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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꿇은 교사’ 논란에 가려진 아동들의 인권
[신정모라 여성주의] 교사 무릎꿇었다는 교권주의는 왕정시대 유교사상
 
신정모라   기사입력  2006/06/12 [01:32]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 꿇은 모습은 드문 현상이라서 보이고, 교사와 부모들에게 일상적으로 학대당하는 아동들의 모습은 본질적 현상이라서 안 보이는가?

이 시대에 교권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시대에 맞게 정립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충북 진천에 있는 모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부모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감정적으로 치달아 교사와 학부모간에 갈등만 유발했을 뿐이다. 그간 언론의 보도 행태로 보건데, 한국사회는 교권을 '교사가 아동인권을 침해해도 되는 권리' 쯤으로 오해하고 있어 시대착오적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아동을 한 인격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전혀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아동을 한 사람의 인격으로 성인과 차별하지 않고 존중한다면 이런 문제는 발생할 여지조차 없었다.

우리 국민이 인식하는 교권은 원래 유교주의 '군사부 일체' 사상에서 유래한다. 교사들이 주장하는 교권이란 왕정시대 사상이지 민주주의 시대 사상은 아니다. 왕, 부모, 교사가 절대적으로 존경받아야 할 권리를 지녔다는 사상적 근거는 애초부터 그 뿌리조차 잘못된 것이었다.  
장자에 나오는 공자와 노자의 대화 장면을 보자.  (정세근저 노장철학)

공자 : 나는 시, 서, 예, 악, 역, 춘추의 육경을 배웠으니 여러 임금이 나를 써야 할 터이나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노자 : 다행이다.


여기서 노자는 육경 그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그 문자에만 매달려 있는 공자를 탓한다.

장자는 또 유교를 이렇게 비판한다. “예악이 한 쪽으로 행해지니 천하가 어지럽다”장자에 언급된 공자와 노자의 또 다른 대화를 보자.

공자 : 모두 사랑하고 내가 없는 것이 인의의 본질이다.

노자 : 비슷하다. 그러나 모두 사랑하기는 너무 멀지 않은가. 또 내가 없는 것은 곧 내가 있는 것이다. ....중략....그대야말로 사람의 본성을 어지럽힌다.


(글쓴이 주 : 노장사상을 대표하는 장자에는 유교와 묵가를 비판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나는 노장사상에 공감하지만 정세근 교수  노장철학에 배경으로 흐르는 유교주의적 맥락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단지 여기에 인용한 부분은 필요성이 있어 편의에 따라 임의적으로 발췌하였다.) 
현재 한국 사회는 여전히 유교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교주의가 습관화된 관습으로 통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서구식 민주주의 법과 문화를 체험이 아닌 제도적으로 갑자기 도입하였던 것이다. 민주주의를 체험으로 체득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주입식으로 강요받아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상적 대혼란이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한편에선 대중들 인권의식이 급격히 향상되고 체화되어 가고 있다. 국민의식은 민주주의를 시대적 정신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다른 편에선 관료와 권력층이 왕정 시대 '군사부 일체' 사상인 유교주의를 여전히 관행으로 고집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권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권리이자 의무인 개념으로서 권리와 의무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교사들이 주장하는 교권의 개념은 유교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교육청은 교권 침해를 주장하면서 학부모와 학생에게서 '군사부 일체 사상'을 강요한 바가 있고, 그런 사고방식은 민주주의 부정이다. 민주주의에서는 교사와 부모가 아동에게 인권 침해 행위를 하고도 비판받지 않고 여전히 교사와 부모로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지닐 수는 없다.

진천 모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점심 시간에 빨리 밥을 먹을 것을 강요하고, 매를 들고 다니면서 위협을 했다고 한다. 매를 들고 다니면서 밥을 빨리 먹으라고 하는 행위가 교사의 권리인가? 이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학교 사정이 어찌되었든, 우리 현실이 어떠하든, 교사는 학생에게 매를 들고 다니며 위협을 할 권리가 전혀 없다. 동물에게도 밥을 빨리 먹으라고 강요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열악한 형편상 교사가 그렇게 강요 할 수밖에 없으니 제도를 고쳐야 문제가 풀린다는 발상은 문제를 더욱 크게 키우는 환원주의 해결방식이다. 학생들이 밥을 빨리 먹아야만 하는 열악한 환경이라면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권리, 즉 가르칠 의무의 측면에서 문제를 풀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교권이란 '그 열악한 환경을 조장한 학교측과 교육당국에 맞서야 할 권리'를 뜻한다. 아이들에게 밥을 빨리 먹으라고 하는 대신에 반대로 오히려 수업시간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밥을 천천히 여유있게 먹게 해서 교장과 맞서야만 하는 권리인 것이다. 만약 교장 혹은 교육청이 그런 교사에게 징계를 내리면 그거야말로 교권침해가 된다. 교권침해란 이럴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시대 교권의 개념이다. 문제의 사건에서 그 교사는 교권을 실천하는 대신 아동인권을 침해하여 교권을 포기하였다. 열악한 환경 조성을 한 학교측과 교육청에게 책임 추궁을 하여야 할 교권이 적반하장으로 상부에 아부하고 자기 책임하의 연약한 아동에게는 인권침해를 한 것이다. 그 교사는 교권 포기뿐만 아니라 교육할 의무를 방기하였다.

