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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평양공연과 치유사로서의 DJ!
 
역사의눈   기사입력  2005/08/26 [12:32]
무려 반백년의 분단냉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이라는 부끄러움을 가진 한반도, 세계 구석 구석 안가는데 없고 못가는데 없는 세상에 한 가족과 같은 남북이 오가지 못하고 냉전만 하고 있는 그 참담함을 DJ는 깊게 통찰했을 것이다.그리고 그 통찰의 결과로서 햇볕정책이 나왔다. 정적의 무분멸한 정치적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강력하게 햇볕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육로가 열리고 철도가 열릴 것이고, 해로가 열리고 하늘길도 열리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제품이 생산되고 금강산 관광이 100만명을 돌파하고, 이제 백두산과 개성도 관광할 수 있게 되었다. 젊은 학생들이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하나의 민족임을 절실히 체험하고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어제 감동적인 조용필 공연...
 
조용필의 혼을 담은 열창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것이였지만 그 공연이 평양에서 평양시민들 앞에서, 민족분단 반백년만에 이뤄지는 공연이였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햇볕정책은 50여년동안 얼어있던 민족의 혈관에 따뜻한 피가 흐르게 만들었고 지금도 흐르고 있다. 따뜻한 혈액이 흐르고 또 흐르면 어느새 얼어붙은 피는 녹아내릴 것이고, 그 혈관을 통해 따듯한 혈액을 공급받은 우리 한민족의 가슴 가슴은 따뜻하게 녹아내릴 것이다.
 
마음이 통하면 몸은 저절도 하나가 되게 되어있다. 만나고 또 만나면, 교류하고 또 교류하면 드디어는 한몸이 될 것이다. 한몸이 되고 나서는 정겨운 이야기 꽃을 피우고 따뜻한 사랑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는 드디어는 그 뜨거운 사랑의 열매로 통일 한국으로서의 선진강국, 문화강국이라는 옥동자를 탄생 시킬 것이다.
 
조용필이 한오백년은 부를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의 삶의 한과 남북민족의 분단의 한을 풀어내는 듯한 노래였기에...그리고 그 노래에 같은 심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듯한 표정의 평양시민을 보았기에..
 
DJ!

그는 참 큰 길을 내걸었고 열어 젖혔다.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민족 분단을 어떻게 해서든지 치유하려는 그의 결단은 깊은 통찰에서 나왔던 것이다. 분단으로 인해 상처받고 병든 민족의 암을 치유하려고, 분단 약소국으로서의 한을 치유하려고, 선량한 민족의 각 객인의 가슴에 자리잡은 한을 치유하려고 강력한 수술칼을 들었던 것이다.
 
어제 조용필이 한오백년을 부를때, 그의 노래를 듣는 평양 시민들의 눈을 유심히 보았다. 체제에서 오는 경직성의 표정과 함께 쩔어살아온 한과 이제 그 한에서 벗어나고픈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한풀이를 조용필의 노래로 하는 듯 했다. 난 그보다 감동적인 공연 보지 못했다. 이제 더 뜨거운 피가 더욱 더 흐를 것이다. 그리고 통일도 될 것이다.
 
부처님의 제자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부처님 저는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도 열반에 들 수 있을까요?극락에 갈 수 있을까요?
 
부처님이 대답하셨다.
얘야...바다위에 배를 보거라.큰 배는 배안에 무거운 돌을 싣고도 바다위에 뜨지 않느냐. 네가 죄를 많이 지었어도 더 큰 선행을 하면 능히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이니라. 큰 배가 돌덩이를 싣고도 바다위에 거뜬히 떠가듯이...
 
DJ! 그의 햇볕정책과 그로인한 한많은 민족의 그 한을 풀어내는 그 큰 선행으로 그는 능히 바다위에 뜰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조용필씨 정말 수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교류를 가능케한 DJ에게 감사를 드린다.
 
* <네티즌에 고함> 마당은 누리꾼들의 자유로운 발언대입니다. 본문에 대한 누리꾼 여러분들의 토론과 참여를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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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8/26 [12: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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