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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을 왜 국가에 보여주나?
[비나리의 초록공명] ‘독서이력철’같은 파시즘 발상말고 도서관 확충해야
 
우석훈   기사입력  2005/09/14 [19:57]
책을 읽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야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고, 우리나라 사람이 책 안 본다는 데 대해서는 더 얘기할 필요는 없다.
 
중학생들의 경우는 연평균 독서량이 10권이 되지 않고, 고등학생은 7권이 되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에는 1년에 19.4권의 책을 읽는다. 1년을 50주로 잡아서 계산하면 대충 2주 반에 한 권의 책일 읽다가 중학교가 되면 한 달하고 1주일이 지나면 새로운 책을 한 권 읽고, 고등학생이 되면 두 달이 가까와지면 책을 한 권 읽는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 평균치의 오류가 있다. 책이 다 같은 책이 아니고 책을 많이 읽는 학생들의 경우로 다시 생각을 해보면 지금도 하루에 한 권씩 읽는 학생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좀 지난 일이지만, 김용옥 교수의 어느 책에서인가 우리나라 직업별 독서빈도 조사에서 교수집단이 가장 적은 1년에 두 권의 책을 읽는다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직업과 관련된 전문 책을 빼고 한 조사라서 이런 결과가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1. 도서관이 문제라고 하지만, 국회도서관을 놓고 계산해보니까 연간 도서구입비가 10억 정도 된다는 2년 전 자료가 있다. 서울대 도서관은 그럼 책을 열심히 사는가? 교육부총리로 최단 재직 기록을 세운 이기준 총장이 서울대 총장이던 시절에 e-도서관 만든다고 그 이후로는 외국 저널은 거의 구매를 하지 않는다. 순위 계산한 자료를 일전에 찾아봤는데, 미국 100대 대학의 조그만 도서관보다도 공간크기를 제외한 모든 수치가 떨어진다. 좋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하면 우리나라 대학중 좋은 대학은 한 개도 없다.
 
2. 최근에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닌데, 저소득층의 아이들이 독서기회로부터 괴리되어 생겨나는 사회적 문제가 구조화되는 것을 풀기 위해서 영국에서 Book start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일본에서는 한바탕 유행이 되었었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몇 개의 지자체에서 이걸 시행하기 위한 시범사업 정도가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하여간 책을 안 보는 것은 전세계적인 문제이기는 하다.
 
3. 그래서 아이들이 책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고 그와 관련된 여러가지 지원을 하는 것은 길게 보면 여러 가지로 장점이 있고, 필요한 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인 수준으로 지지 한다.
 
4. 그렇지만 입시와 관련된 독서이력철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라고 생각해보면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모든 독서는 다 좋은 것인가? 그리고 개인의 독서 이력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개인의 기본적 자유와 인권 때문에 그렇다. 만약 읽어야 할 1,000권 정도의 목록을 국가가 제시하고 그 중에 백 권 정도를 선택해서 읽도록 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도 내가 반대할 것인가? 반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꼭 보아야 하는 책'과 '읽은 모든 책'은 전혀 효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5. '네가 읽은 모든 책을 내게 보여줘'라는 얘기는 현실적으로도 학생들에게는 신의 입장에 있는 대학의 입시 담당자에게 사상적 아버지의 역할까지 같이 부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책을 읽으면 좋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무슨 책을 어떻게 읽은 것인가라는 다른 문제와 책이 가지고 있는 혼자서 무엇인가 생각하고 길을 찾아간다는 또 다른 문제 속에서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를 위해서 책을 본다는 구조 속에서는 개인의 다양성과 자유가 너무 많이 희생하게 되고, 단기적으로는 독서량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이 속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다양성과 사상적 자유에 대한 희생이다.
 
6. 하긴 개인이 쓰는 일기도 입시에 반영하겠다고 가끔 생각하는 사람들이 독서목록을 작성하고 제출하라는 생각이 전혀 이상하지는 않다. 충분히 할만한 사람들이기도 하겠다. 게다가 독서계획을 작성하고 독후감을 적으라고 하는 얘기는 중고등학교 때 그래도 아직 책을 읽는 학생들이 어떠한 동기로 계속해서 책을 읽고 또 새 책을 찾아가는지에 대한 방식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발상이다.
 
10대의 생각의 자유가 마치 1년 단위로 사업계획서를 내고 예산계획서를 작성하고, 승진평가와 상호평가 등 다양한 평가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직장생활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가? 13살이 되면서 18세까지 갖는 수많은 지적 호기심과 실험들을 '계획서'와 평가, 그것도 궁극의 평가인 입시에 직접 반영하겠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독서는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정책을 만드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가지게 만든다.
 
7. 도서관부터 만들어주고 책을 읽으라고 하는 편이 낫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에 대한 총체적 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냥 입시에 반영한다고만 하면 독서도 과외형태가 되는 데다가 독서이력철이야말로 누군가 대신 만들어주거나 인터넷에서 한 시간만 투입하면 지식검색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일이다. 평가될 수 없는 것을 평가하겠다는 발상이 우습지만, 그렇게라도 문제를 풀자는 현실이 사실은 더욱 답답하기는 하다.
 
8. 독서는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을 각각 만들어내는 장치이다. 궁극의 이데올로기 재생산구조인 셈이다. 입시로 문제를 풀겠다는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면 도서관을 비롯해 수업방식 자체를 독서 위주로 개선하고 스스로 무엇인가 찾아가고 정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편하는 편이 길게 보면 더 도움이 된다. 틈만 나면 그야말로 한국적인 '공장 파시즘'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이 나라에서 독서는 그야말로 개인으로 보면 정말 마지막 남은 사적 영역이다.
 
'로마의 것은 로마인에게, 가이사인의 것은 가이사인에게'라는 말처럼 사적영역에 있는 것은 사적영역에 있을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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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14 [19: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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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 2005/09/16 [08:18] 수정 | 삭제
  • 김용옥 왈,,
    좀 지난 일이지만, 김용옥 교수의 어느 책에서인가 우리나라 직업별 독서빈도 조사에서 교수집단이 가장 적은 1년에 두 권의 책을 읽는다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 직업과 관련된 전문 책을 빼고 한 조사라서 이런 결과가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파시스트... 2005/09/15 [11:22] 수정 | 삭제
  • 뭔가 빅브라더가 생각나는 군요...
    조지 오웰의 1984에 보면 자세히 나오지요..그는 파시즘의 가능성을 굉장히 우려하였지요...(영사는 아무리 봐도 국가사회주의지요... 물론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기도 합니다만(동물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