그 교사의 행위는 병리적이다. 매를 힘없는 학생들에게 들이대는 것이 교권인냥 착각하였다. 민주주의를 뿌리 채 뽑아버리고 왕정시대로 회귀하는 행동이었다.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 대한 책임이 없으므로 교사의 무서운 회초리에 가슴을 찔리고도 침묵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아동과 여성을 한 인격체로 보지 않았던 유교주의의 폐해가 진천 모 초등학교의 사건에도 숨어 있다. 아동을 한 인격체로 본다면 이 사건의 문제의 본질은 아동인권침해에 있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여도 교사와 교육청이 군사부일체 사상에 심취하여 시대착오적인 유교주의 기치를 높이 내걸고 몽매한 대중들에게 눈물로 읍소하여 동정표를 얻으려는 태도를 계속 취한다면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학부모들이 인권이 없는 아동들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누가 아동인권 침해에 대해 대신 항의하는가? 아동들 스스로 나서서 데모하기를 기대하는가? 학부모가 교사에게 아동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기 때문에 교사가 학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한다.

한국 사회는 '학부모가 내 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치맛바람, 바짓바람' 등등으로 학부모의 행태를 부정적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선진국 사정에 비교한다면 이런 정의는 너무도 심각하게 진실을 왜곡한다. 선진국에선 아동인권이 우리와 비교해서 상당히 발달하였다.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 등하교길에서 벌어지는 폭력범죄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등하교길에 동행한다. 우리나라는 아동폭력 범죄를 인지하면서도 아동인권을 개선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무조건 부모에게 다 맡겨 버린다. 모든 것을 부모에게 맡겨버리고 한다는 소리가 학부모들이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남의 자식에게는 배타적이라고 비난한다. 아동인권이 어느 정도 향상되면 우리나라 부모들도 여유있게 남의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 수가 있다. 고로 학부모들에게 먼저 화살을 돌릴 게 아니라 아동인권 향상이 더 우선적으로 제도화되어야 해결된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선진국에 비해서 사랑이 한참 부족하다.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너는 특별해" 라면서 존중받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류층에서 소수만이 특별하게 키워진다. 모든 아이들이 지문만큼 독특하고 특별한 법인데 아이들을 특별하게 키우는 것에 빈정대는 문화까지 있다.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욱더 특별하게 더욱더 소중하게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아이 밥 빨리 먹으라고 매 들고 다니는 교사가 있다면 교사 자격 없으니 당장 개 사육사로 직업을 바꾸라. 적성이 맞아야 일을 오래 할 수 있다.

그럼 무릎을 꿇게 한 사건이 교권 침해인가? 교사가 교권을 실천하지 않고 교사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아동 인권 침해를 했으면 누군가 아동을 대신해 항의해야 했고, 그 항의 결과 교사가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왜 무릎을 꿇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보는가? 그 교사는 당연히 교권 포기와 의무 태만으로 교사자격 박탈당해야 마땅하다. 어떻게 아동인권 침해 행위를 한 교사에 대한 벌이 고작 무릎 꿇고 빌면 되는 일로 끝나는 것인지? 학부모들 발상도 교육청과 매한가지이다.

학부모들도 아동 인권에 대한 인권 의식이 한참 부족했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 감정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인격체로 보고 아이 인권이 교사에 의해 침해당했으면 법적으로 교사에 대한 정당한 처벌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교사가 무릎을 꿇는 것으로 자기 잘못을 면책 받으려고 한데 말려들어가 버렸다. 유교주의 군사부일체 사상이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으므로 교사는 눈물로 대중적 호소문을 작성해서 자기 책임을 면책받으려 했다. 교육청은 시대적으로 한 발짝 더 후퇴하여 왕정시대 군사부일체 정신을 강조하는 교권침해를 대중들에게 읍소하였다. 그러자 모 고등학교에서는 인권의식 없는 학부모협회가 스승의 날을 맞자 폭력의 상징인 회초리를 교사들에게 선물하는 기막힌 일까지 벌어졌다. 학교폭력 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것이 교사들의 폭력인데 교사들에게 회초리를 선물하다니.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소유물로 인식한다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회초리가 사랑의 매로 둔갑하고 폭력이 아니라고 무마되는 유교주의 사상 때문에 한국은 약자에 대한 폭력 범죄가 세계 1위이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인격체로 평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사와 학부모 모두 깨달아야 이 사건이 제대로 풀릴 것이다.

