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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은 '보도용 사진' 들러리용인가?
[바라의 장애없는 세상]동아일보 사진전 유감, 장애인 눈으로 사진찍어야
 
이훈희   기사입력  2005/09/11 [06:01]
가라. 착한 장애인 사진. 오라. 장애인이 찍은 사진
 
지난 9월 5일 한국 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는 푸르메 재단이 주최한 장애인 사진 전시회 '세상을 만나는 또다른 시선'이 열렸다. 경민대 사진학과 교수와 학생 20여 명이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 국립재활원 홀트복지재단 등 30여 개 장애인 단체와 기관을 찾아다니며 6개월에 걸쳐 촬영한 작품에서 엄선된 것이다.

공동주최한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장애인들의 밝고 진솔한 모습을 통해 너무 가진 것이 많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사진전의 의미를 밝혔다.
 
▲ 세상을 만나는 또다른 시선 - 푸르메 장애인 사진전 포스터   

많이 가진 비장애인들의 사진전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장애인은 밝고 진솔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면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은 뭘 너무 많이 가졌다는 말인가. 이른바 '착한 장애인론'을 펼친 김학준 사장은 나쁜 장애인에게서는 배울 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동아일보는 법정 장애인 의무고용 2%(동아일보 2003년 0.57%)를 준수하지 않으며 또한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투쟁하는 나쁜 장애인이길 자처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 동아일보에서 어쩌다 쓴 기사를 읽어봐도 장애인들이 소동을 피우다가 연행되었다는 상황 설명 정도. 따지고 보면, "많이 가진 우리들"이란 개막식에 참석한 영부인 권양숙 씨를 비롯한 사회 권력층과 부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사회권력층의 토대, 시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그려진 장애인 사진은 대상화되고 연출된 행복이 될 수 있다. 사진의 핵심인 '양심'과 사진을 통해 이야기나누고 싶은 '진실'은 먹구름에 가려지는 그것.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건 장애인은 사진을 찍는 주체가 아닌 언제나 '보기좋은 그림'으로 전락한다는 사실.

실제로 많은 사진 작가들 및 사진을 즐기는 아마추어 사진사들은 장애인을 찍고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반면, 현실 속 장애인의 적나라한 모습에 대해선 '불쌍하다'면서 눈을 돌리기 일쑤다. 대부분은 행복으로 연출된 착한 장애인만이 지향점이라고 믿는 것이다.

장애인 당사자만이 사진을 가장 잘 찍을 수 있어

착하든, 나쁘든 장애인의 현실 혹은 장애인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사진을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당사자는 장애인 뿐이다. 비장애인이 찍어주는 사진은 조작되고, 연출되며, 심지어 기만당할 수도 있다. 같은 하늘이라도 꼼짝 못하고 휠체어 앉아 바라본 도시의 하늘과 거미줄처럼 쳐진 전기줄을 피해 앵글을 잡은 하늘은 너무나 다르게 표현된다.

전자는 흔들리고 보기 싫은 전깃줄이 가득 찬 파란 하늘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가 본 하늘이 진짜 하늘이다. 당사자의 눈에 들어 온 하늘, 자신이 직접 찍은 하늘만이 유일하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 즉, 사진은 무엇보다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야 한다. 사진 찍는 게 즐거우면 그게 전부다. 물론, 어떤 사진기든 상관없다.

▲ 뇌성마비 장애인이 디카로 찍은 시장 하늘     

어떤 장애인은 벌써 걱정부터 하고 있을 지 모른다. '나는 팔이 경직되고 손이 떨리는데 ... 나는 키가 너무 작아서 ... 나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데 ... 나는 앞을 보지 못하는데 ..." 이런 걱정은 똘똘 묶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길 권유한다. 사진은 눈으로 찍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찍기 때문이며, 시각 장애인일지라도 직감으로 찍으면 된다.

아래 사진은 <황혼의 철길>이란 제목을 갖고 있는데, 사진 작가인 헨리 버틀리가 찍은 것으로서 조너선 페라라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시각 장애인으로 태어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거기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물을 보는지, 본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하다. 시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사물을 그저 보이는 대로 볼 뿐이다." 그는 직감으로 사진을 찍는다.

▲ 황혼의 철길     

이번에는 난생 처음 디지탈 카메라를 사용해본 중증 휠체어 장애인의 사진을 감상해보자.

▲  해질녁에     

요즘 복지관이나 장애인 단체를 중심으로 장애인들간 사진 동호회가 많이 결성되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날씨 좋은 날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야외로 출사를 하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에게서 기백만원씩 하는 좋은 카메라를 본 적은 없다. 왠만하면 디지탈 카메라 정도.

꽃에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거나 나무, 빌딩, 하늘이 조화된 모양을 찍기도 한다. 얼마나 멋진가.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사진을 찍는다는 건. 또 인터넷 신문 대자보의 기자인 김오달 씨는 장애인이 투쟁하는 현장을 뛰어다니며 직접 사진을 찍고 기사를 써서 대중에게 알린다. 그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  사진을 찍고 있는 김오달씨     

언젠가 장애인 당사자 사진 전시회가 열릴 것을 기대해본다. 이 전시회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는 '귀빈'은 '밝고 진솔한 장애인' 따위는 운운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장애인의 마음에 담긴 세상과 그 세상을 반영한 사진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장애 해방 세상이란 걸 힘주어 말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사진기가 있다면, 지금부터 찍어야 한다. 장애인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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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11 [06: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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