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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투쟁, 발전파업이 남긴 과제
사회적 연대와 내외 역량의 결집으로 돌파해야ba.info/css.html'>
 
노항래   기사입력  2002/07/20 [02:03]
{IMAGE2_LEFT} 4월 초, 발전노조의 경이적인 38일 파업이 중단된 이후에도, 상황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선 발전소 매각정책이 노․정간 팽팽한 주장의 불일치 상태에서 정부는 애초의 계획대로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발전노조 파업과 관련한 4.2 노정합의를 통한 민주노총의 총파업 철회 결정 후 노정합의 경위 확인 및 내용 비판, 파업철회 결정의 문제점 논란, 비대위 구성을 둘러싼 혼선과 몇 차례의 주요 의결단위 회의 유회 등 한 달 여 간 후유증이 계속되었고, 비대위 출범 이후에도 발전노조 정상화는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관련기사]취재부, 발전파업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대자보 88호

발전노조는 주요 지도부 구속․수배 상태에서 348명 노조간부 및 현장 지도력 해임,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가처분 결정에 따른 급여가압류, 복귀서․서약서․감사 등을 둘러싼 회사측의 반인권적 탄압과 노조원들의 반발 등 노사․노정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노조원들 사이에는 감정섞인 파업 평가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사태 수습을 위한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대안이 난무하는 속에 조직 갈등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산자부 및 발전회사 경영진은 파업복귀 이후 산별노조 와해와 기업단위 노조로의 재편을 기도하고, 해임자 처리, 손배 가처분 등의 공세를 이를 위한 지렛대로 삼고자 하는 내부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확인한 노조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이렇듯 발전노조 파업의 쟁점, 그리고 파업으로부터 비롯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냉정히 말하면, 어느 지점을 살피더라도 노조에 유리한 논란이 아니다. ‘경이적인 파업’은 지금 ‘조직 수습’을 위한 벼랑끝 대치로 내몰려 있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서,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당면한 위기를 수습하는데 온 힘을 모은다는 원칙위에 서야할 것이다.

무엇이 38일 투쟁을 가능케 했는가

2월 25일을 앞둔 시점에서 노동계에서 발전노조의 파업을 말하는 이는 적지 않았으나, 그 파업의 양태가 어떠할지, 최소한 초기 파업 참여 정도가 어떠할지를 가늠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발전노조 집행부도 마찬가지 였다. 심지어 정보경찰 등 공안 관계자들은 발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주었으면 좋겠다는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조합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강성집행부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다는 것이다.(이런 구상은 당시 파업에 돌입한 공공 3사 중 가스, 철도는 파업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발전만 파업을 예상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안적 판단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뚜껑을 열어 확인한 첫 파업대오는 놀라운 것이었다. 5,700 조합원 중 5,300여 명, 그야말로 압도적인 참여였다. 서울대에 모인 조합원들은 스스로 놀랐다.

누구도 자신있게 발전노조의 파업 양태를 말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발전노조의 파업이 준비되고 기획된 파업이라는 주장은 유보해야 한다. 발전노조는 출범한지 6개월을 조금 넘고 있었고, 조합원 조직화는 매우 부실했다. 현장의 지도력은 굳건하지 않았고, 조직내적 통일성 역시 대규모 파업투쟁을 감당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발전노조의 부실을 메꾼 것으로 역시 철도노조의 연대파업 돌입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철도와 발전은(그리고 가스노조까지) 각각의 부족을 연대투쟁이라는 틀 속에서 보완하면서 공언해온 파업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철도, 발전, 가스 노조는 2001년 10월 말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한 후 두 차례의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해서 민영화 정책 철회라는 공동의 요구를 제기해왔고, 집행부 차원의 공동행동, 기자회견과 간부수련회, 파업찬반투표 등을 통해서 공동의 일정을 수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공투위 활동은 각 조직의 부족점을 보완하고, 부담스러운 파업돌입 결단을 관철할 수 있게한 동력이 되었다.

단순하지만, 발전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이 파업 돌입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 역시 틀림없다. 민주노총(및 공공연맹)은 발전노조 집행부의 취약한 경험을 보완하고, 파업돌입으로 가는 과정을 안내했으며, 과정 하나하나에서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를 높이도록 작용했다. 파업 초기 ‘민주노총’에 열광하던 파업 참가 조합원들의 반응은 이를 확인시킨다. 이런 이유들로 발전노조(그리고 넓게는 공공3사)의 파업이 민주노총 등 노동계 한 주체들의 부추김으로 이루어졌다는 정부측의 인식을 낳았다.

