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의 초록세상 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명박 시장의 건설정치와 생태파시즘
[비나리의 초록공명] 청계천 개발방식은 더 강화된 박정희식 압축개발
 
우석훈   기사입력  2005/10/06 [00:26]
우리나라 정치는 오랫동안 프랑스라는 나라와 상관없이 움직이다가 몇 년 전부터 프랑스의 정치 경험과 제도를 깊이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정치 전통을 맨 처음 받아들인 사람은 약간 역설적이지만 이명박 서울시장이다.
 
이명박의 시라크 따라 하기

 
지금 프랑스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는 ‘시앙스 포(Sciences Po)’로 알려진 국립 파리고등정치학교를 다닐 때 드골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우파 학생회장 출신이다. 미셀 로카르와 같은 사회당의 정치인들도 대개는 같은 학교를 졸업했는데, 이들은 좌파 학생회장 출신이었다. 시라크는 평생의 정적인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여러 번 패배를 경험했지만, 14년 간의 미테랑 시절을 마감하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 역시 연임에 성공하여 14년의 시라크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시라크가 정치적으로 재기한 데에는 파리시장 경력이 결정적이다. 이원집정부제의 실세 총리 자리를 후진에게 넘겨주고 파리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시라크는 두 가지 사업에 주력한다. 18세기 때부터 오염으로 유명했던 센 강을 살리는 일과 바스티유 오페라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1년에 한 번씩 센 강에서 수영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바스티유 오페라단의 경우는 당시 유명했던 사람들이 우파인 시라크 시장에 대한 협조를 거부하기도 했고 또 몇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지휘자 정명훈이 이 오페라 단장을 맡게 되었지만 상당한 성취를 보여준 것으로 알고 있다.
 
정상적인 우파가 한 도시를 맡았을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자크 시라크의 파리였던 셈이다. 그 당시 프랑스의 도시계획을 공부했던 연구자를 데려다 뉴타운 사업단장에 앉히고 서울시 대변인까지 맡기는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로 깊이 이명박 시장이 시라크 대통령을 자신의 역할모델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정치적 보수와 건설행정에서 드러나는 서울과 파리의 간극
 
그렇지만 약간 좀 차이가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처럼 돌풍처럼 빠른 기세로 건물을 짓는 경험을 프랑스도 겪기는 했다. 석유파동으로 경제가 휘청거리던 1970년대 후반 소위 ‘오일 달러’가 센 강 서쪽의 가장 부유한 동네 16구를 중심으로 토지를 집중 매입했고, 이 때 센 강을 내려다보는 30층 이상의 아파트 몇 채가 아랍 자본에 의해 올라갔다. 이를 파리 사람들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억한다. 7층 이상의 건물은 짓지 않던 문화도시의 자존심이 짓밟힌 것이다. 그 이후 파리에서는 고층 건물을 올린다는 것에 대해 문화적인 혐오감이 강하게 생겨났다.
 
시라크 전 파리시장은 극우파는 아니다. 건설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거나 도시 문제를 전면적으로 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다. 프랑스와 우리나라 사이에는 몇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프랑스의 정치적 보수는 극우파가 아니라는 점이다. 드골주의자들은 자신이 극우파로 분류되는 것을 정치적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우파가 약간의 보수주의와 극우파가 혼합된 상태다. 서울시의회는 한나라당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바른시정정책연합이란 야당연정구조를 이루고 있다. 우파가 아직 분화하지 못한 탓에 서구식 ‘보수’와 우리식 ‘극우’가 묘하게 모든 것을 장악하고 결정하는 곳이 서울이다.
 
생태 파시즘이 꽃피운 청계천 복원 사업
 
그 결과가 이명박 식의 ‘건설 정치’와, 싹을 틔우고 있는 ‘생태 파시즘’이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20% 가량이 건설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는데, 이 정도 수치를 기록하는 나라는 베트남과 요르단 정도이다. 서울 은평 뉴타운의 사업비가 최초 5조원으로 예상됐는데, 보상비가 많이 올라 어떻게 계산해봐도 10조원은 쉽게 넘어갈 듯하다. 국민적 관심사라고 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4조원짜리임을 알고 보면 이 시장이 건설 분야에 관련된 사람들의 마음만 산다고 해도 사실 대통령이 안 되기도 어렵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동북아에 거의 유일한 생태 파시즘 사례로 보아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멀어진 말초적인 생태주의가 어떻게 파시즘으로 변질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청계천 물은 수질관리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지하철역사의 지하수 과다사용으로 전혀 상관없는 지역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정밀 지하수맥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으므로, 현재로서는 누구도 위험하다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육아와 복지를 비롯한 비건설 부문이 상대적으로 희생을 하게 되어 있고, 청계천의 생태 파시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이제는 건설산업에 대한 적절한 연착륙 유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또 눈에 보이는 생태가 아니라 생태계와의 공존이라는 유럽식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서울은 ‘동양 최대의 인공폭포’의 전설을 승계하면서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을 더 강화시키고 있다.
 
시라크의 파리는 7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문화도시의 전통을 지켜나갔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시 밖으로 내모는 거대한 건설 사업을 벌이지도 않았다. 미세먼지를 비롯한 공기오염, 안전하지 않은 시멘트를 다량 사용해서 나타나는 ‘케미컬 스트레스’, 고층건물의 난립에 의한 지하수층 붕괴 위험, 그 자체로 환경호르몬인 청계천의 생활하수 유입 등 이명박 시장 이후의 서울은 그 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도시가 될 것이고, 생태적으로도 훨씬 건강하지 않은 도시가 될 것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과 아이들의 건강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이명박 시장의 파시즘에서는 무시된다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과소 대표된 것들의 신음 위에서 과잉 대표된 건설시장의 독버섯이 싹트고 있다.
 
* 본문은 월간 <참여사회> 10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5/10/06 [00:2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파버 2005/10/10 [01:42] 수정 | 삭제
  • 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가본 청계천은 공원하천이였다. 2년만에 만든 날림식 인공하천이 어떨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하겠지만. 청계천주변에 치솟은 땅값과 주변지역에대한 제대로 된 영향조사는 한건지... 결국 버스중앙차선제는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청계천이 그것을 피해갈수 있을까..?
  • 멍박 2005/10/06 [16:45] 수정 | 삭제
  • 진짜 위험한 인간들은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신념을 너무나도
    부지런하게 실행에 옮기는 이명박 같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