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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운동의 주춧돌, 국어운동대학생회
[한글 살리고 빛내기24] 신문이 한글운동 뜻벗, 이봉원 동지 만나게 해주다
 
리대로

내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국대학에 들어가니 농촌운동 동아리가 있어서 바로 그 모임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1학년 입학식이 끝난 뒤 학교 안에 있는 여러 동아리에서 회원을 모으려고 1학년 학생들 교실을 돌면서 그 모임 홍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대학에 농촌운동 모임이 있는 줄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농촌운동 모임 선배들이 우리 교실에 들어와 모임 자랑을 했다. 총학생회장도, 농대학생회장도 그 모임 회원이고 그 모임에 들어오면 보람 있다고 말하는데 내가 찾는 모임이기에 바로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을 했다. 예산농고에 다닐 때 의식이 들어서 대학에 왔기에 망설일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 안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학교 밖 농촌문제 모임인 농업근대화연구소에서 하는 농업문제 금요강좌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그 모임 총무는 예산농고 선배로서 서울대총학생회장을 지내고 다음에 국회의원도 한 이우재 선배와 고대 농대 황민영 형, 서울시립농대, 서울여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민문화연구소에서 하는 토요강좌에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이 모임은 성균관대학교 2대 총장을 지낸 이정규 박사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 사단법인으로서 상해에서 무정부주의운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한 이정규 박사와 이회영 선생 형제 자제 분들, 홍이섭 교수와 이강훈 광복회장 같은 애국지사들이 함께 하는 모임이었다. 서울사대와 법대, 이화여대 들 인문대 학생들과 함께 활동했다.

 

나는 이 두 모임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함께 활동을 하면서 조직생활과 애국운동을 배우고 익혔다. 그런데 학교 안팎에 한글운동 모임은 없어서 내가 모임을 처음 만들어야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 때에 학과 공부보다 도서관에 가서 여러 가지 책을 열심히 봤는데 주요한 선생이 쓴 안도산 전서를 읽어보고 학교에 흥사단 학생모임을 만들어 그 안에서 한글운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하고 있던 1967년 초에 서울대 학보 가십 란에 한글운동 횃불 점화식이라는 제목으로 서울대 심리학과 2학년 이봉원 군과 여러 학생이 한글운동 모임을 만들려고 움직인다.”라는 조그만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 당시에 도서관에서 책을 보기 전에 모든 일간 신문과 대학신문까지 살펴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이 조그만 새뜸(뉴스)이 내 눈에는 아주 크게 보이고 정신을 번쩍 나게 했다. 나는 그날 바로 서울대 이봉원군에게 나도 한글운동 모임을 만들려고 하는데 만나보고 싶다는 엽서를 보냈더니 만나자고 답장이 왔다. 전화가 없던 때라 엽서로 자주 연락을 했다. 그 두 해 전인 1965년에 김윤경 교수님과 편지를 주고받게 된 것도 신문을 보다가 연결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신문이 한글운동 뜻벗을 만나게 해주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는데 하늘이 도와준 것이고 세종대왕께서 이끈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그 전에 한결 김윤경 교수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는 외솔 최현배 교수와 편지를 주고받았고 나와 똑같은 생각에서 그 모임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 학생 때 서울대 이봉원 군과 소식을 주고받은 엽서. 오른쪽 엽서는 급해서 연필로 보내는 이는 이름은 쓰지 않고 ‘서울대’라고만 쓰고 받는 이는 동국대 ‘이택로’라 쓰고 ‘급’이라 썼다. 여기 ‘이택로’는 내가 ‘이대로’라고 한글이름으로 바꾸기 전 아버지가 지어준 한자이름이다.     © 리대로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우리가 만난 것은 운명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뜻이 잘 통했다. 나는 그 뜻벗을 만나고 힘을 내어 우리 학교에서 한글운동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벗으로부터 받은 자료와 내가 쓴 우리학교 국어운동학생회 창립 취지문을 만나는 사람마다 내 보이며 함께 한글운동을 하자고 설득했다. 마치 길거리에서 종교 선전하든이 학교 벤치에 앉아있는 학우들을 만나 모임을 설명했다. 그러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뜻은 좋으나 함께 할 생각은 없다거나 오히려 한글전용을 반대한다고 했다. 참으로 새 모임을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학과 동기들과 농촌운동 뜻벗들은 내 뜻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다. 그렇게 간신히 모임을 만들고 국문과 김성배 교수님을 지도 교수로 모시고 학생과에 모음 등록을 했으나 다른 동아리는 지도교수가 한 분인데 우리 모임은 두 분을 모시라며 허가해주지 않았다. 불교 종단 학교라 한문을 좋아하는 분위기에다가 스스로 이완용 손자라고 말하는 국문과 모 교수가 한글전용을 반대하니 그랬다. 그러나 갈 길은 멀기에 활동은 계속했다. 그런데 한참 뒤 불교철학과 한상련 교수님이 학교 신문에 한글전용으로 글을 쓰신 것을 보고 교수실로 찾아가 그런 사정 이야기를 하니 우리학교는 만해 한용운 선배로부터 한글을 사랑하는 호국 불교인데 무슨 말이냐! 나는 국어는 모르지만 뜻이 통하니 나를 지도교수로 올려도 좋다.”고 하셔서 두 지도교수님 모시고 학생처장과 과장, 많은 회원이 참석해 거창하게 창립총회를 한 일이 있다.

