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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광화문 한글현판은 민주 자주 상징
[현장검증] 광화문한글현판을 달게 된 역사를 알 수 있는 녹취록3
 
리대로   기사입력  2023/09/12 [20:02]

문화재청은 2010년 광복절에 일본에서 광화문 사진 원판을 얻어다가 디지털 복원해 잘 보이지도 않는 그림을 본뜨고 덧칠해 원형이라며 국민을 속였다. 그것도 전 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외교사절까지 모아놓고 거창하게 제막식을 하고 언론은 원형복원을 했다고 선전했다. 삼부요인과 언론까지 문화재청에 놀아난 사기극이었고 국민은 속았다. 그러나 나는 그날도 그건 복제품으로 원형이 아니라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한글단체 대표들과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데 세 달도 안 되어 그 현판이 금이 가서 땜질하고 누더기가 되었다. 국민을 속이니 하늘에 계신 세종대왕과 선열들이 그 잘못을 알려준 것이다. 거기다가 2016년에는 그 현판 바탕색부터 잘못된 가짜임이 밝혀졌다. 나라 망신이다. 이게 문화재청 정신상태다.

 

▲ 바탕색이 검은색이고 금색 글씨인데 저렇게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고 원형이라 속였다.   © 리대로


이렇게 문화재청이 국민을 속인 것이 온 세상에 밝혀졌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국민에게 사죄하지도 않고 그 복제현판을 바탕색과 글씨 색깔만 바꾸어 다시 만들어 단다고 한다. 국민 혈세만 낭비하고 나라 얼굴인 광화문에 또 다시 가짜현판을 단다고 한다. 더욱이 그 현판은 1910년 나라가 망할 때 걸렸던 재수 없는 현판이고, 한글이 태어나고 400년이 지났는데 중국 한자를 쓴 못난 흔적으로 오늘날 중국 관광객이 와서 중국 속국이었다는 증거라고 좋아하고 있는 현판이다. 그 한자현판은 오늘날 사대주의와 식민지 근성이 찌든 정치인들과 문화재위원들이 자주, 민주 상징인 한글현판을 떼고 단 부끄럽고 못난 현판으로 우리가 자주독립국이 못되는 이유요 표시이며 증거다. 또 다시 그런 가짜현판을 나라 얼굴에 달아선 안 된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은 국어운동대학생회가 한글전용법을 지켜서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나라를 일으키자고 건의하니 그 소리를 듣고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세워 일본 총독부였던 건물을 가리고 한글현판을 달고 한글전용정책을 강력하게 편 민주, 자주 상징이다. 그런데 2005년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개인 정치 감정으로 박정희 독재정치 상징이라며 떼고 정조가 쓴 한자를 집자해 달겠다고 나서면서 일이 잘못되었다. 한글은 우리 겨레의 자긍심이고 자존심이며 자주문화를 창조하는 빼어난 연모이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의 건의를 듣고 한글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을 담아 건 것인데 그걸 모르고 한 짓이다. 나라 일을, 더욱이 겨레 운명이 달린 한글문제를 그렇게 개인감정으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정치인과 많은 국민들이 그 한글현판이 걸리게 된 배경과 그 현판이 가진 가치와 의미를 모르고 있어 우습게 여기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내가 정신이 있을 때에 역사를 소개하니 정치인과 언론인은 말할 것이 없고 온 국민이 눈여겨 봐주길 간절히 호소하고 바란다.

 

1. 본래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전용주의자가 아니었다.

 

1961년 정권을 잡은 박정희, 김종필 군부세력은 내가 예산농고에 들어간 1962년에 광복 뒤부터 한글로만 만들던 교과서를 일본 식민지 때처럼 1964년부터 한자혼용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이름씨, 그림씨”처럼 우리 토박이말로 된 말본 용어를 “명사, 형용사”처럼 일본식 한자말로 쓰게 했다. 나는 그때 그건 일어나는 나라 기운을 짓밟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 대학에 들어가 1967년에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그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나섰다. 나라가 위기를 맞으면 백성이 의병을 일으키듯이 그때 젊은 대학생들이 서울대를 시작으로 연세대, 고려대, 동국대에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조직되어 1967년 한글날에 고려대에서 정부에 그 잘못을 바로잡는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는데 경찰이 막아서 하지 못했지만 미리 보도자료가 나갔기에 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박정희 대통령도 알게 된다.

 

▲ 여러 산문에 1967년 한글날에 국어운동대학생회 행사를 경찰이 막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 리대로


2. 박정희 대통령을 한글학회 이은상님이 설득했다.

