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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앵무새가 된 박근혜의 한계
조중동 한나라당의 몰락은 자연의 섭리, 열린우리당 개혁으로 명줄끊어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4/10/28 [11:31]
언듯 보기엔 수구세력들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반동성이 ‘탄핵심판’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해 ‘행정수도 위헌판결’에 이르러 그 정체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리고 언제든지 국회의 입법행위를 ‘위헌판결’로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게 보인다.
 
벌써부터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진상규명, 사립학교법, 언론법 등 4대 개혁입법 자체가 ‘위헌판결’의 위협에 떨고 있다. 열린우리당 일부가 최근에 보이는 ‘소심증’이 되려 헌재의 ‘반동성’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 역사적 반동성 노골화
 
열린우리당, 그들은 모른다. 이번 위헌판결로 권위와 공신력을 상징하던 헌재의 ‘판결문’은 바닥에 구르는 붕어빵 봉지 꼴이 돼버린 것을 그들은 모른다. 합리적인 법리 검토의 결과로서 위헌인가? 아니면, 헌법재판관 개인 의식수준의 반영에 따른 위헌인가? 이 물음 앞에 단언코 ‘개인의 의식수준 반영’ 즉 그들의 역사적 반동성의 반영으로서 위헌이라고 답하고, 법리적 논쟁을 불러 일으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열린우리당의 ‘모가지’는 움츠린 자라 꼴이다. 
 
분명한 사실은, 헌재의 이번 판결이 법리적 판결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적 지형에 따라 결론 먼저 내 놓고 법리적 틀을 짠 것, 즉 몸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몸을 맞추는 순서의 전복행위며, 민주주의라는 체제부정행위다. 왜?
 
재판관들 대부분이 군사독재시절부터 엘리트코스를 밟아 온 사람들이다. 쉽게 말해서 독재정권의 비이성적 비합리적 비민주적 폭압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당했고, 스스로 수단으로 나선 사람들이다. 또 독재체제에서도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거나, 좀 불편해도 참을성이 뛰어난지, 독재정권을 향해서 쓴 소리 한 번 하는 것도 힘들어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민주화된 지금 무임승차로 명예와 부를 누리고 있고, 그것도 모자라 한국 민주주의 퇴행 즉 반동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 사람들이 위헌판결에 경국대전을 인용함으로써 ‘경국대전’을 우습게 만들었고, 관습헌법을 적용함으로써 ‘관습’을 부정적인 개념으로 전락시켜 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다음 날 그들은 ‘가을철 체육대회’를 했다. 이 자들이 지금은 내심 오늘의 현상을 즐기는 듯 하다. 연일 지난 탄핵심판 때는 헌재를 비판하지 않더니 왜 지금와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니까 헌재를 비판하냐는 수구언론과 한나라당의 ‘합창’을 ‘음악감상’이라도 하는 듯 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너무나 공격적으로 이용하니까 열린우리당의 모가지가 자라 꼴이 되었는데, 한 번 생각해 보자. 탄핵심판 기각은 너무나 정당한 결정이니 헌재에 불만이 적었을 수밖에 없고, 행정수도이전 위헌판결은 너무나 부당한 결정이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 
 
더 뼈아픈 일은 지금 이들에게 또 다시 4대 개혁입법을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이다. 이 황당한 현실에 단절의 칼을 빼들 의무가 있는 열린우리당은 침묵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연일 ‘나팔’불고 수구언론들은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운운하며 대서특필에 신이 났다. 말도 되지 않는 선동적 언어에 춤추고 장구치는 이들의 난장판을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박근혜, 지적 천박함과 인식의 나태함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가 27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결연한 투쟁의 선봉’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수사를 동원하며, 4대 개혁입법을 ‘좌파적 노선’ 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부정’이라고 매도하며 나서는 꼴이 참으로 가당찮다. 왜 무슨 근거로 좌파적 노선이며 체제부정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그랬듯이 설명이 없다.
 
최소한 4대 개혁입법이 왜 좌파적 노선인지 설명한 후에 이를 빨간딱지를 붙이면 논박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겨우 한 두 가지 논거를 언급했는데, 국보법과 관련해서, ‘인공기’를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국보법이 존재하고 있는 지금도 서울시청에서 인공기가 올라가고 또 불태워지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인공기가 그렇게 무서우면 한나라당은 왜 인공기가 등장했는데도 끝까지 추적해서 ‘발본색원’하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가.
 
