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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글을 쓰는가?
잃어버린 정체성(Identity)과 나를 지키려는 몸부림ba.info/css.html'>
 
배정원   기사입력  2002/07/18 [22:27]
{IMAGE1_LEFT}내가 정식으로 대자보에 글을 올린건 올 5월 4일이다. 5월 4일부터 현재까지 약20여편의 글을 대자보에 걸었다. [세상보기]와 [영국보기]에 대부분의 글을 적었고 [반론]글도 3편이나 된다. [영국보기]는 주로 영국의 민영화, 영국노동당 경제정책, 영국정치, 스코틀란드, 영국왕실에 관한 글이다. [세상보기]는 조선일보 비판, 합리주의의 허구, 원정출산, 부시비판, 국민의 정부는 미군의 시녀인가?, 카나리아군도 등의 글이다. [반론]은 한겨레기사의 영국경제, 임권택감독의 칸영화제 수상에 대한 반론글이다.

한달반 동안 나는 미친놈처럼 열정적으로 글을 마구 썼다. 글쓰기에 무슨 신이 들린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간다. 다행히 그 기간에 휴가를 여러번 낼 수 있어 글쓸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구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글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내성격이 원래 딴지를 걸고 논쟁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 어쩌다 대자보에 반론글을 3편이나 쓰게 되었다. 반론은 진짜 힘이 든다. 반론으로 끝나버리는 문제가 없는데 반론에 대한 재반론 또 그것에 대한 반박 등...끝없는 소모전이 가능한 것이 바로 반론이다.

왜 내가 돈안되는 일, 그것도 시간과 정력을 들여 글을 많이 걸었는가는 내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된다. 나란 인간은 종종 내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하긴 우리가 하는 일이 무조건 타당하고 합리적이진 않다.

난 외국에 산지가 벌써 강산이 두번 변하고도 조금 더 된다. 한국을 떠나면 무조건 한국을 사랑하게 된다던가. 내가 사는 곳은 한인도 별로 없다. 주재원과 유학생들이 좀 살지만 하는 일이 서로 다르고 난 한인교회를 나가지 않으니 또한 만날 일이 없다.

난 모국어를 그리워 한다. 한인들과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 한 시간 이상을 통화한다.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이다. 한국에 전화를 해도 한시간은 기본이다. 한국말로 진탕 말하고 나면 속이 시원한 기분이다.

그전 스코틀란드에 있는 스털링대학의 대학원에서 공부했을 당시 대학의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기사를 자주 보기도 했지만 그후 런던에서 일을 했을땐 주로 런던에서 발행되는 한 두개의 한인신문과 잡지에서 한국소식을 접할 수 있었고 한인들과 거의 매일 접촉했었다. 그러다 웨일즈로 이사와서는 한인신문 잡지를 거의 보지 못하고, 가끔 런던에서 부쳐주는 한인 신문에 한국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2000년 1월에 컴을 구입하고 인터넷을 설치한 후로는 한국소식을 마음대로 장시간 보는 희열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다 올 5월 초부터 이 대자보에 들어와 용감하게 글을 남긴게 대자보와의 인연이다. 내겐 인터넷은 문명의 이기이다. 인터넷이 아니었으면 대자보에서 이렇게 글로서 대화하고 제작진들을 알 수나 있겠는가?  

그런데 내가 놀란건 인터넷에 이해못하는 단어들이 수없이 보여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여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앤, 졸라, 걍, 당근, 강추, 벙개 등등이다. [펌]이란게 무언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감을 잡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내가 한국을 떠난지가 너무 오래되고 그나마도 한국신문을 정기적으로 구독하지 않았으니 변천된 한국어를 모르는게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5월초 대자보에 '합리주의의 허구와 한국사회'란 글을 적었는데 어떤 독자가 "배기자는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같다..."라는 내용의 덧글을 남겼다. 허긴 그 말도 일리는 있다. 아니 동의한다. 20년 이상을 한국이란 나라를 떠나서 외국에 오래 살았으니 엄청난 속도로 변한 한국사회를 내가 어떻게 제대로 이해한단 말인가. 그래도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심성과 사고방식은 이해한다.

