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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반론] 대처리즘과 신자유주의의 본질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은 대처리즘의 계승이다ba.info/css.html'>
 
최용식   기사입력  2002/09/03 [02:16]
이광석님의 토론참여를 적극 환영합니다. 님의 텍스트에 입각하여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경칭은 생략합니다.

우선, 어떤 특정 학자의 분석이나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표로 표현되는 경제현실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던과 스미스의 주장이 틀렸다는 사실이 경제원리와 경제지표에 의해서 쉽게 증명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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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1_LEFT}던과 스미스의 주장에 따르면, “집권 초기의 변화 원인은 대처리즘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1979-81의 심각한 경기후퇴와 기술과 생산기법의 보다 근본적인 변화에 기인한다”는 점을 이광석은 인용했다.  여기에는 두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그 하나는, 던과 스미스가 경제를 수요와 공급이라는 양면을 보지 못하고, 수요측면에서만 보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래서 대처리즘의 성공이 “1979-81의 심각한 경기후퇴” 때문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즉, “1979-81의 경기후퇴가 심각하여 1980년대 초반의 성적이 숫자상으로만 호조를 보인 것일 뿐”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수요측면에서만 보면 이 지적은 옳다. 그러나 공급측면에서 보면 이 지적은 경제학적 소양을 의심케 할 정도의 지적이다. 영국은 1976년 말 외환위기를 당하고 제2차 석유파동까지 겹치면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되었었다. 영국경제의 총공급능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올린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매우 양호했다고 평가해야 한다. 공급측면은 보지 않고 수요측면만 보는 자가 경제학자인지 의심스럽다. 그것도 두 사람이 한꺼번에 말이다.

다른 하나는 ‘기술과 생산기법의 근본적인 변화’는 내가 보기로는 최소한 1980년대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1980년대에 있었던 ‘기술과 생산기법의 근본적인 변화’는 다른 때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둘째, ‘대처 정부의 중앙정부 지출이 GDP의 38%를 약간 상회하는데, 이것은 1950년대나 1960년대 전반보다 높다’는 지적은 황당하다. 영국 경제위기가 심화된 것은 재정팽창이 1970년대 말까지 지속됨에 따라 경쟁력이 약화된 탓이다. 그리고 ‘작은 정부’를 추진하면서 영국의 경제위기는 해소되었다. 따라서 재정규모는 경제위기가 심각했던 때와 비교할 일이지, 재정팽창이 본격화되기 전과 비교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즉 가치판단을 내려놓은 다음에 엉뚱한 통계를 인용하고 논리를 구성한 것이다.

셋째, “경제성장률을 보면 1983년부터 1989년 사이 평균 약 3.5%로서 1973년부터 1979까지의 평균 약 1.5%보다 높다. 하지만 1966년부터 1973년 사이 평균이 3%임을 고려하면 말만 요란했지 실속은 없다”는 지적은 어떤 목적의식 하의 고의적인 평가절하이다.

영국은 1970년대 말에 환란을 겪었다. 이 환란은 경제공황에 못지 않은 아주 심각한 경제질병이다. 환란을 겪었던 중남미 국가들이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는가를 상기해보라. 이런 경제질병을 이겨낸 뒤의 성과가 위와 같다면, 이것은 칭송해도 마땅하다.  

사람도 병에 걸리면 건강과 체력이 크게 악화되기 마련이다. 평상시에 100m를 12초에 뛰었던 사람도 수술받은 다음에는 빨리 뛸 수 없다. 20초에만 뛰어도 대단한 기록이라고 해야 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영국경제가 바로 이런 상태에서 위와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넷째, ‘쇼의 주장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율은 대처 행정부가 출범한 1979년의 약 10%에서 1987년에는 약 4.5%로 떨어졌지만 이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큰 성공은 아니다’라거나, ‘고용 측면을 보면 1979년 집권 당시 실업은 약 1백 20만이었는데 1987년 말 실업자 숫자는 약 2백 75만 명이었고, 실제 숫자는 3백 50만에 다다른다’는 비판을 인용한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환란이라는 치명적인 경제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망각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도치시킨 논리적 오류이다.