그러나 이러한 상급단체의 역할은 부분적으로 파업을 ‘있게한’ 작용이었지만, 그것이 대규모 파업 참여와 38일 파업의 동력 그 자체일 수는 없는 것이다. 동력은 역시 내부에 있다. 파업 초기 서울대에서 마주친 조합원들의 흔한 반응 중 하나는 “산자부 너희들, 이젠 죽었다”는 것이었다. ‘허둥댈 산자부를 생각만 해도 묶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는 것이었다.

산자부는 전력산업(한전, 발전자회사 등의 기업)에 대한 감독주무부처다. 94년 이후 전력산업 구조개편 연구를 지휘하고, 98년 이후 발전소 매각 방침을 결정하고 추진해온 부처다. 일상적으로 한전과 자회사(파업에 참여한 발전노조 조합원이 속한 발전자회사는 한전 자회사임)의 예산, 조직, 인사, 노사관계를 감독하는 부처다. 이 부처의 관료적 통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는 공기업 일반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이 파업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집약되었다. 물론 감독부처가 산자부라는 것일 뿐, 이 불만은 공기업에 대한 관료적 통제, 곧 정부행정에 대한 공기업 종사자의 누적된 불만 그 자체다.

발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게된 2월 말은 그동안 정부가 거듭해서 밝힌 ‘5개 발전자회사 중 1개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2002년 상반기다. 정부는 2월 말까지 매각을 다짐하다가 일정이 밀리자 2월 말까지 매각대상 발전회사를 선정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 2월말이었다.(물론 파업에 돌입하지 않았다 한들 정부가 매각 대상 회사를 공언대로 선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미 발전매각과 관련한 정부 자신의 계획은 집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난 3~4년 동안 전력산업 구조개편, 그리고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전력산업의 분할․민영화가 차근차근 진행되어 왔으나, 여전히 전력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내부 구성원의 부동의, 반발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전력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당사자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진행을 지켜본 조합원들의 분노 역시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어 왔다. 그리고 매각 대상 회사 선정, 상반기 중 1사 매각 완료 방침을 대하면서 누적된 분노는 출구를 찿고 있었다 할 것이다.

파업의 동력은 공기업에 대한 관료적 통제 그 자체에 있었다. 정부는 전사회적인 문제일 것이 분명한 발전매각정책을 사회적 합의나 민주적 내부논의를 무시한 채 밀어부쳤고, 조합원들은 사회적 의제에 대응하지 않는 정치권(정치권은 정치가들의 패거리 유지와 여야간 권력분점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서로 갈등하고 조정해왔다. 발전매각 정책 역시 그렇게 검토해왔다.)의 알맹이 없는 논의를 지켜보아와야만 했다. 자신들의 일터인 발전소의 매각정책에 반대하지만 그 반대를 표출할 수단이 없는 노조원, 심지어 직원 전체의 분노는 마침내 노조의 파업 선언을 통해 순식간에 타올랐다. 이 점에서 이번 파업을 ‘2000년 12월 파업이 지연되었다가 분출한 것’이라는 평가 역시 틀림없는 것이었다.

한편, 발전노조원들의 특유의 집단성(팀작업, 다수의 수도공고 출신들, 그리고 무엇보다 사택생활을 통해 이루어진 생활적 결합 등) 역시 초기 산개투쟁은 물론, 38일을 관통하는 투쟁의 주요 동력이었던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사택생활을 통한 생활의 결합은 장기파업에 따른 조합원들의 동요를 조직내부로 수렴하면서 투쟁대오를 지속시킨 주요 동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3월 이후 강도 높은 발전소별 가족대책위원회 구성 및 활동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IMAGE1_RIGHT} 4월 26일 이후 파업 중단 때까지 계속된 산개투쟁 역시 역사적이다. 조합원들은 고립(? 인터넷, 무선통신은 고립을 견디는 수단이었고, 산개조를 연결하는 수단이었다)을 견디며 투쟁대오를 지켰다. 수 차례의 ‘전원해임 협박’을 견디며 최후까지 3,500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대오를 유지했다. 파업이 지속되면서는 교섭에 대한 기대와 발전업무(특히 운전분야)가 요구하는 업무의 전문성 때문에 대체인력을 통해 견디는 회사측의 양보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실제로 합리적인 정부, 합리적인 회사라면 파업 중 교섭에서 노조의 요구에 ‘매각정책의 타당성 여부를 재검토해보자’는 수준에서 양보했을 것이다.)

