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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와 이명박, 대학은 누가 지키나
[기자의 눈] 토플과 토익에 목매단 대학생들, '반동의 기지'로 전락하나
 
황진태   기사입력  2006/04/23 [18:17]
요즘 동국대의 교내 분위기는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다. 자비를 바탕으로 하는 불교재단이 운영하는 것과는 대조되게 사상의 다양성을 말 그대로 하나로 '합'하고 있다. 그동안 필자는 미약하나마 <대자보>를 비롯한 타 매체에서 동국대의 강정구 교수 직위해제조치와 관련된 글을 써왔다. 그러나 개강을 하면서 교내의 여론을 보니까. 단순히 학교 밖에서 압력을 넣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고, 학교 '내'의 여론투쟁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얼마 전엔 <동국대학원신문>에 '춤추는 반공학교 체험기'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그런데 그 글을 기고하면서 해당 신문사 편집위원들과 묘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야기의 요점은 내 원고에서 총장과 이사장을 겨눈 부분은 삭제를 해야 할 거 같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직접적으로 내 원고에 대한 터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신문사로서는 '강정구 교수 직위해제 특집기사'를 기획하기도 했지만, 총장과 이사장만큼은 겨누어서는 안된다는 비판의 마지노선이 있었던 것이다. 편집진이 강정구 교수 관련 특집기사를 기획한 것만으로도 불안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현실에 어쩌면 필자의 요구는 과도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밖에서라도 이 문제를 지적해야하지 않겠는가. 삭제된 원고는 바로 다음과 같다.

이사장 현해스님과 홍기삼 총장에게 묻는다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만큼 논쟁적인 사안이 친일문제다. 반공주의는 친일파를 보호해주는 기능을 했다. 동국대 초대총장이었던 권상로는 "대동아의 공존공영을 도모하는 것은 (일본) 제국이 아니고는 다시 감행할 자 없으니 이것이 곧 여래의 사명(使命)이다.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목표는 … 곧 부처의 주의를 그대로 실현하려는 것이다. … 이번 대동아 성전(聖戰)은 틀림없는 여래의 사명인 것이 분명하다"며 일본제국주의와 불교를 기막히게 결합시켰던 기회주의적인 친일파였다.

본교 이사장 현해스님과 홍기삼 총장, 두 분께서는 강정구 교수 직위해제에 관한 이사회 개최의 이유로 강 교수의 학교 '명예훼손'을 들었는데 권상로로 인하여 학교 명예는 학교의 설립당시부터 실추되었다. 조만간 학교 명예를 소중히 여기시는 현해스님과 홍기삼 총장으로부터 권상로에 대한 매듭을 지어주길 기대하겠다.

사실 이글은 이미 필자가 강정구 교수 필화사건의 진앙지인 인터넷매체 <데일리서프라이즈> 2월 2일자에 <강정구를 둘러싼 몰상식과 제자로서의 의문>이란 제목으로 기고했었던 글의 일부를 재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언론매체를 통해서 나왔던 글조차도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자기검열을 받아야 하는 사실에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시대에 뒤쳐진 학교의 정보 통제가 학생들에게 사실상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한 근현대사 관련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가 친일파를 얘기하다가 학생들에게 본교 초대총장이 누구냐는 질문에 역사를 전공한다던 3, 4학년 학생들 중의 단 한 명도 초대총장의 이름은커녕 노골적인 친일파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충격이다. 과장 안 섞고 정말 그 순간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한 장면이 묘하게 겹쳤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의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맹점은 최근에 저널룩 <인물과 사상>을 비롯해서 <당대비평>, <아웃사이더> 등의 사회과학잡지가 문을 닫는 현상을 초래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홍세화 씨의 말대로 가히 "한국의 대학생은 무식하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개강 직후 동국대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학부모에게 보내는 단체편지를 받았다. "우리 대학은 수년 전부터 소리 없는 개혁을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 도서관의 불빛은 24시간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본교에서 공부하는 필자의 눈에서 볼 때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 아래서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토익, 토플 교재 혹은 공무원 시험 대비 문제집이 아니던가. "소리 없는 개혁"의 실상은 신자유주의를 신조로 한 자본의 전략과 침투를 당한 대학을 만드는 "소리 없는 반동"인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건 공감하지만 그래서 학교 안에 돌아가는 모순에 대하여 맹점을 형성하는 핑계로 둘러댈 수는 없다. 보수단체회원들의 방해로 천막강의가 무산되었다는 말은 다분히 핑계다. 만약 교내 재학생 수 천 명 중에서 단 백 명만이라도 본교가 '학문의 전당', '진리의 수호자'라는 대학의 존재를 망각하는 자살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했더라면 아니 '구경삼아서'라도 모였다면 몇몇 안 되는 보수단체회원들의 깽판 때문에 강의가 쉽게 무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천막강의 일정이었던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의 천막강의 당일 같은 시각, 이명박 서울시장의 강연을 보려고 중강당을 가득 메워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공중파를 통해 보면서 당혹을 넘어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렇게 절망하는 한편 필자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진보를 향한 관성에 비춰보면 강정구 필화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긍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대학생들이 토익과 토플 문제집에만 동공이 반응하는 상황에서 제2, 제3의 강정구는 재차 발생할 것이고 나의 이러한 글도  '동어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자,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합죽이가 됩시다. 합!"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합'해지길 거부하는 아가리를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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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23 [18: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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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하하 님아! 2006/04/24 [09:08] 수정 | 삭제
  • 유명하다는 표현을 좀 더 대중적이다는 의미로 사용하셨다면 푸하하님같이 대중적인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니까 글쓴이가 우려하는 것이지 대중코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요.

