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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쓰다버린 폐기물 가득, 한반도는 죽은땅?
DMZ서부 35년간 미군쓰레기 몸살,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심각
 
박신용철   기사입력  2005/08/25 [11:41]
"아무리 거름을 주고 비료를 뿌려도 곡물이 자라지 않는다."

최근 <시민의신문>은 기름 유출이나 화학약품에 오염되지 않고서는 발생하기 어려 일이 30년이상 일어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본지가 파주녹색환경모임과 함께 현장조사를 벌인  결과, 문제 지역에서 수많은 '삐루병(맥주병)' 조각, 탄피, 뇌관이 제거된 수류탄, 탱크 부품, 작은 약품병들이 여기저기에  촘촘히 박혀 있음을 확인했다. 이곳은 임야를 개간한 밭으로 한쪽에는 고추가 자라고 있었지만 반대편은 풀 한포기 나지 않아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 1970년경 닉슨독트린으로 미군이 철수했던 지역인 민간인통제구역 내에서 당시 미군이 매립했던 군용폐기물로 인한 환경오염이 계속되고 있다. 이 현장은 영농지이지만 곡물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죽은 땅이 되어 버렸다.     © 박신용철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우리 땅

과연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길래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죽어버린 땅이 된 것일까?

이 땅에 숨어있는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1969년 미국령 괌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한다. 리차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1969년 7월 25일 동남아시아 5개국 순방중에  소위 '괌 독트린'으로 불리는 중대한 발표를 하게 된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미 의존을 버리고 스스로 집단안보체제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미국은 아시아에서 철수하지 않고 계속 우방으로 남아 적절한 경제원조를 지속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개입 및 군사원조 계획은 점차 축소될 것이다."

1960년대 말 미국은 재정수지 및 국제수지에서 큰 폭의 적자, 높은 실업률, 베트남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내 반전여론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는데, 이는 1969년 출범한 닉슨 행정부에 해외 주둔 미군 감축 압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괌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감축이 진행되었다. 미국은 1970년 7월 5일 주한미군 6만4천명 중 2만명을 이듬해 6월까지 철수한다는 방침을 한국정부에 정식 통보했고 주한미군사령부는 10월 17일 감축인원 2만명 중 이미 1만2천명을 철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11월 2일 동두천의 캠프 비버(미 제7보병사단 기지)가 폐쇄됐으며 문산에 사령부를 두었던 미2사단은 7사단이 떠난 자리인 동두천으로 이동했다. 미군 철수와 후방배치로 공백이 발생한 비무장지대 서부전선 경계임무는 한국군 1사단으로 교체되어 1971년 3월 27일 휴전선에는 JSA 경계임무를 담당하는 유엔군경비대대만 남게 되었다.

▲ 문제의 땅은 육안으로 보듯 삐루병 조각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영농인과 토지주 등은 매년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때마다 많은 양의 미군 폐기물이 나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 박신용철

이제 시간여행을 마치고 임진강 건너로 민통선으로 돌아와 보자. 토지주, 영농인, 지역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문제의 땅이 1970년경까지 주둔했던 미군 쓰레기 매립장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임진강 일대는 한국전쟁 이전까지 조선시대 이래로 권문세가를 이루던 풍양 조씨, 온양 정씨, 원주 원씨 등의 집성촌이 밀집했던 지역이었지만 한국전쟁으로 피난을 나온 이후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으로 인해 방문조차 할 수 없었다. 한미양국은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명분으로 사유지를 무단 점유했고, 철수하면서 원상복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일대가 토지소유주에게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72년경이었다.

고향은 지금 ‘쓰레기더미’

미군의 쓰레기 매립장이라고 추정되는 곳도 온양 정씨 일가의 사유지였다. 토지주 정씨 등은 1972년경 민통선 지역을 방문해 한국전쟁으로 인해 상실된 사유지를 확인하고 회복등기를 냈다. 정씨 일가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에도 문제의 땅에서 다량의 쓰레기 매립 흔적은 확인됐다.

