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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인터넷 기자밖에 없는가
왜 <민중의소리> 기자에 대한 미군의 만행에 침묵하는가ba.info/css.html
 
여인철   기사입력  2002/07/18 [17:36]
지난 6월 13일 지방선거 날 일어난 미군 궤도차량의 우리 여중생 압사사건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사건은 대다수 제도권(?) 언론사의 침묵으로 그 사실조차 가려진 채 그냥 묻혀질 뻔하였다. (이 부분은 두고두고 엄중한 질타를 받아야 할 부끄러운 우리 언론의 현주소이다)

{IMAGE1_LEFT}그 사건을 여론화시키는 데는 인터넷 매체의 역할이 컸다. 그 인터넷 기자들의 노력은 아무리 칭찬해줘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러나 그에 비하면 더 큰 권력(?)과 지위와 힘을 가지고 있는 제도권 기자들의 노력은 어쨌든 외형상 미미하였다. 이유야 어떻든 신문, 방송 등에 사건이 기사와 뉴스화되어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고 초기에 미2사단 앞에서는 비록 참여인원은 소수였지만 시위가 계속되었음에도 대개의 제도권 언론에서는 세상의 이목이 온통 월드컵에 모아진 것을 기화로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뉴스와 기사를 온통 월드컵으로 도배함으로써 일부러 더 월드컵에 열광케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나는 오늘날의 기자들에게 과연 시대정신이 살아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있다)

[관련기사] 서민철, 미군 여중생 살인사건진상조사 중간발표열려, 대자보 86호

그러던 중 지난 6월 26일 미2사단 앞에서 항의집회 중에 흥분한 시위대가 철망을 제거하여 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떠밀려 들어간 한 인터넷 방송국 기자가 미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폭행당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미군은 기자를 줄로 묶은 상태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무자비하게 군화발로 목을 누르며 짓밟는 등 불법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우리 경찰에 인계할 때는 기자가 오랜 시간 줄에 묶여 피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풀어주기를 거부하는 등 야만적인 행패를 부렸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그런 만행을 저지른 미군이 오히려 우리 경찰이 그 기자를 체포한 것이라는 둥, 폭행한 사실이 없다는 둥 뻔뻔스러운 거짓말로 사태를 모면해보려 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미군기지의 철망을 뚫고 침입한 시위대와는 다르다. 설사 시위대라 하더라도 즉시 우리 사법당국에 인계할 뿐 그들이 구금할 권한은 없다.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는 더 더욱 없다. 그럼에도 시위대도 아닌 기자를, 자신의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체포·폭행·구금한 미군의 행동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폭거이며 만행이다.

나는 이러한 기자에 대한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 우리나라의 기자단체에서 당연히 문제제기를 하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이 있긴 했다. 그러나 참여단체를 보니 거의 모두 인터넷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뿐이었다.

제도권 언론의 기자들은 다 어디 갔는가. 그들은 기자가 아닌가. 인터넷 언론의 기자와는 다른 기자인가.

이번 미군에 의한 인터넷 방송국 기자 폭행사건은 일반인도 분노를 느낄 만한 인권유린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그리고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되어 있다. 그러니 기자들이 설사 기자가 아니고 일반 시민이라해도 공분을 느끼고 행동에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IMAGE2_RIGHT}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기자 직함을 가진 이들에게 항의한다. <민중의 소리>의 두 기자가 그렇게 취급당하도록 그냥 방치할 것인가.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고, 두 기자도 불구속 기소 상태이긴 하지만 미군의 불법만행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보도와 여론환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두려워서 침묵하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가. 미군의 여중생 압사사건을 제대로 보도도 하지 않은 죄만으로도 그대들이 기자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주한미군에 폭행당한 한유진 기자

그러면서도 서해교전 때는 어떻게 보도를 했는지 한번 뒤돌아 보라. 형평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여중생 압사사건에 대해서는 가물에 콩 나듯 조그만 단신으로 처리하던 기자들이 왜 그렇게 갑자기 용맹스러운 사자가 되었는가. 지금도 우리 기자들 생각하면 내가 다 창피스럽다.

인터넷 기자와 제도권 언론 기자는 서로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속보성에 있어서는 제도권언론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그렇다. 그러나 제도권 언론이 그걸 받아 지속적으로 취재를 해서 후속보도를 해주지 않으면 인터넷 언론만으로는 여론화엔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두 매체가 서로 같이 선의의 경쟁을 하며 나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설사 평소에는 경쟁관계에 있다하더라도 같은 직군의 종사자가 그런 터무니없는 인권유린을 당한 데는 힘을 합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무슨 생각 차이가 그렇게 크고 지위 차이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모른 척하고 있단 말인가.

혹시나 제도권 언론의 기자들이 무슨 대단한 엘리트 의식으로, 고관대작이나 명사와는 상대해도 인터넷 기자들은 상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에 그 알량한 의식을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그런 낡은 의식으로는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기자가 될 수 없다.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서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밝혀야 할 기자들이 그런 허황된 선민의식으로 오염이 되어 있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도권 기자들의 기자정신 회복을 촉구한다.

* 필자는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 부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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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18 [17: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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