    뭐든지 대중이 원하고 다수가 원하면 그것이 진리이고 선입니까?

    님이 말씀처럼 이명박보다 이효리가 더 대중적이어서 옳다는 그 저변의 의식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황진태님이 푸하하님보다 더 유명하니까 님의 말은 황진태님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가치가 없다고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옳은 일입니까?

    푸하하님의 논리가 그런 것 아닙니까?

    푸하하!

  • 황진태 2006/04/24 [02:23] 수정 | 삭제
  •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국보법이나 이념관련 글을 쓸때 "싸구려절망감"이
    아니라 유머러스하게나 풍자적으로 쓰는 것이 오히려 그러한 스타일이
    먹힐때가 많죠. 관련기사를 클릭해서 3년전에 제가 과거에 썼던 송두율 관련 기사를 읽어보시죠. 거의가 님이 생각하는 쿨하고 풍자적인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이해집단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스타일이
    안 먹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짧은글은 상황에 따라서 절망감을 토하기도 하고 유머로 풀기도 하는 겁니다.

    제 글쓰는 감각이 굳이 일반적이고 싶지도 않지만
    푸하하님이 이명박 시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가는 학생들에 대해서
    거길 가는게 당연하다고 볼거라면 문제의식이 없는 거죠.

    대꾸할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사가 대문글에 걸려서 다른 독자들의
    오해를 살까봐. 답변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제 생각과 글에 문제가 있다면 제대로 된 반론을 보내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 푸하하 2006/04/24 [01:37] 수정 | 삭제
  • 천막강의 일정이었던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의 천막강의 당일 같은 시각, 이명박 서울시장의 강연을 보려고 중강당을 가득 메워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소식을 공중파를 통해 보면서 당혹을 넘어 절망감에 휩싸였다.


    위글을 보고 정말이지 웃음이 나왔다
    그럼 명박이같이 유명한 사람오면
    명박이 사상이 아니라 유명한사람 어떻게 생겼냐부터 궁금해서
    거기 가보는것이 당연한것이지
    임종인이가 뭐 유명하다고 거기를 가는가?

    글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각이 일반적이라는
    매우 잘못된 생각을 먼저 고쳐야한다
    이렇게 대중들과 따로노는 생각을 갖고서 글쓰니
    읽는 사람 웃게 만드는것이다

    임종인 이명박 여기에 더해서
    이효리강연이 있었다고 가정해보자.
    대학생들이 어딜갈까?
    이명박보다 이효리강연에 더 많이 갔을것이다
    글쓴사람은 또 절망감을 느낄것이 뻔할것이다

    절망감이라는것은 정말이지 어렵게 어렵게 생겨야지
    일년 365일 매일매일 겪을 싸구려절망감이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아무도 쳐다보지않을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것이다 아~지겹다 또 절망운운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