 

그 언론보도를 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비서에게 “대학생들이 한일회당 반대, 군사정권 물러가라고 시위해서 골치 아픈데 이건 또 무엇인가 알아보라.”고 지시해서 그때 박정희 대통령의 문화특보를 맡고 있던 이은상 선생에게 물었다. 이은상님은 일제 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까지 치른 분으로 철저한 한글전용실천가였기에 박 대통령에게 “당신은 누구를 존경하는가? 왜 존경하는가?”물으니 박 대통령이 “한글을 만들고 국토를 늘린 세종대왕과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을 존경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세종실록과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은 일이 있는가? 그걸 봐야 그 분들 훌륭함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책들이 모두 한문이다.”라면서 학생들 건의를 받아들여 빨리 옛 한문책을 국역하고 한글로 말글살이를 하는 나라를 만들면 그 두 분 다음으로 당신도 역사에 남을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3.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탑골공원 현판을 한글로 쓰기로 했다.

 

그러니 이은상님에게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서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에게 설명을 하게 했고,  한갑수님이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도표를 만들어 설명하니 알아듣고 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때 박 대통령은 탑골공원 문패도 ‘삼일문’이라고 한글로 쓰고, 한자로 서명하던 대통령 서명도 한글로 쓰기로 했다. 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할 때에 한자로 이름을 서명하려고 벼루까지 비행기에 싣고 갔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대학생들이 우리 글자인 한글로 서명을 하는 것이 옳다고 건의하니 받아들인 것이다. 1967년 12월 22일 정인섭 교수가 국어운동대학생회 강연에서 그 사실을 말한 녹취록을 아래 소개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 뒤 1968년에 광화문 현판과 현충사, 다른 중요 역사 유적을 복원하며 한판을 한글로 써 단다. 

 

▲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 이봉원 초대회장 카페에서 있는 녹취록과 정인섭 교수 얼굴 사진.“  © 리대로

https://youtu.be/XiQirPDlyME?si=KDsRxKTeTaeKc4SV

 

4. 한글전용을 5개년까지 끌 거 없다고 말한 정인섭 교수

 

이은상 선생이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서 한갑수 선생에게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도표로 만들어 설명하니 머리 좋은 박정희 대통령이 알아듣고 1968년 3월 15일에 한글전용 5개년 계획을 발표해서 3월 18일에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동국대 국어운동학생회는 동숭동 서울문리대 교정에서 그 정책 발표를 환영하면서 한글전용을 촉구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때 한국방송 라디오 인터뷰를 내가 하고 텔레비전 인터뷰는 우리학교 국문과 여학생 후배가 했다. 그리고 우리 학생회는 명동과 종로, 광화문 세 패로 나뉘어 거리에서 우리 주장을 담은 전단을 뿌리고 한자로 간판을 단 가게에  들러 한글로 쓸 것을 권하는 거리 계몽활동을 했다. 

 

그날 정인섭 교수는 우리 대학생들을 종로 한일관 음식점으로 모이게 해 설렁탕을 사주시면서  “이제  여러분이 이렇게 활동한 것이 방송에도 나오고 정부는 한글전용을 안 할 수 없게 되었다.”라면서 식당에서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기뻐하셨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에게도 답으로 노래를 하라고 해서 나와 함께 간 우리 학교 여학생 후배가 ’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때 정인섭 교수는 자신감을 얻었고 그 뒤에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단체 대표들을 만났을 떼에 정인섭 교수가 “5개년 까지 갈 것이 없고 바로 시행하시오.”라고 호통을 쳐서 한갑수 선생은 걱정했다는데 박 대통령은 정인섭 교수가 말한 대로 1970년부터 한글전용하기로 했다.  한갑수 선생이 국어운동대학생회가 주최한 청주 강연회 때 말한 녹취록을 아래 소개한다.

 

▲ 1968년 6월 27일 국어운동대학생회 주최 청주 한글사랑 강연회에서 한갑수 한글학회 이사 강연 일부 녹취록과 한갑수님.  © 리대로

https://youtu.be/WM2VXjqaLJE?si=19TReXjqUXzC8amH 

 

5. 정인섭 교수는 육영수 여사를 만나서도 한글전용 강조하다.

 

정인섭 교수는 일제 때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33인 중 한 분으로 영문학자요 음성학자이면서 중앙대 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분인데 1968년 11월 12일 육영수 여사가 외대에서 강연을 할 때에 참석하여 육영수 여사에게 한글전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하고 박 대통령이 한글전용 필요성을 깨닫고 1970년부터 한글전용하기로 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앞으로 한글전용을 하도록 했다. 그날 육영수 여사는 정인섭 박사가 있어서 말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니 정 박사는 2500만 여성을 위해서 당장 한글전용을 해야 좋다고 말해주었다. 육영수 여사도 쉬운 우리말을 한글로 쓰는 것이 좋다며 한글전용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국어운동대학생회와 한글운동가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한자혼용을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 육영수 여사 외대 강연 가운데 한글전용 관련 부문 영상과 정인섭 교수 얼굴사진입니다.  © 리대로

https://youtu.be/KCidPfzTSYk?si=qPh44BjYJwJf5V4Y

 

6.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을 우리 자긍심, 자존심으로 여겼다.