다섯째, “제조업 수준을 보면 1980년대 말에 가서야 1970년대 말의 수준을 회복하였다”는 비판은 더욱 심각하다. 환란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경제학자라는 자가 몰라봤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환란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치명적이며, 그 타격이 얼마나 큰가, 그리고 후유증과 부작용은 얼마나 심각한가 등을 경제사를 뒤적여서 다시 확인할 일이다.  

여섯째, “다시 대처리즘으로 돌아가, 관점을 약자의 눈으로 보는 세계로 바꾸면 최용식의 기술처럼 영국병을 깨끗이 씻어낸 것이라기보다 해결해야 할 새로운 유산을 남겨놓은 것이다.”라는 비판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약자의 눈으로 보더라도 대처리즘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보가 자본가에 비해서 약자의 처지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노동자보다 훨씬 약자이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이기 마련인 실업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처리즘을 높이 평가해줘야 한다. 실업률을 낮춘 것은 대처리즘이기 때문이다.

{IMAGE2_RIGHT}아울러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어떻게 집권했는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3의길을 내세워 대처리즘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다음에 집권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보수당 전신인 토리당을 빗대서 ‘토리 블레어’라는 별칭으로 불렸을 정도다.

대처리즘은 노동당에서도 유지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더욱이 영국에서는 임금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일이 벌어졌었는데, 진보가 이것을 어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영국의 이런 성과에 자극받아, 1990년대 후반에는 프랑스 좌파정권도 영국을 본받았었고, 곧이어 독일의 좌파정권까지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 그 결과 이 나라들도 90년대 말부터 실업률은 현저하게 낮아지고 성장률도 크게 높아졌다.  

일곱째, 민영화에 관해서는 중국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겠다. 중국은 10만여개의 국영기업 중 9만개를 민영화하거나 퇴출시켰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계속 기록하고 있다. 이래도 민영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배척받아야 하는 것일까? 물론 민영화와 시장지형적인 경제정책의 후유증과 부작용도 심각하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빈부격차도 커졌다. 무엇보다, 실업자는 수천만인지 일억을 훨씬 넘어선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빈부격차를 따지더라도, 하위 20%에 대한 상위 20%의 소득배율이 7.9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4.7배이다. 그렇다면 민영화를 하지 말아야 할까? 신자유주의정책을 포기해야 할까? 만약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중국이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의 북한경제가 되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면 북한 인민들의 삶이 중국보다 행복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도 중국의 뒤를 따르고 있지 않은가!

여덟째, “대처정부가 출범한 1979년과 1985년을 비교해보면 빈곤선 이하의 인구비율은 12%에서 17%로, 빈곤주변인구의 비율은 22%에서 28%로 증가하였다. 1979년에 전 인구의 4%인 빈곤이 1987년의 경우 전체인구의 5%인 289만으로 증가하였고 이중에 아동인구의 4%인 49만명이 포함되어 있다. 1987년의 경우 249만명의 아동을 포함하여 (전 아동인구의 21%) 1,020만명 (전인구의 19%)이 빈곤선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인용한 것은 좀 문제가 있다.

1985년은 환란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다. 석유파동의 여파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때이다. 그렇다면 빈부격차는 커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환란과 같은 경제재앙을 당하면 빈부격차는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남미 경제의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확대된 것도 환란의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빈곤의 증가는 비단 영국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 등 1980년대에 신보수주의적 개혁을 단행한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이다.”라는 표현을 위의 글 뒤에 덧붙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을 하려면 경제지표로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은 신보수주의적 개혁을 단행하지 못한 나라에 속한다는 사실을 병기해둔다.

끝으로, 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다. 다만, 진보를 비판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자 같이 비쳐질 따름이다. 남의 글을 비판하면, 텍스트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보수주의자를 비판할 때는 내가 극좌로 몰리기도 한다는 점을 밝혀두는 바이다.

나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다. 현실주의자일 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이념을 모두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해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21세기경제학연구소 http://www.taeri.org 에 찾아와서, 초기화면 맨 밑에 있는 [21세기경제학] 요약본을 참고하기 바란다.  [신진보주의를 제안한다]라는 글을 읽어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논설위원

* 필자는 21세기경제학연구소 http://www.taeri.org 소장입니다.
* 본문에 대한 반론을 환영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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