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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영국 전력산업 민영화의 허실
민영화의 실패가 아닌, 민영화한 기업이 실패ba.info/css.html'>
 
최용식   기사입력  2002/09/04 [01:20]
나는 영국의 사정에 대해서는 백치나 다름이 없다.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어떤 상태인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텍스트가 주어진다면, 그 속의 논리적 오류를 찾아낼 능력은 가지고 있다. 배정원님의 ‘정부의 전력산업 사기업화와 매각 재고를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글도 마찬가지다. 영국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실패했다는 주장이 논리적 오류를 담고 있으며, 이런 오류에 근거한 주장도 문제가 많다는 점을 나는 안다는 것이다. 활발한 토론을 위해 경칭은 생략한다.

[관련기사]
배정원, 정부의 전력산업 사기업화와 매각 재고를 촉구한다, 대자보 89호
배정원, 영국의 민영화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대자보 84호
노항래, 누구 마음대로 발전소를 매각하는가?, 대자보 84호
박태주,  발전민영화, ‘막다른 골목’에서의 탈출은? 대자보 78호
편집부, 민영화라는 재앙-캘리포니아주 에너지 대란의 진상, 대자보 79호

{IMAGE1_LEFT}영국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OECD와 IMF의 통계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내가 나서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것 같아서 자제하고 있었으나, 배정원을 위해서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비판이 배정원의 민영화에 인식에 보탬이 되기를 기원한다.

영국 브리티시에너지의 자금난은 영국 민영화정책의 실패가 결코 아니다. 브리티시에너지라는 한 회사의 실패에 불과하다. 이런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논리적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자, 왜 영국 민영화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한 회사의 실패인지를 꼼꼼히 한번 따져보자.

영국 전력산업의 민영화가 발표되었을 때, 전력산업에 참여하겠다는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고 나는 들었다. 신규허가를 요청한 설비만 따져도 영국 수요량의 6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이처럼 여러 회사들이 전력산업에 진출하려고 했을까? 왜 영국 전력수요량의 6배나 되는 신규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기업들이 나섰을까? 두 말할 것도 없이, 전력산업이 큰 이익이 남길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신규건설을 희망했던 기업들은 기존의 국영 발전소가 민영화되더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국영이었던 발전소들의 생산성이 형편없이 낮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면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당연히, 국영이었기 때문이다. 즉, 국영은 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산업의 동력원인 전력산업의 생산성이 낮아서 경쟁력을 상실했다면, 다른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정부도 민영화를 추진했을 것이다.

자, 이제는 브리티시에너지가 왜 자금난에 봉착했는지도 배정원의 글을 통해서 한번 따져보자. 배정원은 첫째, 파생금융상품의 판매부진에 따른 자금확보난 둘째, 전기료의 하락 셋째. 보혐료의 인상 넷째, 핵폐기비용의 증가 다섯째, 브리티시에너지 주가의 하락 등을 들었다. 그런데 이중 핵심은 전기료의 하락에 따른 경영수지 악화일 것이다. 이것만 없었다면, 파생상품이나 주가하락 등은 없었을 것이며, 보험료나 핵폐기 비용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브리티시에너지의 경영수지 악화가 민영화정책의 실패 탓일까? 아니다. 이것은 기업의 실패일 뿐이다. 즉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한 것이 경영수지 악화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전기료 인하는 경쟁의 산물이며, 이것은 민영화를 추구한 정책적 목표이기도 하다. 민영화 덕분에 “지난 2년간 전력도매가는 무려 33%나 떨어졌다”지 않은가? 그만큼 국민들은 값싼 전기를 쓰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일을 어떻게 민영화정책의 실패로 몰 수 있을까?

과당경쟁을 불러온 것을 정책적 실패라고 몰아붙인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지금 세계적으로 자동차산업, 철강산업, 석유화학산업 등 많은 산업들이 공급과잉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산업들의 공급과잉도 정책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시장에서 이뤄지는 경쟁의 산물일 따름이다. 만약 시장의 경쟁을 비판하려면, 옛날의 러시아나 중국처럼 국가가 모든 재화의 생산을 기획하고 분배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영국의 철도선로 유지업체인 레일트랙의 실패도 그 원인이 민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 기회에 밝혀둘 필요가 있겠다. 국영일 당시에 적자가 너무 쌓여서 그리고 재정보조금이 너무 커서, 선로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낙후될 대로 낙후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지비용이 엄청나게 들 수밖에 없었고, 배정원의 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사고도 빈발했으며, 이에 따라 경영난을 겪게 된 것이다. 국영일 때에 누적된 문제가 민영일 때에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국철을 민영화할 때, 누적적자를 따로 떼어내어 공적기금에서 관리하게 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영국도 공적자금을 투입할 예정인데, 이것을 민영화할 때 미리 투입했더라면 그 규모를 줄일 수 있었고 민영화가 실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음은 배정원의 텍스트를 따져보자. 첫째, “민영화는 고용과 노사관계 악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은 옳다. 그러나 민영화를 하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 보라. 민영화 이전처럼 엄청난 국민세금을 국영철도에 부어넣었어야 했을 것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1970년대 말의 환란은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며, 여전히 영국병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국민소득은 지금처럼 독일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1/6에 불과할 것이다. 1970년대 영국 교과서에는“지금의 성장률 추세라면 20년 후에는 GNP가 독일의 1/6에 불과할 것이다”라는 글이 실려 있었다지 않은가.

둘째, “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고 가격이 올랐다”는 비판은 처음부터 틀렸다. 국영일 때에 누적된 부실과 병폐가 치유되는 동안은 서비스의 질도 떨어지고 가격도 올른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배정원의 말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1987년의 자료만 인용하기 때문에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처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이 거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이 희귀해졌다고 나는 듣고 있다.

셋째, “영국정부는 철도, 지하철, 브리티시 에너지를 재국유화 하는 점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무엇보다 이것은 민영화가 철저하게 실패한 사례가 결코 아니다. 민영화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민영화한 기업이 실패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철도와 지하철 등은 국영일 때의 부실누적이 실패의 주요 원인이다. 따라서 국영화하더라도 국민들의 세금부담만 늘어날 뿐, 경영호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영국정부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영국정부는 국영으로 전환하는 것을 극력 기피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유화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기보다는 국유화를 회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표현해야 옳다.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민영화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민영화를 둘러싼 정부와 민주노총의 대립 자체가 정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영화계획이 수립되고 확정될 때에 투쟁했어야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민영화 법률이 국회에 상정될 때라도 투쟁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뒤늦게 문제가 되었을까? 이것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더 잘 알 것이다.

끝으로, 중국은 10만여개의 국영기업 중 9만여개를 민영화했고, 지금 세계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국영기업의 경영부실을 지금껏 끌어안고 있었더라면 중국경제가 지금처럼 번영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국영기업의 민영화에 나서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금기시해야 할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 논설위원

* 필자는 21세기경제학연구소 http://www.taeri.org 소장입니다.
* 본문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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