또 민주노총의 연대투쟁(2.26 연대파업, 조합원 숙식제공, 3.26 대의원대회를 통한 연대파업 결의 등), 사회단체․민중운동단체들의 지지 등이 이런 내부 동력을 고무시켰다. 마무리 과정의 과오 때문에 이런 성과가 빛이 바랜 듯 하지만, 이를 소중한 경험으로, 자산으로 만드는 것은 파업투쟁 마무리 이후 노동계의 과제일 것이다.

공공부문 지배구조의 관료주의 바로잡아야

노동조합에 대한 관료적 대응은 이번 파업과 관련 주요 요구의 하나였던 단체협약 체결과 관련한 발전자회사 경영진의 대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범한지 6개월, 단체협약이 시작된지 4개월 여에 이르도록 노조와 발전자회사는 단 하나의 단체협약 조항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회사는 노조를 무시하고자 했고, 노조는 맞대응했다. 그렇게 교섭기간이 흘러 파업에 이른 것이었다. 경영자나 권력이 노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당연하다고 인식되는 우리사회의 매우 상식적인 관념, 이것이 사태를 키운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가 확인하고 배워야 할 것은 ‘노사자율’, ‘노사자치주의’야말로 산업현장의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통제는 반발을 부른다. 더구나 지금(민주사회라 하든, 민주화 과정이라 하든, ‘외피만 쓴 민주주의’라 하든) 통제는 기껏해야 집행부의 행동반경에 그칠 수 있을 뿐, 수많은 조합원, 더 많은 노동자의 저변에 흐르는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 투쟁동력과 관련한 인식이어야 하고, 교훈이어야 한다.

대중의 정서를 읽지 못하는 것은 관료적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 공안경찰은 물론이고, 작은 역량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면서 ‘돌다리도 두드려 가야 할’ 우리 노동계 역시 그렇다. 미리 읽지 못한 것은 흠이 아니다. 그러나 대중동력의 흐름을 한 두 가지 작용이 이룬 것처럼 해석하고 싶어하는 성과적 태도는 해악적이다.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정책에 맞선 대중투쟁

이번 발전노조 파업은 현 정부들어 더욱 노골화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구조조정)의 핵심의제인 ‘공기업 민영화’ 문제를, 대중적 투쟁을 통해서 그 해악성을 사회의제화하고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 투쟁이었다. 이 점에서 누가 무어라 한들 ‘세계사적 투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만 하다. 그러나 이 대중적 투쟁을 감당하기에 노조의 문제의식의 협소함은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선 발전노조는 발전매각에 반대하는 투쟁을 폭발시켰으나, 발전매각 주장을 포괄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대안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현재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진행중이다. 이미 발전자회사가 분할되었고, 한국전력공사에서 분리되었다. 기존의 한국전력공사 체제(발전-송전-배전이 통합된, 대규모 단일조직에 의한 전력공급체제)에 대한 다양한 사회집단의 반발도 현실로 존재한다. 이런 조건에서 노조가 내세우는 전력산업의 개편방향은 무엇인지는 이 쟁투에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여러 사회집단의 관심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전력산업은 지난해 1조 7천 억의 순이익을 내었는데 무슨 개편이냐”는 답에 안주할 수 없다. 더구나 진행중인 구조개편에 대한 노조의 의견, 이제 어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구조개편은 신자유주의다’는 교의만으로 매개 사안, 과정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이번 파업에서 두드러진 것은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촉발된 시민단체․민중운동단체의 적극적 의사표현과 활동이었다. 파업 돌입 이전까지 민중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단체 일부만을 포괄하고 있던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 결합하지 않았던 수많은 시민단체, 학자, 여론형성의 상징인 진보적 사회인사 등이 노동조합의 강고한 투쟁으로 견인되어, 노조의 요구․투쟁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정부는 발전소의 매각을 유보하여 사회적 합의에 맡겨야하며 발전노조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일찍이 단일 노조의 투쟁에 유례를 찿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3월 7일, “전력생산의 60%를 차지하는 5개 화력 발전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는 충분한 토론과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강원룡 목사 등 사회원로 988명의 성명서를 필두로,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3월8일), 박형규 목사 등 사회원로 5인(3월16일), 경제학․경영학 전공 교수 102인(3월 19일), 사회학 교수(3월20일), 교육의료 13개 단체(3월26일), 환경연합․녹색연합․참여연대․여성연합․민주노총(3월27일), 문화예술인 105명(3월 28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3월28일), 정치학자 30명(3월29일), 경실련(3월29일), 천주교 인천교구(3월31일), 영국 유학생 40명(4월1일), 대구지역 학계․법조계․종교계․시민단체 등 332명(4월1일), 그리고 한국산업노동학회 (4월1일)의 성명서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런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단지 노동조합의 투쟁을 빛나게 하는 보조장치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다. 노동조합이 촉발시킨 사회적 담론은 시민사회속에서 확대되고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투쟁 철회와 함께 집중점을 잃고 유실되어가고 있다.