  

동국대학교 국어운동대학생회 창립 취지문

 

국어운동은 겨레운동이어야 한다

 

우리는 일찍이세계에서 가장 좋은 글자한글을 세종대왕이 애써 만들어 가지게 되었다그런데 지금 우리 모두 사랑하자고 하면서도 한글을 푸대접하고 돌보려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고유한 말은 잡다한 외국어가 뒤섞여서 주객을 분간 못할 정도가 되고 있다우리 민족이 또 동양이 서양에 비해 여러 면에서 뒤떨어진 것은 한자를 쓴 탓이라고 하면서도 한글보다 한자를 더 좋아하고 더욱더 한자를 쓰려고 한다. 이것은 잘못이고 모순이다

 

그러니 우리의 자주정신주체성과 민족성은 희미해지고 남의 것을 흉내 내고 남을 따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즐기고 있다그러나 이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여러 면에서 뒤떨어지고 다른 나라에 예속되기를 바라는 이 나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잘못된 현상을 고치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가 왜 몽골 원나라에 짓밟히고 시달렸으며중국 그늘 속에서 살았고일본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겼는지 생각해보자그 때 누가 그렇게 되길 바랐겠는가아니다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이다미리 그렇게 될 근본 원인을 찾고 그 원인과 문제를 바로잡는 일을 꺼리고 주저했기 때문이다그 이름 하여 사대주의 사상이 우리를 이 모양이 꼴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위치를 살피고 생각해보자우리는 남북이 갈려서 싸우고 있고, 인류가 가장 싫어하는 전쟁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외국의 원조 없이 살 수 없는 형편이다지금 우리는 우리 이웃 중국과 소련일본과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형편이다. 만약에 옛날처럼 저들이 우리를 간섭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막아낼 수 없다

 

우리 사는 형편을 보자맛이 좋은 것 찾아 먹는 것은 그만두고 배나 채울 수 있는가우리는 외국 책이나 번역하고 외국어나 배우다 세월을 다보내고 판이 끝난다외국어나 배우고 그것을 번역하여 읽기나 하고 새로운 제 나름대로 연구한 게 하나도 없는 이들이 무슨 학자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정치인은 자주정신은 없고 다른 나라 섬기기 바쁘다.

 

우리 모두 하루 빨리 각성하여 메마른 우리를 살찌게 하고 힘 있게 하여 어느 나라와도 한판 붙을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썩은 전통이나 개인 고집은 깨끗이 버리고 진정 우리 민족이 살길이 있으면 주저 없이 부지런히 걷지도 말고 뛰어야 한다우리 동국대인은 교가에서부터 겨레를 위해, 인류를 위해 새 역사를 창조하자고 외친다

 

우리는 참된 새 역사의 창조자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고 빛내어 우리 겨레의 살길을 찾고 아울러 인류의 나갈 길을 밝히자우리 민족이 살길은 먼저 우리 것을 찾고 키우는데 있다우리 것 중에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고 닦는 것이 가장 먼저요 으뜸이다함께 이 길을 가자.

 

1967 9

 

동국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

 

우리 학교가 그렇게 모임을 만들던 사이에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도 한글운동모임이 조직되었고, 서울대 이봉원 회장, 고려대 박노용 회장과 자주 한글학회 근처에서 만나 활동 방법을 의논했다. 1967년 한글날에 4개 대학 국어운동대학생회가 함께 정부에 한글전용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기로 했는데 경찰이 막는 바람에 행사를 못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이 한일회담 무효를 외치는 반정부 데모를 많이 할 때여서 학교와 경찰에서 학생들이 모이는 것을 불허하던 때라 그날 행사를 서울대가 주동했지만 학교에서 허가하지 않아 서울대 이름이 빠지고, 우리학교도 마찬가지로 행사에 참여는 했으나 그 성명서에 우리 학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 이름으로 고려대학교 교정에서 하게 되었다.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

 

대통령 각하

 

저희 국어운동학생회는 제 521돌 한글날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이 건의합니다.