정 아무개씨는 "토지를 회복해 처음 개간을 하다보니 유리병 조각이 말도 못할 정도였다"며 "일반인이나 한국군이 일체 출입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미군들이 매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군) 어느 부대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1970년 이전에 쓰레기 매립 행위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문헌자료에 따르면 괌 독트린으로 주한미군 철수 이전에 임진강 일대 장단반도에는 주한 미7보병사단, 2보병사단, 1기갑사단 등이 주둔했고 미군 철수이후에는 한국군 1사단이 임무를 이양받았다. 정씨가 미군에 의한 불법 매립이 행해졌다고 확신하는 것은 한미간 임무이양이 이뤄지던 1970년경부터 1973년까지 이 일대에서 군복무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씨에게는 미군 쓰레기 매립장 인근이 "태를 묻은 고향"이라 애착이 강하다.

어릴때부터 이 지역에서 성장한 김관철 파주녹색환경모임 대표도 인디언 마크를 떠올리며 1970년까지 미2사단이 주둔했다가 철수했다고 증언했다. 

▲ \'레이놀드 L....\'이라고 명시된 명판이 보인다. 수류탄, 탄피, 녹슨 군용 부품들이 이땅에 매립되어 있어 미군이 떠난자리에 무엇이 남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 박신용철
 
조 아무개씨는 토지주와 계약을 맺고 이곳에서 경작을 한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조씨는 "해마다 밭을 갈았는데 작은 약품병, 맥주병조각, 무기종류 등 온갖 미군 쓰레기가 나왔다"며 "유리가 너무 많아 맨손으로 작물을 심지도 못했고 비료를 줘도 싹이 안나와 농사가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리도 많고 약품이 있어서 곡식이 올라오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땅주인과 쓰레기 불법 매립문제에 대해 논의해 봤는데 의뢰할 만한 곳도 없고 의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매년 농사를 짓기 위해 로터리를 칠 때만 쓰레기들이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임진강 유역은 호우량이 많은 지역인데 비가 내리게 되면 땅속에 묻혀 있던 각종 군용쓰레기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환경단체들은 미군철수 이후 등기를 회복할 당시부터 발견된 미군 쓰레기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볼때 지하에 매립된 양이 매우 많고 비료 등을 뿌려도 곡물의 싹조차 나지 않는 것은 식물에 유해한 물질이 있음을 말해준다고 주장한다.   

본지도 현장 취재과정에서 성조기, 유엔기, 태극기와 '레이놀드 L…'이란 이름이 새겨진 반파된 석재 명패를 수습해 환경범죄의 오염원이 미군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언론보도 등 자료에 따르면 1962년 이 지역에서 일명 '파주나무꾼 사건'이 발생했다. 파주군 임진면 운천2리 마을 주민들은 주변 산에 나무가 없어 부득이하게 땔감을 구하기 위해 임진강 건너 미군주둔지역까지 건너가 몰래 갈대를 베어다 나무대신 연로로 썼는데 1962년 1월 6일에도 땔감을 구하기 위해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 미군 제1기갑사단 8연대 D중대가 자리잡은 장단군 진동면 하포리(행정구역 변경 후 파주로 편입된 지역) 뒷산으로 갔다. 그런데 이 곳에서 마을주민 황광길씨와 유기용씨가 미군병사 3명에게 사살됐다.

▲ 고추가 자라는 곳과 미군 군용 쓰레기가 매립된 곳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박신용철

범죄도 이런 범죄가 없다

김관철 파주녹색환경모임 대표는 “주한미군이 머물다 간 자리는 항상 오염도 높고 회복불가능한 지역으로 변한다는 게 가슴 아프다”며 “미군은 이 땅에서 35년을 주둔하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환경범죄를 저질러놓고 도망간 것과 진배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 대표는 “이 지역에 대한 실태조사 뿐 아니라 당시 비무장지대 서부전선에 주둔했던 미군 주둔지 전체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여 미군의 환경범죄를 확인하고 정화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국방부측은 경기도 장단반도 일대에 1970년까지 주둔했던 미군부대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에 대해 “주둔부대와 관련한 세부사항은 자료 미보유로 공개가 제한된다"고 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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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시민의신문>(www.ngotimes.net) 박신용철 기자가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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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8/25 [11: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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