민주노총의 연대파업 결의가 담고 있듯이, 발전매각정책 등 필수공공서비스사업(또는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 의제다. 이 점에서 무엇으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 정책에 맞설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민중의 파편화, 이중구조화, 내부 차별화를 지향하고 있다면, 이에 맞서는 대항론, 대항의 수단은 역시 ‘사회적 연대’일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단체의 성명서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위한 보조물이 아니라, 그와 같은 연대를 통해서만 신자유주의 정책의 후퇴․수정을 압박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 상급조직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협소한 문제인식과 경험적 대응은 이런 문제의식의 확장, 구체화에 실패한 것이다.

투쟁기조와 교섭기조의 불일치, 양 면의 편향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는 시민사회의 미성숙, 관료집단의 의사결정 독점 등의 조건위에서 관철되고 있다. 당연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민영화․유연화 공세에 대한 대응 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의 민주성 제고, 사회적 논의 활성화 등 관료적 의사결정구조의 개편에 대한 요구와 결합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의제를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관점 역시 절실하다. 이번 발전매각을 둘러싼 노정갈등, 그리고 사회적 갈등 역시 노정교섭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해결해 가는 것이 정당하다.(물론 노정간 교섭해야 할 사항이 없지 않고, 정책의 수립과정, 재검토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이해당사자로서의 발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발전소 매각이 5,700 여 발전노조 조합원과 정부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여전히 ‘사회적 해결책’의 모색보다는 노정교섭을 통한 해결에 집착했고, 정부와 노조간 엄존하는 역량의 불균형은 교섭의 파행을 불러온 원인이 되었다.
발전노조 조합원의 경이적인 투쟁이 불러온 새로운 국면은 사실상 기획되지 않은,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이었고, 상황은 노동조합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넘어서 있었다. 노동조합의 투쟁은 예상을 뒤엎고 강고하게 이어지는데, 투쟁의 승리적 귀결을 위한 전략은 부재했다.

민주노총․공공연맹․발전노조집행부 등은 치솟는, 또는 강고히 유지되는 투쟁동력을 감당하기에 급급했고, 정부의 완고함이 계속되면서 ‘끝까지 투쟁’이라는 단순전략으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파업대오 내에 있을 수밖에 없는, 대량해고 협박에 몰린 조합원의 동요는 내부적으로 거듭 확인되고 있었으나 겉으로는 계속 투쟁 기조만 되뇌어졌다. 그리고 3월 26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의 연대파업 결의가 있고난 뒤부터는 대오의 동요를 감추기 위한 무리한 투쟁방침이 연이어졌다. 4월 2일 이후 민주노총 및 철도노조 등을 내세운 제반의 ‘파업 결의 공표’는 기실 이 파업의 출발이었던 2월 25일의 ‘누구도 알 수 없었던 파업동력’ 보다도 더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정타결에 집착한 노동조합의 교섭전략은 투쟁기조와는 전혀 다른 기조였다. 4월 2일 이후 정부나 교섭단이 설명하고 있는 제반의 보고에 의하면 노동조합은 3월 8일 중노위 직권중재를 앞둔 시점부터 ‘민영화 노 코멘트’를 거듭 제안해왔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2월 말 파업돌입 전후에 파업을 막기위해서 또는 파업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서 정부가 내놓은 제안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3월 말 ~ 4월 초에 이르러 문제의 4. 2 합의에 까지 이르게 된다.

