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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웹진 <일다>에 지지와 연대를 표하며
[비나리의 초록공명] 여성주의의 대척점은 노조와 진보정당이 아닐까?
 
우석훈   기사입력  2005/09/02 [19:38]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사이트가 하나 있다. 골 아프다고 생각하면 아주 골 아픈 곳이기도 하다. 이 사이트에 대해서 지지한다고 얘기하면 또 잠깐 싫어할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1년이나 된 일인가?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배경이 좀 있다.
 
여성단체도 많고 또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사이트들도 많다. 얼마나 골때리는 인간들이 많냐면, 여성단체의 사이트에서는 그 흔한 자유게시판 하나 열어놓은 곳이 없고, 간단한 글 하나도 회원 가입 정식으로 하지 않으면 쓰지 못하도록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골때리는 인간들이 그냥 냅두지를 않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냥 내버려두지를 않기 때문에 게시판은 물론이고 자유롭게 뭘 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여성주의 웹진 <일다> 홈페이지     © 일다 홈페이지

여성주의 내에서도 분파도 많고 입장도 다를뿐더러 강조점도 많이 다르다. eco-feminism이라는 말을 처음 본 건 15년 정도 되었는데, 그 때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 gender economics에 관한 논문들을 읽었는데 역시 잘 모르겠다 올시다였다.
 
사실 난 feminism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그 안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도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론으로서도... 별로 쉬운 이론들은 아니다. 그러니까 대체적으로 좋은 일들 하시는가보다 하고 잘 모르고 지내는게 솔직한 정황이라고 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다는 이렇게 복잡한 여성주의 내에서도 매우 특색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이곳을 세상에 알린 건 여성부가 생겨난 이후로 여성단체에서 열린우리당에 많이 진출했는데, 이 때 겨우 이거 할려고 여성운동 한 거냐고 일갈을 하고 나선 데가 바로 일다라는 곳이다. Young feminist라는 이름을 달려고 있었는데,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 패기 하나만큼은 인상적이었다.
 
약간은 지나치게 공격적이지 않나하는 느낌을 조금 받았지만, 나도 한참 들이대고 싸울 때에는 그야말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서슬이 시퍼랬다고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처럼 이것도 응, 저것도 응, 하는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방방거리던 시절이 있었는지 나도 참 이상할 정도라고 생각하니 young feminist들이라면 더 무섭게 몰아붙여도 별로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일반적인 여성운동 보다는 다양성에 더 많이 가 있고, 또 원칙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근원주의도 아닌, 하여간 그런 사람들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가졌을 정도다.
 
약간 과격한 그런 입장은 노동운동이나 혹은 기타 환경운동 같은 곳이라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보이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여성운동이 너무 얌전해서 그 약간의 과격이 그렇게까지 강렬한 입장 차이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그야말로 코끼리 다리 만지는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이다.
 
여성주의에 대해서 조금 더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여름의 일이다. 작년 여름부터 나는 평화라는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여러 가지 평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론화를 해보고 싶었고, 또 그런 접근이 뭐가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이 때 아마티아 센의 이혼한 전 부인이 평화경제와 함께 gender economics에 대해서 나름대로 이론화를 시도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더 고민해보면서 gender economics 속에 중요한 평화의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라는 걸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20세기 내내 전쟁과 도로건설 같은 것으로 세상은 행복해지지 않고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한 경제학자들은 공교롭게도 대개가 여성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젊은 여성들이 끌어가던 일다가 올해 3월 달에 경영이 어려워서 문을 닫을 뻔했다고 한다. 말이 좋아 활동가이지 그야말로 도시빈민 여성들이 기껏해야 몇 십만원 받으면서 운영되는 이 곳에 돈이 나올 길이 있어 보이지 않고, 별다른 후원자도 없었을텐데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하기는 용하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닫지 않고 그야말로 근근히 버텨나가고 있는 중인가 보다.
 
일다와 대척점에 있는 곳이 어디일까? 그들이 보수화되었다고 비판하는 기성 여성단체라기 보다는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혹은 지방에서 운동한다고 하는 그 마초 운동권과 대척점에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초들이 지배하는 운동권 내의 술 때려마시는 깝깝한 논쟁구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해지는데다가 이제 자기도 지방 유지라고 농담삼아 떠드는 지방의 오래된 마초 운동권들, 그런 곳과 일다는 딱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건으로 얘기하면, 몇 년 된 일인데, 울산의 노조간부들이 술 마시다가 아가씨 나오는 그런 데 갔나보다. 그런데 노조간부 부인이 접대부로 나와서 완전히 골 아픈 상황이 연출된 적이 있다고 들었다. 과외비가 모자라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진짜 모순이 뭔지 딱 보여주는 상황으로 나의 뇌리에 박혀 있다.
 
