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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해에서 정용품, 농민의 죽음이 말하는 뜻
[김영호 칼럼] 미국의 생존전략에 희생양이 되는 한국의 350만 농민들
 
김영호   기사입력  2005/11/23 [16:44]

  가을걷이를 하지만 그 심정은 참담하기만 하다. 개방농정의 파고에 휩쓸려 농촌이 황폐화된지 오래다. 봄이 와도 심을 게 없다. 싸구려 수입 농산물에 밀려 어느 것도 타산을 맞출 수 없으니 말이다. 절임배추를 수입하는가 싶더니 중국김치가 식탁을 싹쓸이했다. 추곡수매제가 없어지더니 수입쌀도 곧 시판된단다. 그나마 쌀 농사에 매달려 왔는데 그것도 올해로 끝장인 모양이다. 곤두박질치는 쌀값이 끝을 모른다. 

 쌀협상 국회비준을 막으려고 농민들이 나락투쟁에 나섰다. 지역별로 관서 앞에 볏 가마를 쌓아놓고 시장개방에 맞서 목청을 돋군다. 곳곳에서 농촌지도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인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농민단체들이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농민출신인 강기갑 국회의원이 의사당 돌 바닥에서 곡기를 끊고 있다. 그의 쇠잔한 모습이 죽음과 대화하는 이 나라의 농촌현실을 닮아 가는 듯하다. 하지만 메아리 없는 그들의 외침은 처량하기 만하다.

 정용품이란 젊은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날라 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그것도 바로 농업인의 날인 11월 11일에 말이다. 그는 사연도 많으련만 그저 소박한 생각을 달력 뒷장에 남기고 세상을 하직했다. “농촌이 정말 어렵다. 정말 농촌문제 현실성 있게 잘 세워야 농촌이 산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정말’이란 말을 자주 쓴 것을 보니 정말 그 가 애타게 말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처절하게 와 닿는다.

 그는 ”나라에 충성, 대중을 위해, 농촌을 위해 이 한 목숨이 농촌에 큰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라며 유서를 끝맺었다. 그는 젊음을 다해 농촌을 살리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모양이다. 이장을 맡아 일했던 것이 그렇고, 볼혹의 나이를 그리 멀리 남기지도 않았는데 만학도로서 면학에도 열심이었던 것이 그렇다. 대학에 다니며 총학생회장까지 맡아 활동했다니 말이다.

 2년 전에는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멀리 멕시코 칸쿤에서 세계화에 항거하여 자결했다. 그래도 이 나라 농정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젊은 농군이 또 유명을 달리했다. 그들이 왜 죽음으로 말하려고 하는가? 위정자들이 핍박한 농촌현실에 눈도 귀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인사들이 정책책임자로 앉아 서 말이다. 식량자급률 25.3%가 농촌붕괴의 신호를 알린다. 세계화 바람이 불어도 프랑스, 영국, 독일은 농업국가로서 건재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세계화는 미국의 생존전략이다. 미국의 상품-용역-자본-노동이 가는 길에 어떤 장애물도 군사력으로 제거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그 세계화 바람에 이 나라 350만 농민을 무참하게 짓밟고 있다. 먹고살려는 가족농이니 교역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이 대로 가면 머지않아 농촌해체가 눈앞에 다가온다. 식량안보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민족생존을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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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1/23 [16: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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