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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N'Roll Diary] 키보드와 기타에 얽힌 추억
 
김수민   기사입력  2002/07/29 [19:32]
- 행복했던 장난 -


기타를 버렸다.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깁슨형으로 생긴 그 기타에는 테일 피스라는 부분이 필수였는데 테일 피스는 한 10만원 쯤에 살 수가 있었다. 10만원을 투자하기에는 너무 낡은 기타였고 차라리 새것을 하나 구입하는 편이 나았다. 3년간 내 방에 서 있었던 기타는 집밖에 나앉게 되었다.

{IMAGE2_LEFT} 기타는 처음부터 늙어 있었다. 교회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 그것을 친구가 내게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 기타를 받으면서 다른 한 친구를 떠올랐다. 사이가 소원해져 있었지만, 이 기타는 그가 가지는 게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제3자를 통해 그를 불러 내었다. 하지만 그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보내다가 나도 사라졌다. 그리하여 기타는 내 것이 되었다. 그로부터 일년 반쯤 지나서 대학입시가 끝나고 그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물이지만 그 기타라도 받았더라면 그의 기타 인생도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 고물을 들고 대충대충 치기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그 시절 친구들을 모아 밴드를 시도했다 실패한 이력이 있는데, 포지션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보컬이었다. 고교 아마추어 락그룹에서 보컬이라는 기표는 두가지 기의를 가지기 십상이다. 하나는 물론 '노래 부르는 넘'이겠고 나머지 하나는 '악기 다룰 줄 모르는 넘'이다.

   사실 중2때부터 집에 어쿠스틱 기타가 있었으나, 열의 없는 주인은 연습을 게을리했다. 손놀림은 더뎠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까지 코드를 제대로 외지 못하는 상태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칠 수 있게끔 외워둔 곡이 하나도 없다. 고교시절 나는 '핫뮤직'에 연재하던 김명기의 '보컬 길들이기' 등에 열중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전기기타(어른들은 이를 '전자기타'라고 부른다)를 손에 넣은 것이다. 여전히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러나 이펙터를 살 틈도 없었지만 앰프에 잭을 연결하여 소리를 뭉개는 정도로도 나는 일렉트릭 사운드의 안온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연주 목록은 늘 같았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Breaking the Raw',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독자들도 이 곡들의 기타 리프를 들으면 아, 할 것이다. 락음악 기타리프는 쉬울수록 머리 속에 또렷하게 남는 법인데, 그것의 미학을 더 깊이 깨우치는 방법으로는 '직접 연주해 보기'가 있다. 이런 식으로 아마추어 락키드들이 간결한 락 리프의 멋과 맛을 익히곤 한다.

  내가 기타를 얻게 된 그 해 생일에, 부모님으로부터 키보드를 선물 받았다. 솔직히 부모님이 내가 음악을 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찬동하고 나서는 분은 아니었다. 어쩌면 방황으로 성적만 떨어뜨리고 있던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잡고 얼마간의 취미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우등생 반열에 다시 서도록 부모님께서 배려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강고한 사회주의자들의, 복지 제도는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시키려는 장치라는 주장이 문득 떠오른다) 키보드는 건반 연주와 함께 여러가지 음색과 리듬을 낼 수 있도록 고안된, 다른 종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키보드였다.

  나는 그것을 연주용이라기보다 작곡용으로 샀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2년간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지만,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는 피아노를 거의 치지 않았다. 손이 굳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을 때 양손을 어떻게 놀려야 할지 매우 난감해 했었다. 양손 사용이야 가능하지만 익숙하게 놀려지지 않는 손가락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작곡, 편곡에 능한 것도 아니었다. <코르위붕겐>이라는 유명한 책으로 시창을, 나름의 방법으로 청음을 연습했지만 10대 후반이 다 되서 악보와 친밀해지기란 참 어려웠다. 최근에 화성학 책을 잡고 씨름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내가 키보드 앞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다양한 음색과 리듬을 끌어 들여 '장난'을 치는 거다.

{IMAGE1_RIGHT}  생각해 보니 내가 키보드로 작업을 한 기억이 있기는 하다. 고2 겨울에 있었던 학교 축제 때였는데, 랩 동아리를 하는 애들이 나에게 '백 그라운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곡목은 '허니 패밀리'의 <랩교>였다. 나는 부탁을 받았을 때 걔네들이 날 시험하려는 의도도 있음을 간파했다. 곡을 들어본 뒤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건 아무나 만든다.' 나는 그들에게 되물었다. "건반 사운드도 깔아줄까?" 그들은 드럼-베이스 파트만 작업해달라고 하였다. 방법은 간단했다. 대충 비슷한 리듬을 깔아놓고 베이스 음색을 설정한 뒤 건반을 치며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계속 연주했다.

  강산에는 일본에서 골방에 틀어 박혀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습한 걸 녹음하고 또 그걸 들어보며 행복에 빠졌다고 술회한 바 있다. 나 역시 기타와 키보드를 막무가내로 어루만졌을 때, 행복했었던 것 같다. 궁금한 게 있다. 돈으로 장난쳤던 게 들통난 거대기획사의 아무개 씨는, 처음 악기를 접하면서 느꼈던 짜릿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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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29 [19: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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