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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아르헨티나의 눈물을 기억하는가
[랍비의 축구칼럼] 축구라는 스포츠는 비정, 월드컵은 눈물의 축제일 뿐
 
랍비   기사입력  2006/05/26 [01:48]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그 더운 여름에 벌어졌던 지구인들의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한 나라가 있었다. 한일 월드컵 32강 조별리그에서 "죽음의 조"라는 명칭으로 더 잘알려진 F조 속했던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당시 월드컵이 개막되기 한 해전 2001년 12월, 나라경제가 1997년 상황보다 더 악화되었고, 때문에 물러난 델라루아 대통령을 대신해 로드리게스 사아 임시대통령이 1320억달러에 달하는 대외 채무상환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일종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셈).
 
그리고 급기야 2002년 1월 아르헨티나는 신임대통령에 의해 결국 디폴트를 선언했다. 더도 말할것도 없이 그것은 국가파산을 의미했다.
 
이런 사상 최악의 조건아래 대다수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월드컵에 매달리는건 당연한 결과였을것으로 본다.
 
적어도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자국 대표팀 수준이 세계적인 강팀이라는 점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다 그 정도의 인프라도 사실 구축되있다고 본다.
 
프리메라 A(아르헨티나 프로리그)만봐도 한국과 일본내 프로축구리그와는 리그 역사에서도 비교가 안될정도로 훨씬 거대하고 치열하며 화려한 팀들이 많다.
 
현재 세계 클럽 랭킹 10위안에 드는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 Buenos Aires)를 비롯해, 벨레즈 사스필드(Velez Sarsfield), 리버 플라테(River Plate Buenos Aires)등등이 세계 30대 명문클럽안에 들어가있다.
 
다시 말해 전반적인 축구 인프라가 탄탄하고, 프로리그 흥행성도 충분하며, 이들 선수들 각각의 개인능력도 비교할 상대국가 선수들이 거의 없을만큼 뛰어나다.
 
▲2002 월드컵에서 스웨덴에 비긴 후 16강 진출에 실패, 바티스투타의 '월드컵 드림'은 눈물과 함께 막을 내렸다     © 인터넷 이미지 검색
그러나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아르헨티나 경제사정만큼이나 한심하고 우울했었다. "죽음의 F조" 나이지리아에게 이겨놓고도 잉글랜드에게 패한후 막판 스웨덴과의 경기를 훌륭하게 치뤄놓고도 1대1로 비겼고, 결국 조별리그를 탈락하고야 말았다. 그때 바티스투타가 주저앉아 우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한데 모국인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얼마나 슬펐을까?

 
안그래도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만 벗어나면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헐벗은 사람들이 달동네를 이루며 거의 쳐박히다시피 살고있는데, 그들의 희망은 취업도 돈벌이도 아니요 오로지 축구가 아니었던가?
 
스웨덴과 비긴후 아르헨티나 선수들 그리고 마르셀로 벨사 감독등 모두가 얼싸안고 서럽게 울었다. 모국의 경제.사회적인 불행과 그들의 불행이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당시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불안이 월드컵이라는 축제에서조차 심적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는지?
 
최근 아르헨티나의 떠오른 신예 리오넬 메시가 자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질 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고 말한 배경에는 아마 지난 13일에 상파울로 인근 55곳 교도소와 상파울로 시내 경찰서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동을 의미하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일본과 미국 그리고 독일처럼 안정된 사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어 대표 선수들이 갖고있는 심적 부담감은 예상보다 클 것으로 본다.
 
예전 대회에서는 홈그라운드에서 4강까지 진출했지만 지금은 아시아에서조차 무관아닌가?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불안하고, 이제는 너나 할것없이 불만족스러운 작금의 상황.
 
적어도 세계적인 프로리그를 갖고있는 아르헨티나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마당에 이미 전력과 선수들 특성조차 노출된 한국팀이 서바이벌 게임보다 더 악랄한 조별리그에서 16강 결승 토너먼트로 합류할 수 있는지?
 
적어도 다수의 한국 응원단들은 조별리그에서 패하더라도 눈물만큼은 흘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단순히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자만하더라니.."라는 자조섞인 비아냥들이 쏟아져 나올 것은 뻔하다. 왜? 야구가 있으니까!
 
하지만 비록 소수지만 주말마다 원정응원도 마다않고 어렵살이 벌어놓은 돈을 모아 프로팀 서포터즈를 하고있는 국내 K리그 각 프로팀 응원단들은 서러워서 울 것 같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긴다면 너도나도 기뻐할 수 있는 스포츠 축제가 월드컵이다. 하지만 지게되면 우는 사람들의 숫자도 서포터즈들 외에는 없는데다 그들이 안고왔던 비인기 프로 스포츠계의 열악한 현실이 너무도 크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축구라는 스포츠는 비정하다.
 
지난 축제에서의 영광은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처럼 '비운의 탈락'이라는 꼬리표도 늘상 따라다닌다. 더더구나 한국에서만큼은 축구라는 스포츠가 자장면처럼 가난한자도 부자도 먹을수있는 대중음식이지만 그 이면에 깔려있는 다른 모습, 그 양극화는 전혀 줄일 수 없다.
 
이를테면, 가난한 민초들은 돈이 얼마 없어서 가장 먹고싶은게 자장면이지만, 전국 5%내외의 부자들은 돈은 넘쳐나는데 주변에 먹을만한 음식이 별로 없어서 심심풀이로 먹는게 자장면 아닌가?
 
축구도 그렇다. 볼 하나 갖고 모래밭이건 한강변이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스포츠지만 대학입시와 더불어 뭔가를 갖추려면 쇼트트랙 선수들 못지않은 투자 비용이 들어가는게 바로 축구다. 그밖에도 한국 축구계는 갖춰야할 것들이 많았음에도 아직까지 가진게 없다.
 
이제는 지난 월드컵이나 지금이나 생수통 배달하는 사람들도 택배 배달원들도 독일 현지에서 생중계될 대표팀 경기관전과 응원전이 끝나면 예전처럼 시원한 맥주 한 잔에 그날 힘겨웠던 하루조차 잊기 힘들어졌다. 왜? 이제는 새벽에 응원해야하니까...
 
결국 계층간의 차별이 존재한다. 단순히 잘나가는 일상과 일과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축구란 화려함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없는 자들에게는 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날 의식주를 걱정해야만 하는 또 다른 서바이벌 게임이 이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상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그래서 월드컵은 눈물의 축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단히 다양한 종류의 눈물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필자는 <인물과 사상 독자모임> (www.insamo.org)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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