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창몽창 자르는 MB 정권 연전에 아는 분이 점심 식사나 하자고 해서 만났더니, 청와대와 정부의 '메시지'라며 별 떨더름한 말을 전달받은 적이 있다.
워낙 잘 아는 사람이라서 협박이라고 느낄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고, "제발 좀 봐주라"는 얘기였다.
하여간 요약하면, 글 좀 살살 쓰라는 얘기이고, 나를 관리해야 하는 게 자신의 일이라서 자기 목 좀 봐달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났는데, 결국 그 양반은 다른 일로 옷 벗게 되기는 했다. 이젠 집에서 손주나 보고 계시려나? (아니, 그렇게 결국 짤릴 걸 그런 악역은 뭐 하러 맡으셔서 끌끌...)
정권이 위기는 위기인데, 지금의 위기를 누가 만든 건지 아니면 그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교사들로부터 시작해서 MBC 직원들까지, 이제는 한 번에 수십명 단위로 몽창몽창 자른다.
진중권이 모두 알다시피 '진장군'이라는 별명으로 통할 정도로 강단만큼은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이 와중에 그가 필리핀 '세부'로 주 거주지를 옮겼다.
나는 외국 가는 건 도저히 못할 짓이고, 최소한 이 어려운 시기를 사람들하고 '꼬질꼬질' 혹은 '꾸역꾸역' 같이 겪기 위해서 내년에는 '중앙'이라고 부르는 서울은 좀 피해서 이래저래 경상도에서 보낼까 한다.
조선 시대의 전통을 따르는 셈이다. 칭병하여 지방으로 낙향하는 선비들의 전례에 따라 나도 경상도 한 구석에서 학생들이나 가르치고, 가끔씩 동네 사람들하고 방담이나... 참여연대 의견서 전달,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참여연대 건은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내가 주로 가본 협상장은 기후변화협약 당시 총회나 부속기구 회의 같은 곳인데, 여기에는 아예 "미국 정부 타도, 부시 정부 타도"라고 미국 활동가들이 공개적인 집회를 하거나 "미국 좀 말려주세요"라고 찌라씨 뿌리는 건 기본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시라크 정부를 규탄하는 프랑스 활동가들과 협상장에서 만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내가 불어를 하는 협상가라서 그런지 프랑스 정부 규탄 좀 해달라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종 만났었다.
UN 안보리는 좀 다를까?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다를 바 하나도 없다. 평화단체나 인권단체 등등 국적과 상관없이 GO라고 부르는 정부의 공식적인 행위에 대해서 설명서는 물론 규탄 성명도 돌리고, 질문지도 돌리고 등등.
한 번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DJ에게 보내는 친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며 그 친서가 내 책상 위에까지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미국 시민단체가 나에게도 연락을 했었다.
참여연대의 의견서 전달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정상적인 시민단체의 활동이고, 그게 이상하다고 하면 내 눈에는 더 이상해 보인다.
그린피스는 아예 공개적으로 군함들 지나가는 데에다 배를 대고 "못 지나간다" 아니면 "우리 전부 죽이고 핵실험하라"며 그렇게 깽판 놓는다.
'에코 테러리스트'라는 용어를 아마도 그렇게 당했던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처음 한 걸로 알고 있다.
환경 쪽 시민단체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국도 없고, 정권은 더더욱 없다. 참여연대가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지만 그건 본부가 서울에 있다는 것이고, 국제 연대도 하고 심지어 UN 등 국제기구 감시도 자신들이 하는 일이다.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행동도 하고, 서류도 돌리고 그게 정상적인 시민단체이다.
생태나 인권에 국적이 있나?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본부 소재지하고 궁극의 지향은 좀 다르다. 밥줄 끊는 것 즐기다 정권줄도 끊긴다
어쨌든 상황은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주로 하는 게 일단 수틀리면 밥줄을 끊어놓는 일이다. 교사나 PD 해직이 그런 거다.
근데 문제가 이렇게 짤린 사람들이 밥벌이를 위해서 뭐라도 하고, 우파들이 주로 하는 것처럼 투잡도 하고 그러는가 하면, 대부분은 더 열심히 자신을 짜른 정권과 각을 세우는 일에 정성을 들이시더라...
사람들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렇게 피눈물 나게 하면 그게 모이고 모여서 결국 정권을 무너뜨리는 궁극의 힘이 된다.
참 이상한 게, 짜르고 짜르고 또 짜르면 모두가 무서워서 꼼짝달싹 못 할 것 같지만 이게 도가 넘으면 오히려 더 적극적 저항세력을 만들어내게 된다.
아니, 굳이 자신을 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서 뭐가 좋은 일이 있을라고?
아마 한나라당이 평화롭게 국정을 끌어나가고, 자신 때문에 밥줄 끊긴 사람이 없게 했더라면, 작년 분위기에서는 영구 집권도 상상해볼 정도의 지지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 3년차. 도저히 이 정권과 같이 하지 못하겠다는, '눈에서 피눈물이 났던' 사람이 너무 많이 늘어났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는데, 부드럽게 국정 운영을 못하는 것이 어느 정도가 되면 내리막이고 결국은 조기 레임덕이다.
힘이라는 게 물리력으로 생겨날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는 잘 생겨나지 않는다.
한나라당, 너무 재밌게 남의 밥줄을 끊어놓는 걸 즐겼지만 그것이 결국은 자기네 정권줄을 끊어놓게 될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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