그리고 막상 글을 쓰려니 그것도 처음엔 쉽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까닭에 특히 어휘력이 많이 딸렸고 표현이 거칠고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지금도 그런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결국은 글을 많이 써봄으로써 문장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내겐 글쓰는 작업은 곧 잃어버린 나의 정체성(Identity)을 되찾는 작업이다. 혹자는 글쓰는 것하고 정체성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나의 생활어는 당연히 한국어가 아닌 영어다. 영국에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런던에서 한인회사에 잠시 일했을땐 한국어를 사용했지만, 일본회사에서 2년 남짓 재직했을땐 주로 일본어와 영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영국 생활에서 대부분 영어를 주로 사용한 셈이 된다. 직장에서는 물론 영어로 말한다. 모든 서류도 영어로 작성한다. 꿈도 영어로 꾼다. 나는 자주 한국에 관한 꿈을 꾼다. 깨어나 보면 '아, 여기는 한국이 아닌데..' 하곤 한다. 길가다가도 한국 생각을 하는데 주위를 돌아보면 한국은 아니고...그전에는 한국에 대한 생각없이 (생각이 나더라도 억지로 잊어 버릴려고 했지만) 살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주 한국 생각이 난다. 여기는 한국어와는 거리가 먼 세상이다. 그러니 모국어로 생활하고 모국어로 매일 글을 보는 대자보 독자들은 내가 보기엔 너무 행복하다. 적어도 모국어로 인한 나의 언어고민은 가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국인은 한국인일 수 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영어보다는 그래도 한국말이 편하다. 아무리 현지인과 열심히 영어로 말해봐야 내 모국어보다는 못하지 않는가.

{IMAGE2_RIGHT}이런 환경에서 열심히 대자보에 한국어로 글을 쓰고 인터넷에서라도 한국분들과 열심히 우리글로 대화를 나누어야지만 22년동안 나의 일부분이었던 한국어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고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국적은 편리상 취득한 것이지 국적이 변경되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한국인이 영국인이 되지 않는다. 영국백인 흉내를 내지도 않고 낼 필요도 없다. 나는 여전히 한국인이다. 내 친구중에 부모가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출신인 친구가 있다. 그는 태어나기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대학도 이곳에서 나왔다. 이친구가 이디오피아로 장사하러 갔다가 문제가 있어 감방에 갇혔는데 그를 도와준 건 영국대사관 직원이 아니라 그의 친척과 친구인 이디오피아인 이었다고 한다. 영국 대사관 직원들은 콧빼기도 안비치더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영국 시민이면 뭘해.. 젠장 난 이등 국민밖에 안되는데...'

나는 지금까지 최선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본다. 나는 늘 도전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인은 우수하다. 머리좋은 민족이다. 여기사는 현지인들은 한국인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지금은 도망자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이름을 날렸던 김우중씨가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는 책을 썼었다. 그렇다. 이 좁은 국토에서 아웅다웅하며 다투지말고 더 넓은 세계로 시야를 넓히시라. 난 한국을 사랑하지만 더 많은 한국인이 세계로 나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중의 하나다. 한국에 살더라도 우물안 개구리는 되지 말자. 어쩌다 글이 옆길로 새버렸다.

나는 한국밖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눈으로 한국사회를 보고 글을 쓰려고한다. 국내에만 사는 분들이 보지 못하는 시각으로 한국을 보니 자연 내 글이 독자들에게는 좀 이상하게 보이는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시각도 토론을 통해서 또는 논쟁을 통해서 서로의 차이점을 좁힐때 우리는 '진리는 결국 한곳에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서로 흐뭇해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바라는 목적일지 모른다. 똘레랑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다는 말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다보면 관용하는 마음이 생긴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우리말로 열심히 글을 쓸것이다. 그것은 나를 지키려는 몸부림이자 한국을 사랑하는 나의 몸짓이기도 하다. / 논설위원

* 필자는 현재 영국 웨일즈 난민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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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18 [22: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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