동양에는 유교주의와 노장사상이 동시에 존재한다. 서민과 대중은 민주주의 시대 정신에 공감하고 노장사상을 선호한다. 하지만 권력가진 기득권층과 관료사회가 유교주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그들은 공짜로 섬김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섬김을 받고 싶으면 관료사회가 앞장서서 반성하고 아동인권부터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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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6/12 [01: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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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06/06/13 [12:02] 수정 | 삭제
  • 정당한 법적 처벌 절차를 밟으라구요 ^^
    애들이 학교에 있는 모든 시간이 교사와 학교의 책임이라는거 아시나요?
    쉬는시간에 애들끼리 장난치다 다쳐도 교사책임, 급식시간 넘어져도 교사책임, 밥 먹다가 까시에 질려도 교사책임.. 심지어 학교 밖의 사건에 대해서도 학교와 교사의 책임입니다.
    이런 책임을 벗어나게 하고서 법적 운운 하시지요..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무릅을 꿇었다니요 ? 교사는 학부모에 대해 그 학생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것에 대해 어떤 교사가 학부모에게 인격적으로 대항 할수 있겠습니까?
    의식없는 학부모회라니요 .. 그 회초리 준게 학생들을 자식과 같이 대해달라고 한 상징적 표현이지 체벌을 마구 하라고 준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더군다나 요즘같이 카메라가 널린 세상에 누가 체벌을 하리라봅니까..



  • 지나가다 2006/06/13 [11:37] 수정 | 삭제
  • 환경의 열악함은 둘째치고 급식지도 역시 교육입니다. 그 좋은 점심시간 교사에게도 달콤한 휴식시간입니다. 애들이 알아서 잘 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10살도 안된 애들 급식 받게 해 보세요.. 어떤 일이 벌어질것 같습니까? 급식 지도를 함에도 많은 애들은
    눈치를 살피며 과자를 먹고, 편식을 하고 , 귀중한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립니다.. 이걸 교육자로서 방치해야 하나요? 자기 자식이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런 애들이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지도할지는 각 교사마다 다를것입니다. 위에 예를 든 반성문도 있을수 있고 , 체벌도 있을수 있을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니까요.. 단지 단순하게 그 애가 밥 시간에 맞춰서 먹지 못했기 때문에 지도를 하지는 않았을 거라 봅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룰을 지키게 하는것이고 그 애에 대한 어떤 교육적 판단이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거창하게 교권 어쩌고 할 것도 없고요. 그렇다고 방치할수도 없구요.. 더군다나 다시 도시락 싸들고 오게 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교권과 인권의 충돌이라니요...
    애들의 인권이 방치입니까?
    사랑이 없어서 지도 한것으로 보이십니까?
    아마 대부분의 교사들은 생활의 연장으로 교육의 연장으로 급식지도를 할것이입니다. 이걸 귀찮다 여기고 무관심 하게 둔다면 이 사람이야 말로 교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겠지요.
  • 지나가다 2006/06/12 [17:15] 수정 | 삭제
  • 잘읽고 갑니다......
  • 자료모음 2006/06/12 [17:10] 수정 | 삭제
  • 아고라-펌 2006-06-11 10:56 추천 0 | 리플 0 | 삭제 3교대 급식을 하면서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15분 동안 밥을 먹도록 하고 그렇게 못하면 벌로 청소를 하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잘못했습니다’라는 반성문을 50번, 100번씩 쓰게 하면서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지도 방식이 교육적으로 타당한가. 교사에게 분명히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는 아이가 그런 급식지도 때문에 만날 체하고 토하는 것을 3개월 동안 봐왔다고 한다

    또다른 진실 2006-06-11 11:01 추천 0 | 리플 0 | 삭제 급식만 문제가 됐던 것은 아니다. 운동회를 할 때 아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뺨을 심하게 때린 사실도 있다. 아이들이 평소 ‘우리 선생님은 스트레스 풀러 학교에 온다’고 말할 정도로 교사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명백하게 문제가 있는 교육지도에 대해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급식상황 2006-06-11 11:06 추천 0 | 리플 0 | 삭제 첫 번째로 먹는 학생들은 약간 여유가 있지만, 제일 마지막에 먹는 1학년 학생들은 전쟁통에 밥 먹는 것처럼 10분 동안 ‘처리’해야 한다. 고등학생이 이 정도인데 행동도 굼뜰 수밖에 없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 3교대로 급식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항의한 학부모의 아이는 평소에 안 먹던 마늘종을 빨리 먹다가 제대로 씹지 못했고, 나중에 토할 때 씹지 못한 마늘종이 그냥 나오는 걸 보고 학부모가 흥분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교육당국의 몫인데도 이런 문제는 논의되지 않고 무조건 학부모들의 책임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아이가 그동안 당한 고통도 모자라서 학부모에게까지 공권력이 또 한 번 고통을 줘야 하나. 이번 사태에서도 ‘교권’ 개념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교권이 무너진다는 보도가 요즘처럼 많이 나오는 때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