그런 모순들이 딱 대척점에 일다가 서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빈민, 젊은 여성, 얘기할 곳도 없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한 이론 따위는 존재하는, 서울과 같은, 혹은 서울에만 존재하는 그런 대도시의 음습한 어느 한 곳.
 
그 곳에서 명랑하게 지내려고 하는 도발적인 모습이 어쩌면 일다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했던 문제의 해법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곳이 가난하거나 혹은 이 삭막한 도시에서 갈 길이 막힌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주기를 바라고, 또 그런 노력들이 전체적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에는 상근기자 두 명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유명해진 편집국장과 차마 일다가 문을 닫는 것을 보기가 안타까왔던 윤정은씨 두 명이 이곳에서 지금 버티고 있다.
 
윤정은씨는 딱 한 번 봤다. 이라크에서 돌아왔다고 하는 날 예전 제부동 시절에 초록정치연대 사무실에서 자고 막 일어난 부시시한 모습의 윤정은씨를 본 적이 있다. 공항에 기자들이 너무 많아서 그곳으로 도망왔다고 했다.
 
윤정은씨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내가 알기로는 TV를 보다가 이라크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라크 사람들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아파져서 그 길로 이라크로 떠난 걸로 알고 있고, 그녀가 그곳에서 근근히 보내던 글을 받기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 이라크 평화네트워크라는 단체이다. 결심한 개인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혼자 상상할 때 가끔 사막으로 혼자 - 돈도 넉넉하지 않은 그야말로 도시 빈민에 불과한 그녀가 - 떠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와 또 말이 좋아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이지 전쟁 한 가운데의 사막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편집국장을 맞고 있는, 이제는 유명해진 조이여울 편집국장은 토론회에서 딱 두 번 봤는데, 약간 노란 색조의 안경을 낀, 기존의 여성단체가 정치성도 계급성도 없는 파렴치한 정치적 거래를 했다고 몰아붙이는 그 서슬시퍼런 모습을 연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해 보였다. 물론 나는 내 눈으로 보는 사람에 대한 인상을 절대 믿지는 않는다. 난 한 번도 사람을 눈으로 보고 제대로 파악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이 도시빈민 여성들이 당차고 박박 마초들의 세상에서 버티면서 명랑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잘 되면, 하여간 여러 사람 좋을 것 같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본다.
 
지금으로서는 뭘 해야 이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조회수가 늘고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뭘 하는지라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방문을 부탁드린다.
여성주의 웹진 <일다> www.ildaro.com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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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9/02 [19: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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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하하 2005/11/10 [19:18] 수정 | 삭제
  • 난 여성주의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마쵸들이라고 본다.
    또 그렇게 탄생한 여성주의는 또다른 마쵸들을 생산한다.
    마쵸와 여성주의는 서로의 세력을 확장해나가는 보완경쟁갈등관계이다.
    특히 한국적 여성주의는더더구나....
    여성주의 안에서는 진보 보수가 없다. 여성이라는 코드로 하나가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들은 묘하게도 기독교, 이화여대, 친일파, 미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성주의...그건 여성주의가 아니라 특정여성들만의 주의일 뿐이다.
    소수로서 존중하나 결코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소수일뿐이다.
  • 신선 2005/10/04 [17:15] 수정 | 삭제
  • 빠리에 잠시 왔다가 그이름 있는 '일다'를 보고 (누가 자꾸 보라기에) 맘이 죄책감이 "일다'' 임다 기국하여 좀 신고하겠슴더!
  • 풋~ 2005/09/03 [23:08] 수정 | 삭제
  • 어떻게 댓글을 혼자놀이하듯 다실까..ㅋㅋ
  • 삐빠빠룰라 2005/09/03 [01:59] 수정 | 삭제
  • 일다의 내용을 보니 아주 단단하네요. 그런데 너무 여성 내부, 영 페미들의 이너서클화 되 잇는 것은 아닌지요? 그런 엄격함이 정체성 유지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대중적인 확산은 더디잖아요. 차라리 도발적인 IF가 훨 나아 보여요. 아무래도쥬니어 페미와 시니어 페미 간의 차이가 아닐런지..
  • 룰루랄라 2005/09/02 [22:27] 수정 | 삭제
  • 소수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