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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노동정책은?
사회적 파트너쉽의 확립과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ba.info/css.html
 
박태주   기사입력  2002/07/20 [01:34]
{IMAGE2_LEFT}현 시점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정책공약을 통해 차기 정부의 노동정책을 점친다는 건 쉽지않아 보인다. 노동정책이 구색갖추기 이상으로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선거전이 채 닻을 올리지도 않은 탓이겠지만 전체 유권자의 40%에 가까운 1,300만명이 임금노동자임을 감안한다면 뜻밖이기도 하다.


낙엽 한 잎이 가을을 알리듯

그렇다고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회창 후보의 성장우선정책과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노무현 후보의 분배중시정책이나 ‘규제된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은 확고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노사정위원회나 공무원 노조의 인정, 주5일 근무제의 도입, 그리고 공기업의 민영화 정책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표> 참고). 제비 한 마리로 여름이 온 것을 안다면 이를 통해 몸뚱아리 정책의 대강을 짐작못할 바도 아니다.    


<표>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노동정책 비교
                                  이회창 후보                      노무현 후보
경제정책 기조    시장과 효율우선, 자유시장경제  분배 및 복지중시, 규제된
                                                                     자유시장경제
노사정위원회     장기적으로 폐지                     사회협약기구로 기능강화
공무원 노동조합 노조명칭 사용곤란, 단결권       노조명칭 사용, 단체행동권
                         및 협약체결권을 제외한         제외한 노동2권 인정
                         단체교섭권 인정
주5일 근무제      시기상조                               노사정합의를 통한 실시
민영화               공기업, 은행 및 정부산하 및    네트워크산업 민영화의
                        출연기관의 과감한 민영화           재검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사회적 통합의 조화

IMF에 의한 ‘경제신탁통치’와 더불어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경제․사회의 각 부문은 물론이거니와 노사관계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몰고왔다. 노사정위원회의 발족에 이어 민주노총과 교원노조의 합법화, 노동조합 정치활동의 보장 등은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민주화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생산적 복지’가 언 발에 오줌누기만큼씩이라도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민주적인 시장경제’라는 국정지표는 애시당초 ‘길쌈 잘하는 첩’만큼이나 양립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신자유주의 논리에 바탕을 둔 구조조정=인력감축이 국정지표를 대체하면서 이는 노사․노정간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민주노총이 김대중 정권의 퇴진을 주장하고 나서고 노사정위원회가 뒤뚱거리는가하면 주말이면 도심의 거리는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또한 넘쳐나는 장기실업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은 ‘2등 국민’으로 전락되면서 단순한 빈곤을 넘어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있었다. 특히 이들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버린 자식’취급을 받는가 하면 ‘대공장,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으로부터도 ‘남의 자식’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으로 소외되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정부의 노동정책은 바로 이러한 노사정간의 구조화된 갈등과 사회의 붕괴를 출발점으로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세계화에 따른 경쟁의 격화와 정보화로 대변되는 지식기반경제의 도래로 특징지워진다. 다른 한편 비정규 노동자의 증대와 고용불안의 심화, 그리고 소득분배의 악화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 경제는 ‘경쟁적이고 다이내믹한 지식기반경제’를 달성하고 나아가 ‘20대80의 사회’를 넘어 사회적인 통합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적 파트너쉽의 구축

우리나라에서 노사간의 구조화된 갈등은 한편으로는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발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별 노조체계의 표현이다. 노사관계를 사회적으로 조율(coordination)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에 다름 아닌 것이다. 노사관계에서 사회적 파트너쉽이 새로운 주목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파트너쉽(social partnership)이란 사회적 행위자(노․사․정)간의 협의를 통해 노동조합을 국가와 사회, 그리고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의 이익과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조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적 통합을 달성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사회적 파트너쉽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바탕위에서 이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필요로 한다. 먼저 민주적인 노사관계의 정립은 노동기본권에 대한 보장을 의미하며 여기에는 공무원 노조의 인정, 특수한 고용형태의 노동자(학습지 노동자, 보험모집인, 골프장 보조원, 지입차주 등)에 대한 단결권의 보장, 필수공익사업의 범위축소 및 직권중재 요건의 강화 등을 포함한다. 특히 공무원 노조의 경우 정부의 보수적인 접근방식과 노동탄압적인 대응이 오히려 사회적 긴장을 낳는 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공무원 노조가 없는 나라가 세계에 없으며 제한적이나마 협약체결권조차 없는 노조가 노조가 될 수 없다면 여론을 들먹이며 그 해결을 늦추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일 뿐이다. 오늘날 기본인권의 하나로 여겨지는 노동권에 대한 보장없이 파트너쉽을 운운한다는 것은 사용자 우위의 노무전략이자 강요된 노사협조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별 교섭의 점진적인 모색과 노사정위원회의 기능강화

참여적인 노사관계에서 핵심은 산업별 교섭체계를 구축하고 노사정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여 산업차원이나 거시적 차원에서 조율 메카니즘을 확보하는 일이다. 먼저 기업별 교섭체계는 이제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지적하듯이 역사적 사명을 다한 교섭체계임을 인식해야한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기껏해야 기업차원에서의 임금인상이며 그 수단으로서 파업이 사실상 유일한 실정이다. 게다가 조합원은 우리 사회의 ‘가진 자’로 제한됨으로써 비조합원들, 즉 우리 사회의 약자층을 소외시키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해법은 산업별(업종별)이라는 초기업별 교섭체계를 정착시킴으로서 교섭비용의 절감은 물론 노사관계를 산업의 차원에서 조율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이다.

