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라가 연쇄살인범의 경악스런 범행에 떠들썩하지만 이 사건과 야당의 대표를 내세운 문제의 패러디 사진의 맥락을 뜯어보면 전혀 관계없다고 할 수 없는 점이 눈에 띈다. 정도의 차이는 크지만 여성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심과 공격성의 표출이라는 점만큼은 뒤의 경우에도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 패러디 사진을 놓고 성적 비하 시비가 일자 작품을 옹호하는 이들이 특정한 여성 정치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변명을 단 것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패러디 대상은 한나라당일뿐이니 여성에 대한 성적 폄하 운운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한 정당으로 풍자된 대상이 왜 하필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대표가 여성이니 그럴 수 있지, 라는 말은 안 하는 게 좋다. 박 대표의 몸만 빌렸을 뿐 그를 풍자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성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게 여성이든 남성이든 특정한 성적 자질을 부여했다는 전제가 깔린다. 한나라당이 여성으로 풍자된 것과 박 대표가 성적으로 공격받는 일이 무관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그가 가진 성적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한 풍자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표의 여성성이 풍자의 대상이 된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성 정치인은 왜 성적 패러디 대상이 될 수 없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오히려 ‘양반’인지도 모른다. 여성과 성적 풍자의 결합에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는 사람에겐 이런 말을 돌려주고 싶다. 여성 정치인을 다루는 패러디 소재가 왜 하필 ‘성’이어야 하느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성과 관련하여 명예롭지 못한 언행을 한 적이 없다면 성적인 조롱감이 될 이유는 없다. 그래도 여자라고 성적인 풍자를 못하라는 법이 있냐고 말하는 바보가 있기 마련이다. ‘바보’는 우리 사회에서 성과 관련한 권력이, 성의 분배가 공평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패러디 사진에서 박 대표로 희화화된 여자의 행동을 불미스럽게 만듦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는 것은 ‘성’이다. 사진 속의 여자가 무슨 잘못한 일을 했다거나 어쨌다거나 하는 정보는 전혀 없다. 그저 성을 암시한 포즈를 취한 것밖에 없는데도 여자는 남에게 비웃음을 살 짓을 한 셈이 돼버렸다. 작가의 의도야 물론 ‘조선/동아’와 끈끈하게 결탁한 한나라당을 남자와 ‘잘못 놀아난’ 여자로 나타낸 데 있지만 그런 발상은 여자의 성적 행동은 조신해야 한다는 인식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성에 관한 자율적인 태도를 여자에게만큼은 엄격히 제한하는 사회적 편견에 철저히 의지한 것이다. 그 사진을 본 당사자의 반응은 결코 과민이라 할 수 없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면 비단 당사자만 모멸스러울까. 여성을 공격하는 데 성이 동원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수치심을 자극하여 입을 다물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기론 성적인 것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성이 남성에게 독점된 나라에서 남자 정치인들은 여성 정치인들이 받는 것과 같은 대접은 받지 않는다. 정작 성과 관련하여 풍자되어도 족한, 저열한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몇몇 남자 정치인들이나 목사의 경우처럼 남성성의 우월감을 주체 못해 사고를 치는 이들은 성적 수치심을 받을 만한 패러디 대상이 된 적도 없다. 남성의 성은 떳떳하고 당당한 것으로 인식되는 한 여자와 ‘잘못 놀아난’ 남자를 다룬 패러디는 구경하기 힘들다. 이 사건은 한바탕 여야의 힘 겨루기로만 비화된 덕분에 성적 폄하에 관한 논의는 사그라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다간 여성 정치인에 대한 패러디를 빙자한 성적 비하가 쏟아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무조건 성을 금기시하거나 언급을 자제하자는 말이 아니다. 여성이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살피자는 것이 아닌가.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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