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KBS(한국방송공사)주변에는 난데없이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천여명이 넘는 개신교도들이 모여서 KBS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른바 'KBS 기독교 탄압 방송 철회 촉구대회'라 명명된 이 집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대표회장 길자연 목사. 이하 한기총)이 주최한 행사였다.
이들이 이러한 행사를 개최한 이유는 이달 2일 저녁 8시 방송 예정인 KBS 1TV <한국사회를 말한다>(책임프로듀서 황용호) '선교 120주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라는 프로그램의 방송철회를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한기총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시청거부 및 시청료 분리징수 거부를 위한 1200만 서명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이달 2일 방송예정인 KBS 1TV <한국사회를 말한다> '선교 120주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라는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길래 한기총 등에서 실력행사도 불사하면서 이를 철회시키려고 총력을 경주하는 것일까?
방송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제작팀의 설명을 빌자면 선교 120년을 맞은 한국 개신교가 그간 한국사회에 미친 공(功)과 과(過)를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알리자는데 이 프로그램의 기획 및 방송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한기총 등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실례로 한기총 총무를 맡고 있는 박천일 목사는 "지금까지 입수한 정보와 자료를 종합해보면 한국교회의 역사와 과제를 안티세력의 주장과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독교를 표적삼아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여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방송을 제작 방송하는 것은 종교탄압"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프로그램을 두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해석이 이렇게 상반되는 현실도 기이하거니와 이 사태를 두고 언론권력과 종교권력의 충돌로 풀이하는 일각의 현실인식도 매우 실망스럽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온 이래 한국개신교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개신교는 교육과 문화, 복지 등의 측면에서 한국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군사독재시시절에는 민주화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처럼 개신교 역시 이러한 이치에서 벗어나 있지 못한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신사참배, 친일의혹, 군사독재정권과의 유착 등이 한국 개신교의 부끄러운 과거라면 성장제일주의, 대형화 경쟁, 목사직 세습, 불투명한 재정운영 등이 현재 한국 개신교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구체적인 증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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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일절 시청앞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 삼일독립만세날 나온 성조기, 누구를 위한 친미인지 기독교인들의 역사와 사회의식을 다시금 생각케 한다 ©대자보 자료사진 |
더욱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개신교단 내의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들의 현실인식과 언행은 지나치게 극우냉전적이고 친미반북적인 시각에 편향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시국관련 각종 기도회에서 보인 바 있는 목회자들과 신도들의 여러 행태들은 비기독교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지금 개신교 외부에서 개신교의 문제점을 관찰하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한국개신교의 진정한 거듭남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숫자가 전 인구의 4분의 1에 가깝고 더욱이 그들 중 상당수가 주일성수와 십일조에 열심인데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더 나아가 한국사회가 이른바 '하나님 나라'에 가까워지지 않는 까닭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네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설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매주 교회에서 듣고 배울 성도들의 삶이 기복주의에 머물러 있고 사회와 인간에 대한 시선이 협소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금 한국개신교는 국보법 폐지와 수도 이전,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할 때가 아니다. 지금 한국개신교에 필요한 것은 처절한 자기반성과 거듭남의 다짐이다. /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