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간복제 전후 … 살풍경 11개 장면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2/07/29 [16:37]
우리의 지혜는 우리의 광기보다 덜 현명하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모래시계 古今- 7.25> 1978년 7월 25일, 영국 북서부에 있는 올드햄의 어느 종합병원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루이스 브라운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아이는 올해로 스물다섯 살. 바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이다. 그 이후 '체외수정'으로 아기를 탄생시키는 기술은 계속 발전했으며, 지금까지 약 30만 명이 이 기술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2년 7월 23일, 어느 인간복제회사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3개월 전 복제배아를 착상한 임신모 한 명이 한 달 전 국내에 들어와 현재 모처에서 복제인간 탄생을 준비중"이고 말하면서 자기들이 만든 배아세포 융합기를 '장터에서 약장수들이 약을 팔 듯이' 선전했다.


▲ 미국의 클로네이드 한국지부가 최근 인간복제 실험과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영국 BBC가 인터넷판에서 보도한 내용. 이번 '사건'에 대해 BBC 외에도 해외 주요 언론들은, 한국 언론들보다 훨씬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BBC


아이들 얼굴을 보았다

장면 1 : 추운 겨울날이다. 그런데 너무 덥다. 꼬마들이 골목길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포장마차 주위에 몰려 있다. 붕어빵 장수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붕어빵을 팔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붕어를 팔고 있다. 새로 만든 기계인 모양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틀에 밀가루 반죽을 넣으니 눈을 끔뻑거리는 붕어가 나온다. 붕어 가운데 한 마리가 길바닥에 떨어져,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고 있다. 내가 그 붕어를 집어들려고 하자 꼬마들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들 얼굴이 하나같이 똑같다. 아이들이 붕어빵이다.

마루 한쪽에는 인큐베이터

장면 2 : 초등학교 앞. 병아리들이 작은 상자 속에서 짹짹거리고 있다. 보송보송한 노란 털을 만져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표정. 호기심에 가득 찬 아이들의 눈동자들이 반짝거린다. 한 아이가 묻는다. "이거 얼마죠?" "오백 원."
한 아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사 들고 집으로 간다. 아이의 집에는 애완 동물이 많다. 개만 해도 푸들, 치와와, 불독, 차우차우, 달마시안 등등 한두 마리가 아니다.
고양이도 있다. 뱀도 있다. 이구아나도 키운다. 복제된 원숭이도 키운다. 복제된 양 돌리도 키운다. 복제된 젖소 영롱이가 낳은 송아지도 키운다. 그리고, 또 그리고. 마루 한쪽에 놓인 인큐베이터에는 인간수정란도 키우고 있다.

아빠를 한번 봐야겠다

장면 3 :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열여덟 살 먹은 소녀가 있다. 이름은 클레어. 소녀에게는 아빠가 '없었'다. 엄마 아이린은 마흔 살이 되던 무렵, 남편도 없이 클레어를 낳았다. 캘리포니아정자은행에 '저축'되어 있던 정자(精子)가 클레어의 '아빠'다. 클레어는 정자기증자를 만나고 싶어한다. 아빠로서? 아니, 친구로서!
미국에서는 매년 대략 5만 명 가량의 아이들이 '체외수정'으로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간과 같은 포유류는 체내수정을 해서 자녀를 낳는다고? 아니다. 인간도 개구리처럼 체외수정으로 태어나고 있다.

"자위하세요. 돈 드립니다"

장면 4 : 어느 인터넷 홈페이지. '신장 170센티미터, 금발에 푸른 눈, 아이큐 140인 난자'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팝업 창으로 뜬다. 미국의 어느 대학 구내. "자위를 하십시오. 돈을 드립니다"라는 공고가 붙어 있다.

'상품'에는 설명서가 붙어 있다

장면 5 : 종합병원의 불임클리닉. 정자를 팔고 싶어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 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 남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난자를 팔고 싶어하는 여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 여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불임 부부의 고통.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 병원들은 이 고통과 열망을 바탕으로 '장사'를 한다. 여기서는 정자와 난자가 '상품'이다. 이 '상품'에는 인종, 체격, 몸무게, 눈의 색깔, 머리 색깔 등의 설명서가 붙어 있다.