 

1990년 노태우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겠다고 했을 때에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은 그 대책회의를 했는데 그때 한갑수 선생이 “청와대는 국어운동대학생회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다.”면서 “박정희 대통령 때 어느 날 저녁에 청와대에서 내게 전화가 왔다. 대통령이 나에게 연락해 밤새 청와대에 있는 한자 알림 글을 모두 한글로 써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단다. 이튼 날 미국 고위 인사가 박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을 못하게 하려고 방문하는데 그때 우리는 세계 으뜸 글자를 가진 나라라며 우리도 자주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맞서 자주정책을 펴려고 한글을 내세우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밤새 청와대 알림 글을 모두 한글로 쓴 일이 있다.”며 박정희 대통령은 한글을 우리 자긍심이고 자존심으로 생각했다고 또 다른 증언을 했다.  

 

그때 한갑수 선생이 여든이 넘어 노태우 청와대는 한글을 무시하는 것을 모르고 국어운동학생회 학생들 말은 잘 듣는다고 한 말이었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대덕과학단지인가 만드는 것을 미국이 막으니 한글을 우리 자존심으로 생각하고 한글을 내 세워 미국에 맞서려고 한 증언을 안호상, 공병우, 전택부, 허웅 선생들 여러분이 들었다. 그 뒤 박 대통령은 한글단체에 한글을 살리라고 세종대왕기념관과 한글회관도 지어주어 한글을 지키고 빛내는 일을 하게했다.  

 

7. 얼빠진 문화재청 마음 자세와 정신상태

 

광화문 한글현판을 떼겠다고 나선 노무현 대통령 때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들 정신상태를 잘 보여주는 찍그림이 있다. 세종대왕 태어난 날을 축하하는 꽃에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축하 글을 쓰지 않고 한자로 썼으며,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이 직접 와서 꽃을 바쳤는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오지 않고 빈 의자만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갔다 놨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에 꼭 와서 절을 하고 그분 업적과 정신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겠다고 다짐했고 태어난 날을 세종날이라고 정하고 다음 대통령들도 꼭 참석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이 한번 참석하고 그 뒤 참석하지 않았으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세종날에 영릉을 참배하지 않았다. 

 

문민정부요 국민정부라는 이들이 민주글자를 만든 세종대왕과 민주글자 한글을 우습게 여긴 것이다. 그런 정신상태가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겠다고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에 걸었던 한글현판을 떼버린 것이다. 또 세종대왕 태어난 것을 축하한다면서 그 축하 글을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쓰지 않고 한자로 쓴 것은 문화재청이 일부러 세종대왕과 한글을 능멸하려고 한 짓이거나 아니면 못나서 한 짓으로 보인다. 그때 문화재청장은 영릉에서 행사를 하고 고기를 구워먹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정신상태가 광복절에 광화문에 걸린 한글현판을 떼고 나라가 망할 때 걸렸던 한자현판을 복제해 걸고 거창하게 원형이라고 국민을 속이는 사기극까지 한 것이다. 겨레 운명이 걸린 한글문제를 개인 정치 감정으로 짓밟은 문화재청장이 존경받는 세태가 한심하다.

 

▲ 세종대왕 태어난 606돌(2003)돌에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축하 글을 세종이 만든 한글로 안 쓰고 한자로 써서 세종무덤 앞에 놓고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빈 의자를 놓았고, 영릉 입구에 손학규 경기도지사 이름 축하 꽃에 한자로 글을 써 놓았다. 문화재청이 하는 꼴이다.  © 리대로


마무리 말 – 다시 광화문에 한글문패를 걸고 한글을 빛내자!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 한 한글전용 정책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고 쓰게 한 것 다음으로 국가 지도자가 한글을 살리고 빛내려고 힘쓴 두 번째 큰 우리 말글 독립정책이었고 우리 말글살이 혁명이었다. 만약에 그때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는 정책으로 돌아갔다면 오늘날처럼 한글이 쓰이고 한글이 자주문화를 창조해 우리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 했을 것이다. 그 광화문 한글현판은 위대한 자주문화 상징이다. 그런데 그 때 박정희 대통령 측근인 김종필, 박태준 같은 한자혼용주의자가 있고 학자와 언론인, 공무원들이 거의 일본 식민지 교육 세대로서 자신도 일본식 한자혼용이 편했지만 국민의 소리를 듣고 한글전용 정책을 편 것은 아주 잘한 용단이다. 

 

▲ 이제 다시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 걸린 나라가 망할 때 걸린 한자복제현판을 떼고 훈민정음 글꼴로 한글현판을 달고 자주문화를 꽃피우고 세계 문화발전에도 이바지하자.  © 리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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