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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의 디지털觀点]사이버공간의 정치폭발
 
민경배   기사입력  2002/05/27 [03:32]
{IMAGE1_LEFT}조심스럽게 점쳐지던 인터넷 정치의 위력이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마침내 실체를 드러냈다. 진작부터 “이번 선거에서는 인터넷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었건만 정작 인터넷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선 정치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신의 홈페이지 잘 운영하고, 정치증권 사이트 포스닥의 인기 순위나 신경쓰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에 비해 노무현 후보 진영의 인터넷 활용은 단연 돋보였고, 결국 그 효과가 톡톡히 나타난 셈이다. 한마디로 `노풍'은 사이버 공간의 정치 폭발이 몰고 온 후폭풍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버 공간의 정치 폭발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10여 년에 걸친 국내 인터넷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시도되어온 다양한 실험들과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훈련된 네티즌들의 높은 정치 의식이 빚어낸 결과이다.

네티즌들의 참여 욕구가 가장 잘 드러난 공간이라면 인터넷 게시판과 토론방을 들 수 있다. 갑작스럽게 확장된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은 오랜 권위주의적 통치 경험 때문에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길 꺼려해 왔던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정치 발언대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다. 구체적인 정치 현안과 관련한 네티즌들의 의견 개진과 토론이 끊이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 인터넷 정치의 씨앗이 뿌려지게 되었다.

물론 그 중에는 기성 정치에 대해 냉소와 야유를 보내는 배설적 언어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인 네티즌들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안티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게시판에 뿌려진 인터넷 정치의 씨앗이 현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거름삼아 안티 사이트라는 네거티브적인 방식으로 첫 싹을 틔운 것이다. 네티즌들은 키보드 두드리는 것으로 기성 정치에 대한 화풀이를 대신했고, 그래서 정치적 비판과 견제는 풍성했지만 안타깝게도 생산적 고민은 드물었다.

네티즌들의 네가티브 캠페인이 그 꽃을 활짝 피운 것은 지난 2000년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가 주도한 낙천·낙선 운동을 통해서이다. 총선시민연대의 홈페이지에는 모두 92만 5천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갔고, 게시판에는 1만5천여건의 글이 올라오는 등 네티즌들의 뜨거운 참여가 모아졌다. 그 결과 낙선운동을 전개한 대상이 됐던 후보 86명 중 68.6%인 59명을 낙선시킴으로써 실질적인 유권자 혁명을 이끌어 냈다.

{IMAGE2_RIGHT}이번 민주당 국민참여 경선은 이렇게 성장해온 인터넷의 정치적 역량이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 첫 계기였다. 특히 노풍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한 노사모의 활약은 지금까지 배설적이고 네가티브적으로 치닫던 네티즌들의 정서를 온라인 팬클럽이라는 포지티브적 방식으로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킨 소중한 경험이라 하겠다. 단순한 냉소와 거부를 넘어 적극적으로 지지를 조직하고 이를 확산시키면서 스스로가 거대한 파워 집단으로 성장하는 새로운 참여 모델의 가능성이 노사모를 통해 구체적 현실로 제시된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정치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의 민주주의 모델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도 아직 인터넷 정치는 온라인 투표(e-vote)나 온라인 홍보(e-campaign), 온라인 모금(e-fundraising) 등 제도화된 위로부터의 정치과정을 전자적 방식으로 대체함으로써 효율성을 증대시키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와 비교해 본다면 최소한 인터넷 정치에서만큼은 우리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선구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듯 하다.

하지만 인터넷 정치는 이제 겨우 첫 단추를 꿰었을 뿐이다. 이것이 단지 선거라는 특수한 시기에만 나타나는 일회성 폭발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적 정치과정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정치인과 유권자가 인터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고, 미국의 시민단체 코먼코즈(Common Cause)나 CAGW(Citizens Against Government's Waste)처럼 인터넷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의회나 예산집행을 감시하는 등 일상적 활동모델이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우리의 네티즌들은 그만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필자는 사회학박사로 사이버문화연구소 소장입니다.
* 본 기사는 한겨레신문(5.15)에 기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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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27 [03: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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