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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추미애, 박근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문순 칼럼] 남성들이 망친 정치 들러리 신세, 여성정치인 자리는 없어
 
정문순   기사입력  2007/01/29 [20:38]
참여정부의 출범이 여성의 정치권 진출에 길을 닦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동안 크게 나아진 점은 없었다.
 
여성의 정치적 지위를 단박에 나타내는 건 여성이 국회에 얼마나 진출해 있는가 하는 것일 텐데, 현실은 아직도 전·현직 여성 정치인들이 지역구 국회의원 공천의 여성할당제 의무화를 촉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제도의 결함 못지않게 갈아 치워야 할 것은 여전히 여성이 남성 정치의 들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낡아빠진 정치 풍토이다.
 
'할당제' 필요한 제도적 결함

추미애 전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은 한때 앞날이 창창한 여성 정치인으로 촉망받던 인물들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포함하여 이들 세 사람이 여성 정치인 시대를 여는 기수로 성급하게 평가받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러나 그동안 두 번의 큰 선거를 치른 뒤 이들 중 두 사람은 더 이상 현역 정치인의 자리에 있지 않다. 한때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이 미래의 여성 대통령감으로 물망에 오르내리기까지 했던 시절에서 야인으로 돌아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안정하고 종잡을 수 없는 한국 정치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짧았다.

추미애 전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을 주목받는 정치인에서 일순간 평범한 시민으로 되돌리게 한 건 콩가루 집안으로 전락한 그들의 정당들이었다.

2004년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과 쪼개지고 멋모르고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다 풍비박산 나버린 민주당을 둘러멘 사람이 추미애 전 의원이었다.

정작 당을 몰락 직전으로 말아먹은 인사들은 호남의 지역적 기반만 믿고 표를 얻으려고 할 때였다. 민주당이 넋 놓고 있는 동안 삼보일배의 고행을 무릅쓰며 눈물로 지지를 호소한 그녀는, 자신을 위기의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맏며느리'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의 몰락에 대해 별로 책임이 없는 그녀가 흙빛이 된 얼굴로 오체투지의 죽을 고생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기성정치에 빚을 진 것이 없는 여성이 뒤치다꺼리를 맡은 건 강금실 전 장관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열린우리당에 기반이 있지도 않았고 이미 장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는데도 거덜난 정당을 지방선거 때 혼자 떠맡아야 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그녀가 당선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다. 승패가 이미 결정난 마당에 정작 당을 몰락시킨 자들은 뒤로 빠지고, 정치인의 때가 덜 묻었다고 알려진 강 전 장관을 내세워 그나마 망신스럽지 않은 성적표로써 자신들의 체면을 살리려고 했거나 패전처리용으로 쓰려고 했다는 혐의가 짙다.

열린우리당으로선 밑져야 본전인 카드로 강금실 전 장관을 내세운 셈인데 과연 그녀가 여성이 아니었어도, 열린우리당이 승산이 있었어도, 후보로 발탁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녀의 대중적 인기와 함께 여성이라는 성적 기호는 지리멸렬한 남성 정치가 자신들의 위기를 모면하게 해줄 소모품으로 소비하기에 적절했을 뿐이다. 설령 그녀가 선거에서 이겼더라도 자신에게는 떡고물조차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치다꺼리'에 머무르는 역할

남성 정치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고스란히 희생한 유력 여성 정치인 목록에 앞의 두 사람만 등재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권이 따놓은 당상처럼 보이던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게 추락해가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도, 집안을 일으켜놓고 본인은 정작 챙길 것이 없는 '맏며느리' 역할만 실컷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남의 패권적 정서와 박정희 향수에 기대어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킨 그녀지만, 당이 그녀에게 요구한 건 딱 거기까지가 아닐까. 한나라당이 생래적으로 여성 대통령을 용납하지 못하는 수구적 정서에 기대는 한 박근혜란 존재는 대선까지 내세우기에는 불안했을 수 있다.

푼돈도 함부로 쓰지 않은 아내가 남편이 망가뜨린 집안을 추슬러 그가 돌아올 자리를 만드는 데서 그치는 것, 유력한 여성 정치인들의 현주소이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01월 29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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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29 [20: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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