주체사상을 가르쳐도 제재할 수 없다는 주장도 그나마 논거라고 댔다. 왜 주체사상을 가르치면 체제부정인가. 주체사상을 배우고 가르치면 모두 다 빨갱이가 된다는 이 단순 무식한 생각은 도대체 어떤 뇌(腦) 구조에서 나오는 지 모를 일이다. 불경을 가르치고 읽으면 모두 불교신자가 되고, 성경을 가르치고 읽으면 모두 기독교인이 되는가. 국민윤리를 그렇게 가르치고 배웠는데 왜 우리나라는 요 모양 요 꼴인가.
 
최소한 박근혜는 이에 대해서 설명해야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배우면 체제부정’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도대체 최소한의 상식도 없는 그런 무~식한  발언을 한 국가의 야당대표가 주장하고 있으니 이 나라 정치지도자의 지적 천박함과 더불어 인식의 나태함에 차라리 절망하고 말이다.  
 
수구언론, 허구적 논리와 선동
 
그리고 박근혜의 주장을 면밀히 살펴보면, 대부분 수구언론의 사설이 만들어 낸 허구적 논리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수구언론의 사설이 없으면 문장하나 논리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할 수준으로 자기수련과 학습을 게을리 하는 한나라당과 그 당의 대표 수준이란....
 
그렇다면 수구언론의 논리에는 타당성과 구체적인 존재하는가. 과연 박근혜가 보고 배울정도로 최소한의 수준은 존재하는가.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언론과 정치의 미래가 캄캄하다. 수구언론의 사설 대부분은 구체적인 논거로서 개혁입법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딱지붙이기 등 ‘선언’으로서 반대해 왔다. 예를 들어 ‘친북, 반미, 좌파노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부정, 체제부정, 반자본주의’ 등과 같은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힘든 ‘추상명사’를 이용한 ‘선동’에만 집착했지 구체적인 설명을 통한 논리적 반박이 전개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학습능력의 부족과 논리적 박약함에 의해서 수구언론의 사설을 보고 베끼는 수준의 한나라당과 그 당 대표 박근혜의 주장, 그 나마 그 수구언론의 사설마저 논거 부재와 선동으로만 뒤범벅되어 있으니....
 
그들의 몰락, 동물세계의 섭리
 
그나마 스스로 자기 논리를 생산할 수 있는 집단 헌법재판소는 ‘경국대전’과 ‘관습헌법’으로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반미 친북 좌파노선 체제부정 등과 같은 50년 전 단어와 논리를 끊임없이 재탕 삼탕하며 근근히 버티는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은 스스로 모기 다리 만한 진보도 하지 못하는 지적 수준에 갇혀 있는 우물 안의 미꾸라지 현실, 이것이 그들의 실체적 진실이다. 이는 잠시 동안 한국사회의 위협일 순 있겠지만, 종국에 이들의 몰락은 필연이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과 논리 그리고 선전선동은 재생산능력의 부재와 맞닿아 있고, 재생산 능력은 적자생존(適者生存)과 궤를 같이 한다. 즉 적응하지 못하는 세력은 자연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자연의 섭리가 예외 없이 이들 수구세력에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의미다. 

수구세력의 몰락,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당기는 것은 개혁세력의 역량이지만, 개혁세력이라고 자칭하는 열린우리당의 움츠린 자라 모가지 꼴을 보면 수구세력의 조기 몰락에 대한 기대는 회의적이다. / 논설위원

* 본 기사는 인터넷신문 데일리서프라이즈 (http://www.dailyseop.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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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0/28 [11: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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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보 2004/10/29 [11:26] 수정 | 삭제
  • 대장들이 싸우고 있는데 중대장 소대장은 저 사람들이 왜 저러나,, 그만 합시다 라고 말리고 있다..허허,, 어이가 없어서,,
  • 돌코 2004/10/29 [01:27] 수정 | 삭제
  • 공주로서의 권태로운 삶에서.
    정치가로도 대표의 타이틀을 지녔스니 부왕의 웃음이 보이는 듯싶은 감흥에 빠져, 대변인이며 좃선의 앞잡이인 녀옥시녀의 충실한 보필에 활홀감에 도취된 매일을 만끽하며, 부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절대악인 무리들을 이 땅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가치와 만족이 충족된 이삶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녀에게 곧 손에 쥘 대권은 시간 문제일 터,달리 무엇을 궁리함이며,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공주로서의 당연한 과정을 밟는 고급스런 표정연기만 중요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