투쟁기조는 ‘계속 투쟁’이고, 교섭기조는 ‘끝내자’는, 투쟁과 교섭의 불일치가 계속된 것이다. 이는 투쟁에서의 좌편향, 교섭에서의 우편향이라고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조직 정상화를 위한 내외 역량의 결집 있어야

복귀 이후 발전 현장은 초토화하고 있다. 취약한 간부층이 현장으로부터 분리되고 단순하게 보면 해임자 규모가 348명에 이른다. 파업기간의 임금에 대한 무노동무임금 적용은 물론, 3,9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사측의 가압류조치로 급여의 절반 이상을 압류당하고 있다. 38일간의 영웅적인 투쟁의 주역들이 복귀서, 각서, 감사, 가압류 등의 공세에 무릎꿇고 있고, 투쟁기간 동안 가족대책위원회에 결속되었던 가족들은 이제 가장들의 ‘모난 행동’(?)을 말리면서 사측의 선처를 학수고대하고 있고, 이에 따라 가족대책위는 물론 사택단지의 냉기류를 만들고 있다. 조직 와해를 노린 회사와 관료들의 공세 역시 치밀하게 몰아치고 있다. 내부의 갈등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를 수습해야 한다.

위법적인 공세를 차단하고, 내부의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최소한의 노사교섭틀을 확보해서 현장을 보위하고, 조직을 지켜야 한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하나하나의 과제가 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그러나 조합원의 자신감만 복구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선 파업중의 크고 작은 과오에 대한 대중적 논의에 보다 열린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 인정할 수 있는 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럴 때만, 2월 25일을 전후한 시기에 분출하던 대중의 일체감, 38일을 관철한 동력을 복구할 수 있다.

이제 권력교체기다. 집권세력, 특히 관료집단의 실패를 추궁하면서 대중앞에 폭로하고 고립시킬 수 있는 계기를 얼마든지 만들어갈 수 있는 시점이다. 집권세력의 이완을 파고들어야 하고, 차기 권력을 노리는 정치집단의 성향을 가늠하면서 협상과 투쟁을 조율해야 한다.

조직 정상화를 위해서 파업 기간 중 치솟았던 발전 매각 정책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인 재검토 요구를 추스려야 한다. 현재의 탄압이 관계법과 상식을 초월한 만큼, ‘법의 준수, 인권 보호, 상식의 존중’ 등 최소한의 요구위에서 폭넓고 강력한 저지선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발전매각 유보 및 재검토 요구를 사회적으로 전면화해야 한다. 지금, 사회단체, 노동조합 상급단체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정부는 여전히 연내 1개 사 매각 방침을 되뇌고 있으나, 이것은 노동조합의 투쟁에 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언술의 측면도 없지 않다고 판단된다. 물리적으로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의 선거 등 부분적으로나마 열려질 정치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전력․철도 등 필수공공서비스사업의 민영화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해야 한다. 혹여라도 산자부 등이 관료적으로 결정된 기존 매각 방침을 졸속으로 추진할 경우 단호한 항의투쟁 역시 준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차기 정부로 정책 과제를 이관시키고, 당연히 사회적 재논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탄압으로부터 조직을 지키고, 사회적으로는 발전매각 방침에 대한 유보를 이끄는 과정이야말로 이번 투쟁의 성과를 유실시키지 않고, 38일의 투쟁을 새로운 단계로 높여가는 과정이다.

이 중차대한 과제를 이루어가는데서 가장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역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해임자 문제, 급여 가압류 문제 등 일선 현장 간부와 조합원 대다수를 옭죄고 있는 억압적 상황을 풀어내야 한다. 상식대로, 인권을 존중한다면 현재와 같은 무단탄압은 거두어져야 하며, 그런 상황인 만큼 내부․외부에 연대할 수 있는 근거는 얼마든지 있다. 파업 참여 전조합원을 상대로 한 급여 가압류는 노동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자칫 노동조합의 존립근거를 부정하는 공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무단탄압을 폭로하고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사회권․인권을 지킨다는 목표 아래 연대를 실현해 나가는 것, 가장 낮게 넓게 움직여 가는 것, 이것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조직와해를 향해, 분산고립화를 향해 움직이는 사측의 탄압을 무력화시키고 내부․외부의 연대를 회복하는 것, 지금 이것이 가장 강력한 투쟁이다.

* 필자는 공공연맹 연대사업국장입니다.
* 이 글은 노동사회연구소가 발행하는 <노동사회> 6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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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20 [02: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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