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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력산업 사기업화와 매각 재고를 촉구한다
영국 발전산업 민영화사례와 사회단체, 노조의 민영화 대응방안ba.in
 
배정원   기사입력  2002/09/02 [02:14]
{IMAGE1_LEFT}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8월 25일 영국의 전력생산량 4분의 1를 차지하고 있는 브리티시 에너지가 극심한 자금난에 처해 있어 재국유화를 포함하는 ‘블루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라고 보도했다.

브리티시 에너지의 주가는 3년 전 749페니까지 올라갔으나 지난주 사상 최저치인 54페니로 떨어졌다. 브리티시 에너지에 향후 12개월내에 4억5천만 파운드의 자금이 추가로 유입되지 못하면 파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블루 프로젝트’에는 최소한 5억 파운드의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할 형편이다.

6년전 민영화된 브리티시 에너지는 민영화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최신형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한 영국의 간판 발전회사였다. 그러나 민영화를 통해 발전산업에 경쟁개념을 도입하고 전기료를 낮추겠다던 영국 정부 의도는 이번 사태로 인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브리티시 에너지의 도산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지난해초 도입한 신전력거래조치(NETA) 탓이다. 영국정부는 NETA 도입으로 전력도매시장을 통해 소비자에게 값싼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에너지거래 거대기업인 미국 엔론이 지난해말 파산한 것이다. 브리티시 에너지 등 발전업자들이 생산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해온 에너지 파생상품시장이 엔론 등 에너지 파생상품 거래업체들의 파산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둘째, 민영화에 따른 과잉공급으로 인해 지난 2년간 전력도매가는 무려 33%나 떨어졌다. 그러나 발전업자들은 전력시장에서 과잉공급되는 전력을 되사들여 가격을 조절할 능력도 없어 소매가가 하락했다. 6년전 민영화 당시만 해도 브리티시 에너지는 메가와트 당 27파운드의 가격을 예상했다. 그러나 최근 전기가격은 손익분기점인 21파운드에 훨씬 못미치는 16파운드로 폭락했다. 따라서 지난해만 약9천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약6백억원이 전력도매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이다.

세째, 9.11 사태 이후 까다로워진 보험업계 방침으로 보험료 부담이 커진 것도 적자 증가의 한 요인이 됐다. 보험료가 7% 인상된 것은 지금은 큰 부담이 아니다. 민영화 당시 정부와 체결한 계약서에 따르면, 브리티시 에너지가 감당할 보험범위는 1억2천6백만파운드로 한정돼 있고 나머지는 정부가 책임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앞으로는 전력 등에 대한 국가보조를 금지하는 국제협정에 따라 브리티시 에너지가 감당해야 할 보험범위가 종전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4억3천억파운드가 됐다.

네째, 핵폐기물 재처리 비용 과다 지불 등으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보통 원자력 발전시한이 50년 정도이며, 브리티시 에너지는 핵폐기물 재처리에 고비용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시장에서는 브리티시 에너지 이미 파산상태로 알려져 주요 신용평가기관들은 브리티시 에너지에 대한 신용등급을 곧 하향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의 신규자금 조달도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이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브리티시 에너지가 8억5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를 갚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며 내년 3월까지 1억1천만 파운드 상당의 채권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이에 관해 인디펜던트紙는 “지난해 철도 민영화 실패로 선로관리업체인 레일트랙 재국유화에 따라 피해를 본 주주들에게 손해배상 문제로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는 영국의 통상산업성과 재무성은 브리티시 에너지의 파산사태만은 어떻게 하든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철도 민영화의 실패로 선로 관리업체인 레일트랙을 최근 사실상 재국유화한 영국 정부는 브리티시 에너지 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79년 대처 정권의 등장 이후 비용절감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공기업의 민영화가 계속돼 왔으나 레일트랙에 이어 영국통신(BT), 항공관제업체인 항공교통서비스, 영국항공 등이 줄줄이 경영난을 겪는 등 문제점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런던 지하철의 민영화는 계속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영국 정부가 민영화 6년 만에 파산 위기를 겪고 있는 원자력발전회사 브리티시에너지를 다시 국유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마거릿 대처 수상 시절부터 시작된 공기업 민영화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영국 민영화의 대표적인 실패사례인 영국국철(British Rail)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영국국철은 1996년 철도 노선의 유지 회사로 Rail Track으로 민영화되고 노선운영은 12개 지역으로 나눠 민영화를 추진해왔다. 영국국철은 민영화의 대표적인 실패사료로 자주 인용된다. 실제로 민영화 이후 서비스의 질이 서유럽에서 최악으로 나타나 승객 수가 크게 줄고 철도회사들의 수지도 떨어지게 되었다. 1997년 이후 대형철도 사고만해도 무려 6번이나 발생했다. 지난 5월10일 런던 부근에서 일어난 열차사고로 7명이 숨지고 80여명이 부상했다. 이러한 사고의 주원인은 민영화 이후 유지 보수와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도회사가 단기 이익에 치중하여 비용절감으로 정비와 유지 보수를 방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Rail Track이 파산하여 정부관리하에 있고엄청난 액수의 공적자금이 투자될 걸로 예상하고 있다. 철도 민영화는 보수당 정부가 시작했지만 현재 노동당 정부가 철도 민영화의 실패의 뒤처리를 맡아 큰 곤경에 처해있다. 노동당 정부는 지난 6년간의 철도 민영화를 중단하고 다시 공기업으로 전환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관련기사]
배정원, 영국의 민영화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대자보 84호
노항래, 누구 마음대로 발전소를 매각하는가?, 대자보 84호
박태주,  발전민영화, ‘막다른 골목’에서의 탈출은? 대자보 78호
편집부, 민영화라는 재앙-캘리포니아주 에너지 대란의 진상, 대자보 79호


영국 민영화 이후 일어난 현상 몇가지를 살펴보자.  

