 이태백이라 불릴 정도의 취업문제, 내가 젊은이들이 이러한 핑계를 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군부독재시절에는 군부독재라는 구조적인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대학생이 더 공부를 했고 맑스-레닌 원전까지 구해다 읽고, 최소한 도서관에 있는 학생들도 운동하는 동기, 선배들에게 미안함은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연대의식조차 없어서 '왜 연대를 해야 하는데 나랑 무슨 상관인데' 반문하는 그들에게 '구조'에 핑계를 되고 '개인'을 찾는 오늘날의 행태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독재시절에 쓴 스테디셀러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의 저자 -현재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인- 박세길이 학생시절에 쓴 책처럼 시대환경에 의해서 나온 책도 있다.(뉴라이트 계열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홍진표는 학생운동시절에 "출소 후 공범 중의 하나인 박세길(서울大 철학과 81학번)은 이때의 토론(구치소에서 정치범들끼리 모여서 한 근현대사 학습을 일컫는다.)을 기초로 운동권의 필독교과서가 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월간조선 2005년 11월호, 92쪽)고 말했다.) 

굳이 책 한 권 내놓고자 한다면 취업을 핑계되는 젊은이들은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먹고살기 빠듯하게 만드는 한미 FTA를 빼놓고 어찌 생계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들 취업을 고민하는 현실적인 젊은이들로부터 한미 FTA 관련하여 책 몇 권은 나와야 하는 게 당연한 귀로다. 박세길이 책을 써야 했던 엄혹한 시절보다야 지금이 그래도 글 쓸 환경은 훨씬 낫다. 
    
책 한 권보다 블로그의 활용을

안티조선 운동에 있어서의 쾌감은 종이신문의 위상을 붕괴시켰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러한 희열을 20대 논객들이 한동안 갖고 있으면 바람이다. 나는 쓰레기 같은 저서도 책이라고 내놓는 출판시장의 '고급휴지'들을 보면 달랑 A4 용지 한쪽이라도 진실하고 진보를 내딛는 중요한 토대라고 본다.

또한 책이란 매체에 집착하기보다는 매체 발달에 따라서 미디어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 논객으로 쓴 글이든 메모든 일기든지 새로운 매체인 '블로그'의 활용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요즘에 사회과학서적, 논문 중에서도 참고문헌으로 블로그를 그대로 인용하는 사례도 적잖이 있는데 이는 블로그가 매체로서 갖는 신뢰가 어느 정도 쌓여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개인소장용의 기념책을 낼 게 아니라면 그러한 책을 만드는 자기위락적 고비용을 지불하느니 차라리 저렴하고 자신의 글에 대한 쌍방향 의사소통으로 평가받고 이를 통해 더 깊은 사유의 구멍을 팔 수 있는 블로그를 적극 권장하고 싶다. 이러한 블로그 활용을 잘한 사례로 김규항(gyuhang.net)을 참조하길 바란다. 