 

건의내용 -

 

(그 하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던 해 10 9일 법률 제 6호로 제정 공표된 한글전용법 조문에는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어있습니다그러나 이 단서를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장 삭제해 주실 것을 건의합니다.

 

첫째많은 수를 위하는 진정한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둘째조국 현대화를 앞당겨 완수하기 위해서

셋째민족문화 발전과 국가의 주체성을 살리기 위해서

넷째극심한 국제적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다섯째한글전용 정책에 의한 새 민주교육을 받고 자라난 저희 세대는한글전용을 생활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 둘대통령 직함으로 각하의 이름을 쓰실 때는 꼭 한글로만 쓰실 것을 아래와 같은 이유로 건의합니다.

 

첫째더욱 과감한 한글전용법의 제정을 촉진하고국민들에게 한글 운동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둘째국내외적으로 자주 독립 국가의 위신과 배달겨레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1967. 10. 7.)

 

국어운동 대학생회

 

그렇게 한글날 행사는 경찰이 막아서 못했지만 언론에 보도되어 그 활동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 때 국어운동학생회에서 정부와 국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대통령께 드리는 건의문은 정부에 들어갔고, 대통령이 그 보도를 보게 되어 정부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한글학회와 국어운동학생회는 더욱 긴밀하게 협조했다. 그 때 여러 대학이 합동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서울대 이봉원군과 내 뜻이 잘 맞았고, 또 나는 그 전에 여러 대학 농촌운동 모임을 합동으로 한 경험이 있었기에 연합 모임을 만들어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1968년 한글날에는 전국국어운동대학생연합회(회장 이봉원)를 창립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그 당시 서울대 이봉원 군과 고려대 박노용 군이 나와 긴밀하게 협조를 했고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 학교 국어운동학생회 동아리가 튼튼하게 다지는 계기가 있었다. 내가 196710월 중앙대학교 농촌개발연구회가 개최하는 농촌문제학술토론대회에 참석하여 질의우수상을 받았는데 그 때 나는 무지와 가난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농촌이 부흥하려면 생산비도 안 되는 농산물 가격문제를 풀어서 생산 의욕을 높여주어야 하고, 농민들 스스로 농촌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글전용을 실시해 지식수준을 높여야 한다.”라고 주장해서 공감을 얻고 우수상을 받았는데 그때에 함께 토론회에 참석했던 농촌운동 뜻벗들이 내 한글운동을 뜨겁게 지지해주고 학교 신문에 그 소식이 보도되어 한글운동 모임 회원을 더 늘릴 수 있었고 학교 밖 연합활동도 더 힘차게 할 수 있었다. 어려운 고비마다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 1967년 10월 중앙대학교 농촌문제학술토론회에서 받은 상장과 은컵을 들고 찍은 사진.     © 리대로

 

그래서 1968년 봄에 서울 문리대에서 여러 대학이 합동으로 정부에 한글전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할 때에는 다른 학교보다 우리 학교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참석했고 한국방송 라디오는 내가 인터뷰를 하고 텔레비전은 우리 학교 여학생이 인터뷰를 하게 되어 우리 학교 행사처럼 되었다. 그리고 1968년 한글날에는 연합회를 결성하고 덕수궁 세종대왕동상에 꽃을 바치고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그해 1025일에 정부는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로 발표를 했다. 그 사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 학생들은 민중이 국가 정책을 바꾸게 할 수 있다는 승리감을 맛보았고 허웅 지도교수님을 모시고 북한산에 축하 들놀이를 가기도 했다.

 

1963년 고등학교 때에 정부 국어정책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바로잡는 학생운동을 할 생각을 하면서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으며 하늘이 도와 이봉원 뜻벗을 만나 쉽게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숨가쁘게 뛰었다. 나는 국어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전공한 사람도 아니지만 외세에 끌려 다니지 않는 자주독립국가가 되려면 겨레 말글을 살리고 빛내야 한다는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떨쳐 일어났던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는데 어려운 고비마다 도와주는 은인이 나타나고 이끌어주는 분들이 있어 문제가 잘 풀렸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앞만 보고 달린 결과 한글이 살아야 할 운명이기에 1차 꿈을 이루고 가벼운 마음으로 군대에 갔었다. 앞으로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줄 모르고...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기사입력: 2021/05/15 [00:4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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