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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명숙을 지지하지 못 하는 이유
민주당은 이미 '호남 자민련' 선택, 진보신당 정책전위그룹 지켜내야
 
우석훈   기사입력  2010/05/26 [14:33]
한명숙은 적이 아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한명숙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점과 싫은 점이 다 있는 사람이다. 지금 준비 중인 <생식과 돈의 학문>에서 한 절 정도를 한명숙에게 할애해서 분석하는 장면이 있는데, 기왕 늦은 것, 지방선거에서 선거 개입 논란을 줄이기 위해서 책 출간도 이래저래 한 템포 뒤로 미루어둔 상황이다.

'한명숙류'라는 표현과 '노무현류'라는 표현이 있는데, 내가 한명숙을 지지하고 그에게 단일화하자고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총리 시절에 했던 결정과 그의 역할 때문만은 아니다. 혹은 이계안과의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TV 토론 거부 등 그런 이유도 아니다.

나는 지방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아마 이계안이든, 노회찬이든 경선 과정에서 한명숙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선거보다는 정책들을 좀 공들여서 다듬는 것에 더 신경을 쓴 편이다. 그러니까 한명숙을 지지하거나 내가 만들었던 공약을 주는 일을 전혀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싫든 좋든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에 그와 등을 대고 꽤 많은 싸움을 함께 했던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그를 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해찬·백낙청류의 공작정치, 정의롭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아

그래도 내가 지금 그에게 지지한다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정도이다.

지금의 선거 틀을 만든 이해찬 전 총리 등의 인사들과 백낙청 선생을 필두로 하는 소위 시민단체의 대표 인사들의 정치 판짜기가 효율적이지도 않았을뿐더러 정의롭지도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독할 정도로 '공작 정치'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는데, 그게 정의롭지도 않고 또한 효율적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마 이번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든 책임 논의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 책임 논의를 할 정도로 자신들의 문제점을 찾거나 반성하기도 힘들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면야 나라도 노회찬이나 심상정에게 생각을 고쳐달라고 말할 용의가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금 그런 상황은 아니다.

이기지도 못할 것이고, 설령 그렇게 지더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린 사람들이 책임을 지거나 아니면 최소한 사과라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이기거나 지거나 민주당은 '호남 자민련'으로 편하게 남는 길을 이미 선택한 것이라는 게 내가 이해하는 현재의 상황이다.

비록 선거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민주당이 호남 자민련이 아니라 진짜로 야당의 대안 세력으로 길을 걷는다면 지금이라도 대통합이 가능할 것이지만, 민주당 내부의 선택은 이미 그 방향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경제민주화, 딱 '진보신당 득표'만큼 발전할 것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경제 민주화는 이번에 진보신당의 후보들이 얻는 표, 딱 그만큼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지난 수 년간 내가 한국에서 싸웠던 많은 싸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걸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한미FTA라고 할 것이다.

그게 일종의 기준인 셈인데, 통합 논의에서 제일 먼저 통합파들이 버린 것이 한미 FTA였다. 그 논의틀에 어떻게 진보정당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이번에 민주당이 내건 무상급식 논의와 친환경 무상급식 논의는 나와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이 오랫동안 주장하던 것이다.

민주당이 차선이 아니라 차악이라는 것은 이해를 하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최소한 정책의 측면에서는 전위를 지켜낼 진보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 진보신당이 힘없이 아무 존재감 없이 무너지면, 한국은 정책에서 전위적인 얘기를 논의할 그룹들이 통으로 사라지게 되는 새로운 위험을 맞게 된다.
 
단일화·연정 지지하지만, '이번 판은 아니다'

이미 위험한 상황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 이 끝간데 없는 위기에서 전위들은 계속 필요하다.

민주당 내 스스로 전위라고 얘기할 그룹이 단 한 그룹이라도 있는가?

소위 친노 그룹은 말할 것도 없지만, 소위 비주류 4인방 즉 정동영, 손학규, 김근태, 천정배 이들 중 전위 그룹이 있는가? 친노 그룹 혹은 그외 비주류 그룹 중 정말로 전위 그룹이라고 할, 실질적 논의를 만들어낼 그룹이 단 한 그룹이라도 있는가?

나는 단일화를 지지하고 연정 체계를 지지하는 편이지만, 이번 판은 아니다.

그래서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고, 한명숙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 선전하기를 기원하는 것, 거기까지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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