노사정위원회는 조금만 시각을 넓혀보면 더 이상 존치여부에 대한 논란의 대상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코포라티즘의 종언’을 알린 1980년대 후반의 논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최근 ‘코포라티즘의 부활’(corporatist Sisyphus)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노사정위원회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들러리’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는 그것이 정부가 자본과 노동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대변한다는 조직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이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시행상의 착오가 있다고 해서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림석음을 범할 뿐이다. 오히려 노사간의 주요 쟁점이 국가사회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해결될 필요가 있다면 노사정위원회는 바로 그 핵심에 위치하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구조개혁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의 정부’라고 불릴 만큼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제살 도려내기식 인력감축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노동비용의 삭감과 내부경쟁체제의 도입, 복지축소와 민영화를 겨냥하였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충실한 것이었으며 또한 노동의 목소리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는 점에서 노동배제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노사정체제의 불안정과 더불어 발전노동자의 파업에서 보듯 대규모적인 노동자의 저항은 물론 사회적 긴장을 낳은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노동배제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향후의 구조개혁은 시장중심의 구조조정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와 노동자의 참여를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구조조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특히 노사갈등의 핵으로 나타나고 있는 공공부문의 경우에는 자율․책임 경영의 보장과 더불어 민간부문의 경영기법을 과감히 도입하고 동시에 노동조합 및 시민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효율성과 공공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민영화의 경우에는 전면적인 도입이나 거부가 아니라 사안별로 신중한 검토를 거쳐 이루어져야 한다. 민영화가 불가피할 경우에도 △사회적 합의의 추구 △민영화 이후에도 공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규제기관의 강화, 그리고 △관련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의 강구 등이 필요할 것이다.  

삶의 질의 향상은 사회통합의 출발점이다

일찍이 두르크하임(E. Durkheim)은 “사회의 유기적 연대야말로 경제성장의 활력소”라고 말하고 있다. 사회의 유기적인 통합이야말로 사회적 역량의 동원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외부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게 하는 버팀목이라는 것이다.

사회통합을 위해 핵심적인 것은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와 차별의 축소이다. 비정규직은 급변하는 과학기술사회에서, 그리고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확실한 시대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때로는 노동자들이 파트타임을 원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들의 규모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을 만큼 클 뿐 아니라(임금노동자의 52%, 여성의 70%), 사회적 약자층에 집중되어 있으며(여성, 노령자 및 저학력자), 정규직과의 차별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의 확대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호와 차별의 축소가 핵심적인 과제에 속한다. 특히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최대한 살려나가되 사회보험의 수혜 등 사회적 보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비정규직의 특성과 여건에 부합하는 특화된 교육훈련기회를 확충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조치는 입법화 등의 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협약정치’의 안정화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나타난다.

{IMAGE1_RIGHT}우리나라에서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양심의 현주소를 드러낸다. 2001년말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는 임금노동자의 2.5%에 이르는 약 33만명, 이중 77.4%인 25만 5천명은 불법체류자에 속한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는 ‘산업연수생’ 또는 불법체류자로서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인권유린이나 저임금, 송출비리, 사업장 이탈과 불법체류 등의 문제를 낳고 있다. 따라서 산업연수생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이주 노동자가 필요한 경우에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허가를 부여하여 국내에서 취업할 수 있게 하는 노동허가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할 것이다.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지만 30여년전 우리가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를 파견할 때의 상황을 돌이켜 본다면 그 해결책은 명확해질 것이다.  

‘근로를 통한 복지’의 확충

삶의 질의 향상과 관련하여 뺄 수 없는 사항은 이른바 사회복지의 확충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른바 4대 보험(국민연금, 의료, 산재, 고용보험)의 확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한 정치사회적 보완조치’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사회복지정책은 그 변화의 강도와 내용에 있어서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사회복지정책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 가장 혁신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4대 보험의 확대와 의료보험 조합의 통합, 그리고 공공부조의 패러다임을 바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단순히 구조조정에 따르는 ‘악어의 눈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특히 노동부문에서 나타나는 생산적 복지, 즉 ‘근로를 통한 복지’(welfare-to-work)는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동에 대한 분배차원에의 공정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복지정책은 그것이 실업자가 늘어나고 소득분배가 악화되는 가운데 사회통합을 추진하는 주요한 수단이라면 그것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데 이론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배려나 공정한 분배차원에서 최저임금의 상향조정과 저소득자에 대한 세제 지원, 그리고 근로생황의 질 향상을 위한 노동시간의 단축(주5일 근무제의 실시) 등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위해

노사관계 연구자로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국민경제를 위해서나 노동자와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 시스템은 기업주의 체계와 경제주의에 매몰되어 있었으며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배제시킴으로써 국제경쟁력의 약화는 물론 사회적 통합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여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자는 노사정이라는 사회적 행위자들 사이에 파트너쉽을 증진시키고 동시에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새로운 노사관계의 출발점이 될 뿐 아니라 변화되는 시장환경에 적응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누구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노동이 주요 이슈가 되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은 여전히 경제성장의 하위정책이나 심지어는 치안의 대상으로 다루어지며 이는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부의 원천을 생산하는 노동을 외면하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을 주변화시키는 것은 선거에서의 득표전략을 떠나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의 하나인 노동이 정치적으로 배제된다면 민주주의는 발육부진을 면치 못할 것”(최장집)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J. E. Stiglitz)교수가 강조하듯이 사회복지를 신장하고 사회정의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이익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와 함께 경제정책 수립과정에서 노동자(조합)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민주적인 절차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 필자는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 본문은 지난 7월 13일 노동사목회관에서 열린 대안연대회의 주최'차기 정부의 노동 정책 과제'에 대한 제6회 대안정책포럼의 발제문입니다. 발제문의 원 제목은 "사회적 파트너쉽의 확립과 삶의 질의 향상-차기정부에 바라는 노동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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