한명이 아닌 수백, 수천 명의 리영희를 보유한 한국사회

개인적으로 '내공'이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한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어떤 사회의제에 대한 목소리가 당장 시급한 상황이라 거기에 맞는 지식을 원전에서 떼어 와서 붙이는 '꼴라쥬'와 같은 글쓰기라서 '내공' 쌓으라는 소리는 한가하게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어디 어디에서 꼴라쥬를 완성할 소스를 떼어 오는 능력은 평상시의 독서에서 드러난다. 결국 '내공'에 대한 어느 정도 인정이 필요하다.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철학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학에 관한 독서의 지평을 넓혔으면 좋겠다. 오늘날의 현대미학은 현대사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해석이 불가능하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씌여있지 않은 것을 읽어야 하는 게 현대사회의 독해법이라면 미학을 하기 위해서 현대사회의 근저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파울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 그림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벤야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이 그림을 보고서 왜 이러한 말을 했을지 궁금해 해야한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란 책에 대해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진보논객들이 비판하니까 어줍잖게 덩달아 비판하려 들지 말고, 그 책부터 읽고서 가령 재인식에 수록된 김영호 교수의 롤백이론 논문이 한국전쟁사를 이해하는 데 진전된 측면이 있다면 그 학문적 성과에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리고 그 책이 나오게 된 해전사를 읽었으면 바람이다.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읽어라. 조갑제의 책을 패러디한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만 읽고서 꼴통극우들에 대해서 실랄하게 비꼰 쾌감을 느끼는 것도 정신건강상 좋겠지만 조갑제의 성실한 팩트주의는 본받을 만하다. 왜 현대사 서적에서 조갑제의 이 책을 자주 인용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류근일과 홍진표의 '지성과 반지성'도 읽어보시라. 한때 조갑제, 김대중과 함께 조선일보 극우꼴통 삼각편대의 한 축이었던 류근일이 독재와 싸우다가 8년간 감옥에 투옥했던 사실은 많은이들이 모르고 있다. 이들의 멘탈리티가 어떻게 극우로 변했는가. 젊은 인터넷 논객들의 글에서 피상성이 비친다면 이러한 상대방 알기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 아닐까. 즉 진보논객들의 서적만큼 보수주의자들 혹은 극우주의자들의 책들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복거일, 공병호의 책들도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뉴라이트 닷컴을 즐겨찾기에 추가하라.

20대 논객들이 실제로 얼마나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지만 어쩌다가 싸가지 없게 쓴 이 글을 읽은 20대 젊은이들은 나에 대해서 많이 욕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내 욕하는 것에 덧붙여 겸사겸사 사회부조리에 화도 내고 홧김에 책도 많이 읽고 A4용지 한 장 분량이나마 자신의 생각을 쏟았으면 좋겠다. 근거 없는 욕설보다 이 글에 대해서 반론까지 올려준다면 이 글을 쓰면서 보람도 생기고 욕도 감사하게 먹겠다. 앞으로 20대 젊은이들이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소매에 끼고 살면서, 자연히 그 중에서 20대 인터넷 논객들이 늘어나고 사회에 분노할 줄 알게 된다면 한국사회는 희망적이다.

수십 년 후 한 명의 리영희가 아닌 수백, 수천 명의 리영희를 보유한 한국사회라면 분명 사람이 살만한 사회가 되어있을 것이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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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19 [22: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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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 2006/08/21 [18:56] 수정 | 삭제
  • 개인적으로 선생의 제언 대부분은 발상의 수준에 남기고 싶소. 갑제의 팩트주의라... 아주 예전엔< 유고>를 포함해서 치밀하게 씌여지고 발로 뛰던 기자시절 그의 팬이었죠... 이제? 뭘로 해도 그의 거칠고 눈먼 당파성과 극우주의를 팩트로 가릴 순 없죠. 그 외 거론하신 뉴라이트 전향자들의 글은 가끔 데일리안이나 극우사이트에서 읽어보지만,.. 내가 힘들게 번 돈으로 그들의 책을 사느니 차라리 귀에 감겨오는 앨범이나 사겠소. 뉴라이트에 동조하는 학자나 문인의 경우, 복거일의 소설집 하나 정도 구입했고, 공병호야 돈잘벌테니 패스, 김영호의 책은 차후에 도서관에서 보고, 전상인의 지식인에 대한 책을 최근에 구입해 읽기 시작했으나 별로 리서치가 꼼꼼하게 되지않은 팜플렛성 책이라 화분받침으로 쓸까 고려중이요. 님꼐서 정치한 서평을 올려주시면 그때 읽고 다시 극우들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를 고민해보리다.
  • 2006/08/21 [08:54] 수정 | 삭제
  • 매끄럽지 않은 데가 종종 눈에 띄는군요, 내용 좋군요. 블로그 활용, 그게 반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