정말, 희귀한 사례다

장면 6 : 영국의 어느 병원. 어느 백인 부부가 시험관 아기를 낳는다. 흑인 쌍둥이다. 병원 측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백만 번에 한 번 일어날 희귀한 사례다. "
남아프리카의 어느 병원. 어느 흑인 부부가 시험관 아기를 낳는다. 외계인이다. 병원 측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천만 번에 한 번 일어날 희귀한 사례다." 폐경기를 넘긴 할머니가 체외수정으로 아기를 낳고, 죽은 남편의 아기를 낳고……

농가 소득 기대된다

장면 7 : 어느 가축인공수정연구소. 몸무게가 백 킬로그램이 넘는 덴마크산 수캐와 국내에서 사육되던 셰퍼드 수캐의 정액을 추출해서 토종 똥개 암컷에게 인공수정을 시켰다. 이 연구소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보신탕 용 개 수정이 성공하면 개의 품종 개량과 농가소득 증대가 기대된다"고.

선점하지 않으면 안된다

장면 8 : 어느 공청회 장소. 토론이 뜨겁다. 자, 여기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하나가 된 '수정란(fertilized egg)'이 있다, 이 수정란은 인간인가, 아닌가? 수정란이 태아로 발육되기 전까지는 인간이 아니고 그냥 세포라고 누군가 주장한다. 또 다른 이는 수정 후 14일까지는 그냥 세포이고 15일부터는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이 뜨거운 사이, 과학자들, 그리고 의사들은 이 배아(胚芽)를 나누어보기도 하고 쪼개어보기도 한다. 더 나아가 복제하려는 체세포의 유전자를 생식세포인 난자에 넣어 유전자를 바꿔치기도 한다.
이 토론회에 나온 어느 생명공학 기업체의 대표는 생명 '공학'의 기술을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사람의 치아는 금으로 되어 있으며, 귀는 보청기로 만든 것이며, 성대는 쇳줄로 되어 있다.

여의도…국회는…'놀고 있다'

장면 9 : 여의도 국회. 놀고 있다. 계류 중이던 생명윤리법안이 홍수에 불어난 한강 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현재 인간 배아복제는 물론 인간을 복제한다 해도 전혀 막을 길이 없다"고. 그러자, 어떤 교수가 이렇게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 금지하고 있는 인간복제 실험이 만약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면 이는 국가적인 수치"라고.

" 미국에서 안된다면 한국에서…"

장면 10 : 미국의 어느 종교단체가 만든 회사의 기자 회견장. 외계인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고 있는 이 종교단체의 지도자는 '라엘'이라고 알려져 있는 클로드 보리옹이란 인물. 그래서 '라엘리안'이라고 불리는 이 종교단체는 한편으로는 '클로네이드'라는 인간복제회사를 만들어 인간복제 실험을 계속하면서, 미국에서 인간복제 금지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애를 쓰고 있다.
'클로네이드'는 이렇게 주장한다. 한국에 직접 자회사를 설립하여 배아세포 융합기를 만들고 있으며 이 기계가 앞으로 바이오산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니 이 회사에 투자하라고. 또한 자기네들 기술로 한국에서 첫 번째 복제 인간이 태어날 거라고.
한국 어느 곳에서 태어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비밀이다. 말해줄 수 없다고. 그래도 어찌되었든, 이것은 세계적인 빅뉴스다. 유수의 언론사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기사를 쓴다. 기사에는 꿀과 독이 발라져 있다.

여름이다, 그런데 춥다

장면 11 : 더운 여름날이다. 그런데 너무 춥다. 나는 회색 도시 한 귀퉁이에 있는 사무실에서 서쪽 지평선으로 넘어가고 있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복제인간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간 '블레이드 러너'의 모습이 언뜻 창문에 비쳤다.
블레이드 러너, 레커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블레이드 러너를 보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래 나는, 인간이고 싶어. 나라는 존재는 나 하나면 족해. 또 다른 '나'를 만들지는 말아야 해!" 해는 지고, 언뜻 내 얼굴이 유리창에 비쳤다.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 그 끔찍한 프랑케슈타인의 모습이.
  
* 본 기사는 안찬수 기자가 작성한 것입니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net/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07/29 [16:37]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