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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사장님 우리 사장님
극기훈련과 히딩크 정신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7/12 [20:16]
{IMAGE1_LEFT}우리나라에서 사장님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나를 고용하고 월급을 줌으로써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분임에도 불구하고 사장님과 연관되어 떠오르는 이미지는 착취니 수탈이니 하는 살풍경한 단어에서부터, 배불뚝이 욕심쟁이라는 희화적 묘사까지 대개가 부정적 뉘앙스 일변도이다. 반면, 사장님은 아저씨(아줌마) 대신 일상 생활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 역시 가끔씩은 텔레마케팅 요원들로부터 사장이란 호칭을 듣기도 한다. '공사장님...' 어감상 어울리는 직책은 아닌 듯하다. 기회가 닿는다면 사장은 건너뛰고 곧바로 회장이나 총수로 논스톱 비상해야겠다.

가진 것 없고 갈데 없는 모든 인간은 취직을 해야 한다. 취직을 하는 순간 좋든 싫든 샐러리맨이 되기 마련이다. 사장은 전체 샐러리맨의 꿈이자 희망이다. 샐러리맨에서 출발해 사장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중의 하나가 최근 불거진 포토게이트 파문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이명박씨다. '신화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은 그가 처해 있는 작금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담았다고 간주해도 무방하다. 올챙이 적 기억하는 개구리는 신화 속에나 등장하는 희귀종이다.

연합뉴스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훑다가 재미있는 뉴스거리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나라 첨단기업과 우량벤처 기업들이 주로 상장된 코스닥 증권시장의 업무전반을 관장하는 모 회사의 신입사원 극기훈련에 관한 소식이었다. 내용인즉슨 조직의 단합을 도모하고 사원들의 사기를 앙양코자 새로 들어온 직원들을 인솔하고 사장되시는 양반이 심야등산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피식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히딩크 리더십의 특장과 우수성에 관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던 가장 대표적인 부류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다. 히딩크를 태운 비행기가 그의 모국 네덜란드에 닿기가 무섭게 히딩크 리더십의 핵심적 덕목들을 생매장하는데 앞장서는 족속들 또한 바로 존경하는 사장님들과 사랑하는 의원님들이셨기 때문이다.

무조건 족치고 다그치면 모종의 성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는 단순무식한 발상이 답답하다. 첨단산업과 IT기술을 취급하는 디지털 기업들의 생명선인 코스닥 증권시장 관리업체조차 사람은 짜면 짤수록 진국이 우러나온다는 아날로그적 사고방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발동이 걸린 김에 극기훈련에 대한 뉴스검색을 해보았다. 최근 회사 로고를 변경하고 사명을 개명한 어느 거대 은행은 직원들을 단체로 해병대에 입소시켜 정신무장을 강화했다는 기사도 결과에 잡혔다. 합병해서 몸집 불리고 간판 바꿔 달아 신장개업 하면 뭘 하나.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으로 부실을 털어 내어도 여전히 마인드는 담보물 잡고 주판알 퉁기는 전당포 마인드다.

이명박 사장님께 진실로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사람만 조져대면 만사 OK인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한 리더십이 대한민국 사장님들의 뇌리에 보편적으로 깊이 뿌리 박힌 패러다임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굳이 이사장님을 골라 인정사정 없이 못되게 패대기쳤기에 미안함은 두 배가 된다.

밤에 산 타는 일은 증권사 직원이 할 일이 아니다. 그건 산적들이나 할 짓이다. 그 시간에 자금난으로 고통받는 벤처기업을 찾아가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코스닥의 장기적 발전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극기다. 극기정신이 당장 아쉽다면 월급 석 달만 주지 마라. 아무리 쿨한 성격이 소유자라도 극기정신이 생기지 않을 레야 않을 도리가 없다.

은행이 무슨 동물농장인가. 왜 직원들을 억지로 '우리'에 가두어 사육하려 하나. 해병대 가서 진흙탕 뒤집어쓰고 뺑이 친다고 한국의 금융산업이 선진화하나. 닦달하고 볶아댄다고 생산성 높아진다면 그건 은행원이 아니라 노예나 머슴이다.

한때 프로야구에서는 동계훈련에서 선수들 정신력 강화한다는 구실로 얼음장 깨고 선수들 발가벗겨 억지로 집어넣는 구습이 횡행하던 때가 있었다. 선수생명 연장을 위해 따뜻한 곳에서 요양을 시켜야 마땅할 선수들을 차가운 얼음물에 강제로 처넣었으니 망가진 근육과 손상된 힘줄이 성할 리가 있겠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사람 모아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 능사라는 그릇된 조직문화가 팽배해 있다. 특히 사장님들 사이에 이런 고정관념이 유달리 강하다. 여러 사장님들께서 두루 모이신 로비단체에서 주 5일 근무제 실시에 입에 게거품 물고 반대하는 근본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내 장담컨대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극기정신을 함양해야 할 대상은 사장님들께서 끔찍이 아끼시는 토끼 같은 도련님들과 여우같은 사모님들뿐이다. 부연하자면 애들 인내심 키우는 데에는 허리에 튜브 매달고 한강물 건너게 하는 것보다는 지하철이나 식당 같은 공공장소에서 버릇없이 뛰어다닐 경우 오지게 알밤 한번 먹이는 게 제격이다.

{IMAGE2_RIGHT}먹고살자면 별 수 없이 직장에 다녀야 하고 직장에 다니자면 대안 없이 사장님들과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한다. 대통령보다, 족벌신문 편집장보다, 주한미군보다 훨씬 강하고 타이트하게 우리의 일상을 규율하는 것이 사장님이다. IMF 구제금융 체제라는 비싼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음에도 우리 사장님들의 사전엔 히딩크가 그토록 강조했던 자율과 창의가 없다. 이들에게 인간이란 짜면 짤수록 좋은 참깨나 들깨에 불과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장땡인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분들이 기업의 꼭대기에 올라타고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이상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과 경제체질은 세계 4강은 고사하고 아시아지역 예선통과조차 버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사장님들을 떼로 집합시켜 신나게 쥐어 짜보자. 나오는 건 오직 푸념과 욕설뿐일 것이다. 사장님! 힘내시기 전에 정신부터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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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7/12 [20: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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