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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낯설게 하기] 관과 의자
 
서현   기사입력  2002/09/03 [18:59]
- 닫힘과 열림에 대한 소고 -


{IMAGE2_RIGHT}남자는 원래 전도 유망한 회사의 경영인이었다. 그러나 IMF의 겨울, 그의 회사는 찬바람을 견뎌내지 못했다. 회사는 쓰러졌다. 그리고 그도 쓰러졌다. 쓰러진 그는 모욕당했다. 알랑거리던 지인들이 그를 외면했고, 어린 노조원들이 그를 무릎 꿇렸다. 그는 수치와 굴욕에 몸을 떨었다. 이승우의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는 이 상처받은 남자의 자폐의 기록이다.

남자의 자폐는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가 그만의 세계를 만드는 방법은 톱질과 못질이었다. 그는 톱과 못을 옆에 두고, 배달되어 온 적참나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질 적참나무의 형상을 상상했다. 적참나무는 과연 무엇이 될까. 아니, 무엇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을까. 꿈을 꾸듯 상상하며, 그는 조심스레 나무를 깎고, 나무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깎을 때는 깎는 일에만 열중했고, 뚫을 때는 뚫는 일에만 열중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적참나무의 형상은 한쪽 면이 터진 직육면 혹은 직오면체(그런 게 있다면)였다. 조금 다르긴 했지만, 그것은 분명 관의 모양이었다.

그 관 속에 누워, 남자는 마침내 안식했다. 관은 그가 만들어낸 그만의 세계였다. 그 그만의 세계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안전했다. 누구도 그를 모욕할 수 없었고, 누구도 그를 외면하거나 무릎 꿇리지 않았다. 그는 행복하다 말할 순 없었지만, 최소한 불행하진 않았다. 그는 만족했다. 만족한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그 그만의 세계, 즉 관 속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관 속에 누운 채로 자고, 먹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사색을 했으며, 사색을 하다 글을 썼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폐의 어둠 속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IMAGE1_LEFT}언뜻, 남자는 비현실적인 인물로 느껴진다. 실제로, 상처입고, 그 상처로 인해 세상을 등지고, 세상을 등진 채 톱과 못으로 자신만의 관을 만들고, 그 관 속에 누워 자고, 먹고, 책을 읽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이는 작가의 상상 속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소설이 그저 문자의 조합이 아니고, 작가가 단지 이야기꾼이 아니라면, 우리는 좀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해서, 묻는다. 남자는 과연 상상 속의 비현실적인 인물인가. 아닌 것 같다. 소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의 남자는 현실 속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가령 소설 속의 남자는 현실 속 지식인들에 대한 적실한 은유일 수가 있다. 현실 속 지식인의 삶은 상처입고, 그 상처로 인해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소설 속 남자의 삶과 정확히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현실의 지식인들은 또 깎을 때는 깎는 일에만, 뚫을 때는 뚫는 일에만 열중하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결국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만다. 그 자신만의 세계란 바로 '학문의 관' 혹은 '관념의 관'이다. 이 관은 남이 알아듣지 못하면 못하는 만큼 권위를 갖는다. 그리고 그 권위에 따라 관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제한된다. 지식인들은 비로소 안전하다. 이에 안심한 지식인들은 그 관 속에 누워 자고, 먹고, 책을 읽으며, 세상을 관찰한다. 세상을 관찰하다 가끔 관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에 대해 그들의 감상을 발표한다. 종종 감상이 일치하지 않는 다른 관 속의 지식인들과 논쟁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애초부터 논쟁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그 논쟁이 사람과 사람의 부딪침이 아닌 관과 관의 부딪침이기 때문이다. 관의 외벽이 깨지지 않는 한, 사람과 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하고, 사람과 사람의 연대는 더욱 요원하다.

이제,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나는 한번 생각해본다. 관은 정녕 필연일까. 목수가 톱질을 하고 못질을 하는 한, 지식인이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하는 한, 그들은 관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일까. 현실은 마치 그렇다고 말하는 듯하다. 허나, 낙관하자. 목수가 만들 수 있는 것은 비단 관만이 아닐 것이다. 예컨대, 목수는 의자도 만들 수 있다. 소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의 남자도 적참나무를 잘라 니은 자 모양의 긴 조형물을 만들었을 때,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그리고 스쳐 간 생각대로, 조형물의 네 귀퉁이와 중간에 모두 여섯 개의 다리를 붙였었다. 그러자 긴 의자가 만들어졌다. 남자가 만약 그 긴 의자를 다시 관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의자 위엔 방석과 쿠션이 놓였을 것이다. 아내와 딸이 찾아와 그와 오랜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내 모든 학우에게 말한다. 잠시 톱과 못을 내려놓고 생각하자. 니은 자 모양의 긴 조형물을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 선택은 순간이다. 치열한 의지가 없다면, 조형물은 나무의 운명을 따를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운명대로 만들어진 관들이 이 사회를 자폐의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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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9/03 [18: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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