{IMAGE2_RIGHT}1. 민영화는 고용과 노사관계 악화를 초래했다.
영국 민영화 이후 대부분의 민영화된 기업은 대대적인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으로, 다수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예를 들어 BT는 91년 약 1만 8천명, 92년 약 1만 5천명, 그리고 93년에는 무려 약 4만명의 감원이 나타난바 있다. 현재 한국의 발전 노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전력산업에서도 민영화는 노동자에게 악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민영화 이후 경영진의 강력한 대응과 산업의 분할등으로 인해 노조의 협상력이 약화되어 노조가 위축되었다. 또한 발전 산업에서는 상당수의 고용감축이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로 민영화는 공기업이 가지고 있던 고용확대라는 사회경제적 목표를 완전히 배제하여 80년대의 대량실업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노동환경의 질도 낮아졌다. 해고위협의 증대는 노동자들을 위축시켰고 더 낮은 임금으로 더 힘든일을 하게하는 노동환경이 되었다. 민영화는 기업내 사장등 경영진은 매우 높은 보수를 받고 일반 직원과 노동자는 연금혜택이 감소하는 등 기업내의 임금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2.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고 가격이 올랐다.
흔히 민영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영화를 하면 소비자의 선택권리가 많아지고 서비스의 질도 향상될것이라 주장하지만, 영국의 경우 민영화 이후의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 현상으로 나타났다. 민영화 초기에는 오히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 경우가 많았고 가격규제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의 요금이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민영화 이후 이런 문제가 소비자 단체에서 거론되어 쟁점이 되었고 규제의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통신산업의 경우 민영화 이후 시외전화 요금은 인하되었지만 민영화 이후 초기에 전화 서비스의 질이 악화되었고 시내요금이 올라 소비자의 불만이 많았다. OFTEL의 1987년 보고는 고충건수, 공중전화, 고장수리 등에서 서비스가 악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가스산업의 경우 민영화 직후 몇 년간 공급단절율이 높아지고 서비스의 질이 악화되는 등 많은 불만이 OFGAS에 쇄도하여 가스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3. 영국정부는 철도, 지하철, 브리티시 에너지를 재국유화 하는 점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철도와 공항관리는 민영화가 철저히 실패한 경우이다. 철도는 민영화 이후 노선 보수 유지와 정비를 등한히 해 6차례나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서비스의 질이 유럽에서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영국정부가 철도를 재 국유화 하는 점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영국의 전력 민영화 실패는 민영화의 모범적 성공국가로 알려져온 영국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특히 한국전력 자회사 민영화를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정부는 국민 다수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연내에 한전 자회사 가운데 가장 알짜기업인 남동전력을 민영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두었다. 영국 민영화 당시 알짜기업이었던 전력회사가 불과 6년만에 부실기업으로 전락해 1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졌다는 영국의 사례에서 민영화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정부는 인식하고 따라서 전력산업 민영화계획에 대해 과감한 재고를 촉구한다. 정부는 이번 영국의 전력 민영화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발전산업의 사유화나 민영화에 대해 환경운동가들의 입장을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본지에 발표된 "발전파업 정리 이후 에너지 문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변현단, 대자보 79호)기사의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발전소는 국가독점으로 인하여 민중에 대한 지배수단으로 되고 있다. 외래독점은 산업자본의 논리에 내맡겨져 사회간접자본 기간산업, 인프라의 기능에 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공기업화는 책임주체의 불명확성과 비효율의 온상으로 되고 있다. 반면 사유화는 시장논리에 내맡겨져 대규모의 에너지 빈곤인구를 양산시켜 낼 수 있다. 따라서 생산자 소비자 경영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영제로 전환 될 필요가 있다.       (중략)

발전파업을 통한 에너지 문제의 사회 이슈의 등장은 이제 에너지 문제에 대해 민중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에너지는 문제는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존명(存命)과 함께 환경, 생태 문제의 핵심적 고리임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발전 파업의 일말의 계승을 위해서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반생태적 에너지 사소비 부문에 대한 중과세 그리고 비생산 및 비업무용 전력 수요에 대한 누진세, 탄소세 부과 등을 계속해서 요구해야 될 것이다. 동시에 청정개발, 소규모 분산형의 자급적 재생 에너지 개발에 국가와 지방자치제가 나서도록 촉구해야 할 것이다."


전력산업은 자산가치가 70조를 넘는 국민경제의 동력인 기간산업이다. 이런 중요한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려면 사회적으로 성실한 논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고, 따라서 이러한 민주적 논의가 결코 생략되어서는 안된다. 발전소 매각정책이 타당한지는 민주적 논의과정에서 재론될 수 있을 것이다. 논의과정에서 사기업화정책에 대한 타당성여부를 진지하게 토론되어야 한다. 범국민적 논의에서 민영화론이나 매각론이 정당하다고 인정될 수도 있다. 또한 논의과정에서 매각정책을 상당기간 미루거나 재검토하는 것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이런 민주적인 논의과정이야말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로 접근하며 기존의 이해관계를 재조정하는 사회통합의 첫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금부터 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은 12월 대선을 통해 열려질 좁은 정치공간에서나마 전력 철도 등을 비롯한 필수 공공서비스사업의 사기업화와 매각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발전매각 유보 및 재검토 요구를 사회적으로 전면화해야 하고 이에대한 토론분위기를 유도해야한다. 이를 통해 차기 정부로 민영화 정책 과제를 이관시키고 차기정부에서 사기업화와 매각정책에 관해 범국민적인 재논의를 통해 합의를 낼 수 있도록 해야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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